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2/12)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사람(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서 여자(하와)를 창조하셨다. 혼인은 인류 번성의 기초이고 독자가 아닌 공동체 삶의 기본 요소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기능적 협력자이고 파트너임을 알게 한다(제1독서).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한 이교도 여인이 구마의 자비를 청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민족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그러나 그 여인의 믿음이 민족을 뛰어넘는 것임을 보시고 딸을 마귀에게서 구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여자를 사람에게 데려오셔서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8-25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아!’ 마귀 들린 딸을 구해 주십사는 여인의 호소에 만민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시다니! 복음 나누기에서 “이건 예수님답지 않네요.” 하던 누군가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초점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이다. ‘제발 딸만 구해 주세요. 개가 아니라 쥐라고 부른들 상관없어요!’ 모성애는 위대하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이 있는 가정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나자렛의 성가정만큼이나 완전한 공동체이다. 가정이 공동체 세계의 기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을 완전에 가까운 공동체 모델로 삼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또 교우들을 형제자매라 부른다.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기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하느님과 한 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상이자 공동체의 영성이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대가족과 친지로 마을을 이루고, 인정과 도덕과 자치와 원로의 권위가 있는 소사회를 이룬다. 건강한 ‘본디의 삶’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의 자녀 사랑이 가정과 혈연을 넘어 이웃과 인류에게 미친다면 전쟁도 빈부의 양극화도 없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농경 사회와 마을은 사라지고 대가족은 해체되었으며 가족마저 함께 밥도 먹지 못하는, 가정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4월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 요한 23세 교황은 “사람은 함께 사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셨다. 병든 시대를 치유하여 사랑의 사회로 가는 길은 서로 함께 사는 데 있다. 대가족이 함께 사는 마을이 복구되어야 한다. 작은 삶과 마을의 회복 없이 가족애를 뛰어넘을 방법이 없다. 미래가 없어 보인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시고 힘이신-임고운(주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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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5주간 목요일(2/12)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사람(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서 여자(하와)를 창조하셨다. 혼인은 인류 번성의 기초이고 독자가 아닌 공동체 삶의 기본 요소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기능적 협력자이고 파트너임을 알게 한다(제1독서).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한 이교도 여인이 구마의 자비를 청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민족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그러나 그 여인의 믿음이 민족을 뛰어넘는 것임을 보시고 딸을 마귀에게서 구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여자를 사람에게 데려오셔서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8-25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아!’ 마귀 들린 딸을 구해 주십사는 여인의 호소에 만민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시다니! 복음 나누기에서 “이건 예수님답지 않네요.” 하던 누군가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초점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이다. ‘제발 딸만 구해 주세요. 개가 아니라 쥐라고 부른들 상관없어요!’ 모성애는 위대하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이 있는 가정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나자렛의 성가정만큼이나 완전한 공동체이다. 가정이 공동체 세계의 기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을 완전에 가까운 공동체 모델로 삼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또 교우들을 형제자매라 부른다.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기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하느님과 한 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상이자 공동체의 영성이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대가족과 친지로 마을을 이루고, 인정과 도덕과 자치와 원로의 권위가 있는 소사회를 이룬다. 건강한 ‘본디의 삶’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의 자녀 사랑이 가정과 혈연을 넘어 이웃과 인류에게 미친다면 전쟁도 빈부의 양극화도 없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농경 사회와 마을은 사라지고 대가족은 해체되었으며 가족마저 함께 밥도 먹지 못하는, 가정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4월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 요한 23세 교황은 “사람은 함께 사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셨다. 병든 시대를 치유하여 사랑의 사회로 가는 길은 서로 함께 사는 데 있다. 대가족이 함께 사는 마을이 복구되어야 한다. 작은 삶과 마을의 회복 없이 가족애를 뛰어넘을 방법이 없다. 미래가 없어 보인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시고 힘이신-임고운(주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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