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넘 무섭습니다요
자 그렇다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리도록 제자들을 유혹하는 짓거리를 강력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내 형제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정한 부모-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서니 주일 거를때
자기도 죄짓고, 아이도 죄짓고. 더 나아가 아이는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안함으로써 가족들이 안하게 되니.
죄의 유혹
이것은 거의 하나의 인격적 세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며 배교로 이어진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하다.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만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매달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죄의 유혹은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온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위협과 함께 예언적인 불행 선언을 하신다.
좀있다가니 다시 할께요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제자들의 공동체는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잘못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는 성인들의 사회가 아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다면 결코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 형제를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꾸짖어 주라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기 19.17)
형제가 하는 꾸짖음은 그의 형제를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번씩이라도…
그 형제가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에 따라 살려면 먼저 자기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성취할 힘을 예수님께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밝히셨음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채울 힘을 주셨다.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믿음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다. 단 한치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도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검은 뽕나무(무화과나무)의 뿌리는 대단히 강하여 폭풍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6백년이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가장 작은 신뢰와 복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이 나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것.
그런 믿음 어디서 구하나.
돈주고 살수 있다면 살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