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
│ 20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바리사이들에게서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지켜보는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닙니다.
│ 21 또한 ‘보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보시오, 사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이 표현은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모든 희망을 요약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고의 다스림을 단언하실 때는 모든 것은 질서를 잡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 희망과 기대가 언제 실현될 것인가에 관한 물음은 사회의 모든 계층, 바리사이파 사람들, 묵시적 환상가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동요케 한 물음입니다.(루가 19,11;21,7; 사도행전1,6)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설교 대상이었습니다. 확실히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가 엉ㄴ제 오겠느냐는 물음에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너무도 혼란스럽습니다.
아이들 대화중에 이런 우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야! 에버랜드가 누구거지?
그거 삼성꺼야
아냐 그거 국가가 운영하는거야…
아니라니까 삼성꺼야..
우리 그럼 에버랜드가서 물어보자
…
아자씨…애버랜드는 누구꺼예요?
그러나 관계자 왈
에버랜드는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사실 대답이 정확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도 이런 혼란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현존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니…
예수님의 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출현하였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분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냈으며,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다.
구약의 메시아 시대에 대한 표현을 보면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뛰며 …이런 표현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 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졌으니 이것을 본다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가져다 주시는 분이 당신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나라가 당신 안에서 현존한다고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약속된 그 구원의 예언자로서 처신하신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이셨고,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계신 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그때는 사람들이 몰랐구먼유) 예수님은 그 이상의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의 다스림을 단언하셨던 것이다.
│ 22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인자의 날들 가운데 하루라도 보고자 열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이 올 것이다. 이 날은 예언자들이 예언하였고, 예수님꼐서도 말씀하신다. 그날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날의 단 하루만이라도 본다면 아마 제자들 중 어떤 큰 시련에도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 그 날은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날이다. 그러나 그들은 끈기 있게 참고 기다려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날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 23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보라, 저기 계시다’ [혹은] ‘보라, 여기 계시다’ 하고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물러가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시오.
│ 24 사실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면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그의 날에] 그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임박을 선포하는 온갖 소리를 다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는소리 없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이 오시리라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 25 그렇지만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버림받는, 야훼의 고난받는 종의 운명을 겪어야 했다. 그는 비탄의 인물, 약함을 아는 인물, 사람들이 그 앞에서 눈길을 돌리는 그러한 인물이 될 것이다(이사야 53,3이하).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에서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의 교회가 따라야 하는 길이 제시된다.
그들은 영광을 얻기에 앞서 그들에게 고통과 고난을 부과하는 신적인 필연을 체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