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넘 길죠?

15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 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하자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 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며서 가슴이 아파 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보기에 예수님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기에 유다는 예수님께 실망을 하고 예수님을 유다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합니다. 가슴이 아파옵니다. 내 마음에도 언제나 죄에 떨어지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은전 서른 닢만 받으면 언제든지, 조건만 충족되면 언제든지 죄로 떨어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유다의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어디에다 차렸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무교절 첫날은 해방절 양을 잡는날을 말합니다. 해방절은 유다교 월력으로 니산 달 15일입니다. 서산에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되니, 해가 지면서 니산 15일 해방절 축제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우선 해방절 만찬부터 들었습니다.  이제 음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후 2-6시에 성전에서 가족다마 어린양 한마리씩 잡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구가 적은 때는 몇 집이 어울러 어린양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해방절 준비일은 누룩 없는 빵만 먹는 뮤교절 축제 첫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부터 무교절 축제는 여드레 동안 계속됩니다. 따라서 해방절 준비일 겸 무교절 첫날에는 누룩 넣은 빵을 집 안에서 말끔히 없애고 누룩없는 빵을 넉넉히 마련해야 합니다.



21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요즘 미국 교회의 성직자들 때문에 교회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의 성추행…


그런데 미국에서의 성추행의 정도는 우리나라와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쁘다고 머리도 만져주고, 어린 아이들 바지 벗고 다닐때는 고추도 만져주고, 뽀뽀도 해주고, 엉덩이도 때려주고…


예쁘다는 표현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모두 성추행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짓습니다. 크건 작건간에.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이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기에 그분들이 힘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4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가끔은 내가 신앙인이 아니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앙인이 아니라면 성당에 안가도 되고, 매일 기도 안해도 되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성사를 보지 않아도 되고…


가끔은 내가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예수님도 몰랐을 것이고, 예수님을 배반하지도 않았을텐데. 아니 배반했어도 그 자체를 몰랐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신앙인이었기에 얼마나 좋은 것들이 나에게 주어졌습니까?


누군가가 “너는 차라리 안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면 너무도 서운했을 것입니다.


유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옵니다.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아마도 가슴 두근거리면서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울을 바라봅니다. 거울안에 유다의 모습이 있습니다.




26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27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28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십니다. 아무 의미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슬픈 마음이 느껴집니다.



33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도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몰랐을 때, 저도 베드로처럼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때의 감정이었습니다. 상황이 어렵게 처해지면 저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부들은 위대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용서하고 의지하고 믿어주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입니까?


  
38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 


예수님은 고통에 쌓여 있습니다. 고민에 빠지십니다. 피땀이 땅을 적실 정도로…사람이 지극한 번민에 사로잡히면 모세혈관이 파열되면서 피가 흐른다고 합니다. 그것이 땀과 함께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제자들처럼 남들 기도할때 잠잔적은 있어도…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 앞에서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고민하면서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과연  아버지의 뜻인지, 아니면 내 뜻인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쉽지 않으셨습니다.



67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또 어떤 자들은 뺨을 때리면서 68 “그리스도야,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맞추어 보아라” 하면 조롱하였다.


화가 납니다. 예수님의 저 지극히 처절한 겸손에 화가 납니다. 그리고 도망쳐 버린 제자들에게도 화가 납니다. 베드로의 장담은 더욱 화나게 만듭니다. 스승이 모욕을 당하고 있을때, 베드로는 스승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합니다. 화가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자신때문에 화가납니다 .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독하고 침을 뱉는 사람이 저였고, 예수님을 놔두고 도망쳐 버린 제자가 저였고, 예수님을 수도없이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


5 유다는 그 은전을 성소에 내동댕이치고 물러 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불쌍한 유다의 모습이 잔잔한 음악에 묻혀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두 눈을 감지도 못한채, 스승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유다의 마음은 죽은 그의 얼굴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게나마 용서를 청하고 싶었던 것이 유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저 또한 유다의 모습이지만 죄의식은 커녕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그렇게 양심에 철갑을 두르고 살고 있습니다.


유다는 저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행동이 죄라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46″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신 분이시다. 그런데 어떤 이단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신이시기 때문에 죽은척 할 수 있고, 아무런 고통도 못느끼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그 모든 것을 겪으셨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으셨고, 당신의 땀과 피로 하느님께 속죄의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나의 하느님…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찢어지는 가슴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54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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