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주교 신앙 선택의 동기와 그 과정 :
천주교 신앙인과 결혼함으로서 남편의 신앙을 따르게 됨.
나는 23세때에 당시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장교 대위로 있던 친정 오빠로 부터
지금의 남편 최다두씨(오빠의 소대원,상병시절)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의 몇번의 휴가와 면회, 편지교환으로 하여 만 2년여만에
우리는 서로 결혼 상대자로서의 관계발전을 가져왔고
그의 군 제대와 함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당시 다두씨는 사실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할 만큼의
신앙심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유아세례,첫영성체후 가끔 미사참석,교리지식 거의 전무한 상태)
그때 결혼전의 나는 무신론자. 그러나 자신의 양심과 정의감을 확신,
곧 자신의 건전한 의지,책임감, 자신감,또 스스로의 노력으로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성실히 잘 살수 있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믿고 있었던때다.
그러나 시어머니 (교리지식은 없어도 주일 미사는 철저히) 의 권유로
결혼과 동시에 시댁의 (남편의)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종교를 수용해야 평화로운 집안분위기를 기대 할 수가 …
그런 생각과 함께 한가지는 긍정적인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성서속의 인간사랑과
진리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고 많은 영적성장과 함께 그 하느님 사랑(?)에 대한
생활을 기대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않게 그런 나의 희망과는 달리 시댁 부모 형제들은 네째동생인
우리부부에게 시댁 집안일에 대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해 왔다.
나는 그로인한 많은 정신적 회의와 갈등과 그 분들의 강요에 응하지 못함에 대한
한 집안의 부당한 미움의 대상이 되었고 또 두자녀와 함께 가족모두의
크고 작은 질병등으로 오랜간 고통의 시련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형님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무책임한 처사와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었고 최초에 바랬던 하느님께로 부터의 그 선물을
(말씀의 깨달음과 사랑의생활)풍성히 현실로 받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지금 더 없는 신앙의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주님, 돌아보면 제가 부덕하여 한 집안의 희생을 동생이라하여
수용하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세속적 오만으로 가득찼던 저의 마음을 겸손케 하시느라
주님께서 저에게 온갖 시련으로 단련 시키신 것임을 깨닫게 된답니다.
따라서 이에 주님께 다시한번 깊은 반성과 함께 또한 감사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