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평화를 받았건만 그 평화는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여러분에게 남겨 두고 갑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평화의 인사는 보통 작별 인사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단순한 인사이상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는 종말론적 구원 개념으로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선사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각 사람들에게 전달되며 제자들의 복음 선포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평안하냐?”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고 가셨는데 나는 평안합니까?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이글거림은 어인 이유인지…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같지 않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평화라는 것이 다르다고 말씀을 하시니…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참된 평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참된 평화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소가 100마리 있습니다. 그는 그 소를 돌보기 위해서 밤낮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쁜 일은 골라서 하면서 남에게는 무척이나 인색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소를 훔쳐 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외양간을 지켰습니다. 사실 그는 부자입니다. 그 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옆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삶이 괴로웠습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오늘도 아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신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루 하루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와는 달리 가난한 농부는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다 그날밤 죽어서 하느님 앞으로 갔습니다. 악행을 일삼던 그는 지옥으로 떨어졌고, 가난한 농부는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참된 평화는 지금 눈에 보이는 그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평화를 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참된 평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평화를 이해못합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유행가의 한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별의 시점에서 제자들을 격려하시면서 다독거려 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또한 겁먹지 않도록 하시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완성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행동이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며,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두목으로 표현되고 있는 유다도 그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주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평화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내가 꼭 잡고 있는다고 해서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평화는 다른 이들에게 자꾸 넘겨 주어야만이 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