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은 이렇게 하세요
당시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의 의로움을 드러내는(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세,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드러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보다는 행동에 치우치는 경향을 예수님께서는 꼬집어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움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에게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잘하면 그것에 대해서 보상을 받고 싶어 합니다. 열심한 유다인들은 그들의 자선이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보상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라고, 그래서 보상해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이런 마음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회당과 골목에서 행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시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당신의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왼(손)이 모르게 하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자선이 숨겨져 있게 하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선(자비행위)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자비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자선을 갚아 주어야만이 내가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보상해 주시면 좋은 것입니다. 안 해주셔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하세요
기도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팔 절간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담긴 원통(기도물레)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예불하러 와서는 기도물레들을 빙빙 돌립니다. 한 번 돌릴 때마다 원통들 속에 적혀 있는 무수한 기도를 다 바친 셈이라고 합니다(이건 좀 엉터리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골방은 작은 방이 아니라 창문이 없는 방을 골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기도를 오직 골방에서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답시고 남들 앞에서 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좋아하실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호 안긋고 밥먹는거야. 내 입으로 나발 불기 싫어서…”이것은 아닙니다요.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청원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청원기도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청원기도를 바칠 때에는 내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식은 이렇게 하세요
구약성경에서 명한 단식일은 일년에 단 한 차례 속죄의 날 뿐입니다(레위 23,26-32;16,29). 그 밖에 온 나라에 불행이 닥치면 거국적으로 단식하는 수가 더러 있었습니다. 요나서에도 보면 단식을 선포하잖아요. 공적으로 단식하는 날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목욕하지도 화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단식은 열심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단식을 의미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고 그리스도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단식을 하는 것이 뭐 자랑하거나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한다면 차라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시오. 사실 그들은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고 자기들의 얼굴을 찌푸립니다. .. 당신이 단식하려거든 당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당신의 얼굴을 씻으시오. 18 그리하여 당신이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드러내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배척하지 않으십니다. 단식은 회개하는 마음의 순수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눈에 드러나기 위해 단식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식을 하면서 그 의미를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단식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