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유행하던 말중에 “사오정 시리즈”가 생각납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상가집에 가서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죽었죠?”…어제는 토마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주님, 우리는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른데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흡족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었고 또 그분을 뵈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누구를 “안다”고 할 때 어디까지 알아야 아는 것일까요? “안다”는 것은 상대방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저를 잘 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저를 안다고 했을 때 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을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조용필씨의 노래는 알고 있지만 내가 조용필씨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많은 시간동안 만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저를 아십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지만 과연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어떤 관계일까요?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래서 그분과 내가 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고 그저 안다고 말을 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오버한다”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보는 여자에게 키스할 수는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한 여인을 내 여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를 알기 위해서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타인과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친교가 있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봉창을 두드리는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필립보, 이렇게 오랫동안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었는데 당신은 나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까?”
필립보는 하느님 아버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하느님을 직접 보지는 못합니다. 욕심이 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열정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필립보가 떡을 제대로 못 보았다는데 있습니다. 필립보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요, 아버지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고 행동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필립보!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보려 하거나 특별한 환시적 신체험을 추구하지 말아요. 오히려 나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세요.”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는 완전히 일치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시며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당신은 믿지 않습니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으시오. 그렇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은 하느님 아버지의 일이시고, 그 일들은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함께 일치하여 행하시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표징들입니다. 그 표징이 증언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도록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표징, 증거입니다.
부부 일심 동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가 하는 일은 곧 남편이 뜻이고, 남편이 하는 일은 곧 아내의 뜻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아내에게서 약속을 받아내면 남편도 따라 줍니다. 또 남편에게서 약속을 받아내면 아내도 따라줍니다. 왜냐하면 둘은 한 마음 한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때 그 사랑은 커갈 수 있는 것이고 더 큰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들을 그도 또한 하게 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내가 해 주겠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든든한 빽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았으니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예수님께서는 꼭 들어주시겠다고 다짐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나에게 청하면 내가 해 주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든든한 빽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당신께서 들어주십니다. 참 좋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나를 위해서 당신 목숨을 내어놓으신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기쁩니다.
제가 신학교 입학때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면접관은 다름아닌 제가 잘 알던 신부님이었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있다가 나왔습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청을 확실히 들어 주시겠다고 다짐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셨고, 그들이 하는 일이 곧 예수님의 일이며, 제자들을 통해서 더 큰 일을 계획하시기 때문입니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일꾼들에게 돈을 안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일꾼들이 필요한 것을 주인이 안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후하게 주어서 더 좋은 집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멋진 집을 지으시려고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라는 집입니다. 그 집을 짓는데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모두 지원해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름받았으니 한번 멋진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일꾼이 놀아서야 되겠습니까? 일꾼이 집 주인을 불신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 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은 답답 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게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믿겠거든 내가 하는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극한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따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주님의 말씀따라
일치를 이루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주님만을 믿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