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고난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배척을 받는 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6살난 조카가 유치원에 가면 남자 아이들에게 얻어 맞는다고 합니다. 다른 녀석들은 키가 크고 한살이 더 많으니 자그마한 여자아이인 조카는 힘으로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 올해는 좀 덜 괴롭힘을 당할 것 같습니다. 그 녀석들은 모두 초등학교로 가고 조카는 또 유치원에 다니니. 비슷한 아이들끼리 다니니 덜 괴롭힘 당하겠죠.
비슷하면 잘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대사제들과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하지 않고, 다르니 배척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3년은 무척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음모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사셔야 했으니…
우리는 누구와 비슷할까요? 예수님과 비슷할까요? 아니면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고 남이야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과 비슷할까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예외가 없습니다….”누구든지”)
1. 자기를 버리고
2.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나를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 포기각서”를 쓰긴 쓰되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돈 때문에 쓰는 사람들. 너무도 불행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쓰도록 종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사람이기를 포기했으니 그런 강요가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포기각서를 쓰라고 말씀하시네요
“네 욕심대로 살지 않고 양심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
그래서 오늘 말씀대로 포기 각서를 쓰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홍광철(요한)은 오늘부터 제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기심과 충동등을 접어두고 당신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는 예수님의 말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알고보니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