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의 예언의 발전

 

이스라엘에서의 예언의 발전


우선 3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1) 미래를 점치려했던 사람들의 단계(Seer) 2) 무아지경에 사로잡혀 떠돌아다니는 무리로 구성된 מיאבנ(너빔;예언자들)이 있었다. 여기서 어떤 massinger가 황홀경 상태에 있다고 함은 하느님이 그에게 임하는 표지이며, 예언자는 탈혼 중에 또는 탈혼 후에 전해야 할 神의 메세지를 받게 된다. 3) 기원전 9~5세기경에 나타난 정경 예언자들의 단계로서, 초기에 이들은 저술 예언자 또는 작가 예언자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러한 명칭은 사실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들은 저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업적은 구전에 의해 전수되었고 후에 제자들에 의해서 작품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술용어로 다만 ‘작가 예언자’라고 부르는 것일 따름이다.


일부 학자들은 고대에는 기본적으로 2가지 예언자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 앞서 언급한 Seer와 같은 선견자가 있었고 2) 풍요예식(fertility cult)을 주관하던 사제로서 이는 탈혼 형태의 유형에 가깝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두가지가 합쳐져서 야훼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정경 예언자의 활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들의 천재성과 용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보면 점쟁이, 탈혼가 등의 요소가 있지만 동시에 다른 많은 것도 나타난다. 예언자, 사제, 지혜문학, 궁정과 관련된 요소등이다. 예언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예언자 자신과 더불어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고 하는 예언의 소신이었다. 그 소명의식에 따라 소명을 완벽히 수행하는 예언자는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는 사회 혁신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성서의 야휘즘이 없었으리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또는 그들을 위대한 사회 개혁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예언자를 종교적 인물로 전제해야 한다. 그들은 어느 것에도 불복했고 오직 야훼께만 충성을 다했다. 야훼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한다고 하는 소신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에 대해 예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예언이 없이는 사실 그들이 빈약했으리라는 말도 조금은 타당하다. 또한 그들은 사회 이념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1차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은 종교 자체였고, 다른 모든 것이 이 전제하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예언자는 정열적인 사람이었으며, 비범하게 행동했던 사람이었고, 야훼께서 당신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라는 소명과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새것이 아니라 성서에 나온 것 전부, 즉 출애급의 계약과 그 전통에로 돌아갈 것을 호소(야휘즘에의 충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티브를 새 시대에 적용하고 말씀을 받는 과정에서 새것을 첨가했던 것이다.


이들이 예언한 것이 참된 것인지, 거짓인지의 구별은 어디에다 두었을까? 예언자들 사이에 정반대되는 신탁의 말을 했을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청중들은 얼마나 당혹했을까? (예를 들면 예레 27~28장에 나오는 예레미야와 거짓 예언자와의 논쟁) 그러나 그에 대한 기준이 있다. 가장 분명한 시금석은 예언자가 발설한 내용의 실현 여부에 있다(신명 18,15~22). 또한 참된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통해 과거의 전통에로 돌아갈 것(출애급 계약)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메세지가 야훼가 알려준 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예언이 주어진 당시의 역사적 배경하에서 메세지의 내용이 그 근거를 두고 있는가? 또한 이 메세지가 야훼가 알려준 것과 조화를 이룰수 있고 일치하는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참된 예언인지의 기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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