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파…그의 잘못된 선택…

11 장
45 마리아를 찾아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더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일러 바치기도 하였다.
47 그래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 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하며 의논하였다.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51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52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53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54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이상 더 유다 지방에서 드러나게 나다니지 않으시고 그 곳을 떠나 광야 근처에 있는 지방으로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물러 계셨다.
55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다가 오자 많은 사람들이 명절 전에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56 그들은 예수를 찾아 다니다가 성전 뜰 안에 모여서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그가 명절에 참례할 것 같지는 않지요?”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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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파…그의 잘못된 선택…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45 마리아를 찾아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라자로의 소생을 통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확실하게 하였다. 보고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바라보고서도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보고 싶다…

     나같이 마음이 무딘 사람들인가?

    46 그러나 더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일러 바치기도 하였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현실에 민감한 사람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라면 이들은 분명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것에 매달릴 것이다. 이들이 과연 현명한 사람들인가? 글쎄..
    그런 사람들을 본다. 이쪽에 매달렸다가, 저쪽에 매달렸다가 하는 그런 사람들. 이들 중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어야 하기에…

     

    47 그래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 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하며 의논하였다.

    예수님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으면 민중 운동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활동을 종교적이요 정치적인 의미로 이해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인물로 여겼다.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가야파는 18-37년에 대제관으로 있었다. “그 해”란 예수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바로 그 해를 가리킨다.

    가야파는 거만하게도 최고의회 의원들의 정치적 무지와 몰이해를 꾸짖는다. “당신들은 그렇게 아둔합니까?”라고. 그는 교활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만 부응하려는 잔인하고 비양심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51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런데 그 의견은 마치 의도적으로 예언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마치 아무 생각도 없이 이기심에서 던진 돌에 황새가 맞아서 떨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52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민족을 위한 구원행위로서 보편적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의 속죄 죽음으로 인하여 형성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유다인과 이방인을 포함), 곧 “한 목자아래 하느님의 모든 양떼”를 모아들이기 위한 죽음이었다.

     

    53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이제 최고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54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이상 더 유다 지방에서 드러나게 나다니지 않으시고 그 곳을 떠나 광야 근처에 있는 지방으로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물러 계셨다.

    에브라임은 예루살렘 북쪽 2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다.

    55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다가 오자 많은 사람들이 명절 전에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남자들은 빠스카 축제에 사용할 어린 양을 잡기 위해 제관들의 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정결예식을 지낼 필요가 있었다.

     

    56 그들은 예수를 찾아 다니다가 성전 뜰 안에 모여서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그가 명절에 참례할 것 같지는 않지요?”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이것은 예수님과 관련되 당시 예루살렘의 분위기를 묘사해 주고 있다. 예수님을 만날 기대감이 내포된 표현이다.

  2. user#0 님의 말:

    바리사이파나 율범 학자 같은 권력가들은 국가의 안전을 구실로 생명과 자유의 공동체의 대한 자기 들의 적의를 감춥니다.

    그때 가야파가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 해결책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게 되는 핵심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시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시므로 우리는 생명을 얻을수 있게 되고 자유로워 지는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억압가들이 권력을 부축이게 되는것 같습니다.

    예수님꼐서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해주시므로서 믿음을 끝까지 증거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생명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

    끔찍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이렇게 사악한 면이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로인해 다른 사람이 죽게 된다면… …

     

     

  3. user#0 님의 말:

    예수님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만 했어요.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특히 세상에 

    생명을 주기 때문에 그랬던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시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이 대사제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미움을 샀지만,

    예수님은 목숨 바쳐 그들까지 구하시고자 애쓰셨을 거에요.

    이처럼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본받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의를 위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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