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6)


    말씀의 초대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히브리서는 종말론적 믿음이 약화되어 흔들리는 히브리인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서 독려한다.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치유를 통해 당신이 죄를 용서하시고 정화하시어 창조주이신 분과 화해시켜 주시는 분임을 계시하신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각성하여 변한다는 것,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변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각성의 만남이 죽음에 버금가는 사건을 겪는 것이다. 말기 암 선고, 엄청난 교통사고 등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과 생명,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해서 처음으로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운데 인생의 지평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죽음 묵상은 제1의 수행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실 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셨다. 중풍의 고통을 떠받치고 있던 들것을 ‘내버리지 말고 들고서’ 가라고 하신 것이다. 용서와 치유는 예수님께서 하셨지만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삶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바빌론 포로 생활의 고난을 결코 잊게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감사와 찬양이 있다. 감사란 지금은 지난날의 고통에서 이미 벗어나 있을지라도 그 아픔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 회상에 있다. 그 힘든 시간을 벗어나게 하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지금 들것에 누워 있는 다른 누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중풍 들린 모든 이웃에게 마음과 애정의 손발이 열려야 할 의무가 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에 기필코 데려가고야 말았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제는 상처 받은 이들의 친구가 되고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손에 든 빈 들것은 중요하다. ‘나도 내가 못 박힐 십자가를 내 어깨에 메고 갔지…….’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 예수 그 이름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6)


      말씀의 초대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히브리서는 종말론적 믿음이 약화되어 흔들리는 히브리인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서 독려한다.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치유를 통해 당신이 죄를 용서하시고 정화하시어 창조주이신 분과 화해시켜 주시는 분임을 계시하신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각성하여 변한다는 것,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변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각성의 만남이 죽음에 버금가는 사건을 겪는 것이다. 말기 암 선고, 엄청난 교통사고 등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과 생명,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해서 처음으로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운데 인생의 지평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죽음 묵상은 제1의 수행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실 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셨다. 중풍의 고통을 떠받치고 있던 들것을 ‘내버리지 말고 들고서’ 가라고 하신 것이다. 용서와 치유는 예수님께서 하셨지만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삶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바빌론 포로 생활의 고난을 결코 잊게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감사와 찬양이 있다. 감사란 지금은 지난날의 고통에서 이미 벗어나 있을지라도 그 아픔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 회상에 있다. 그 힘든 시간을 벗어나게 하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지금 들것에 누워 있는 다른 누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중풍 들린 모든 이웃에게 마음과 애정의 손발이 열려야 할 의무가 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에 기필코 데려가고야 말았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제는 상처 받은 이들의 친구가 되고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손에 든 빈 들것은 중요하다. ‘나도 내가 못 박힐 십자가를 내 어깨에 메고 갔지…….’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 예수 그 이름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