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

 

9 장


32  그들이 떠나간 뒤에 마침 (사람들이) 귀신들린 벙어리 한 사람을 그분께 데리고 왔다.


33  귀신이 쫓겨나가자 벙어리는 말을 했다. 그래서 군중은 놀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고 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그가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 고 말했다.


35  예수께서는 모든 고을과 촌락을 돌아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지쳐서 풀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37  이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38  그러니 여러분은 추수 주인에게 빌어 그의 추수(밭)에 일꾼들을 보내시라고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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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측은지심

    죽은 소녀를 다시 살려 주시고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신 예수님, 그리고 두 소경을 고쳐주신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귀신들린 벙어리 한 사람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그 벙어리였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아무리 말을 하고 싶어도 한마디 나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많은 좌절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벙어리는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애절한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앞에 꿇어 예수님의 처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군중들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 보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사실 과거에도 많은 기이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능력의 표징과 증거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종종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 지금 눈 앞에 계십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니까 예수님을 부정하기 위해서 마귀 두목과 한통속이라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되고, 나보다 잘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참으로 애처로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바로 내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서도…


    측은지심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바리사이나 율사들이 예수님을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간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촌락을 돌아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측은히 여기시다는 불쌍히 여기시다보다 더 깊이, 고통 받는 이에게 동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가 있었지만 그 목자들이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만 지워서 백성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도자들의 이끌림 없는 백성들은 결국 삶 안에서 아무런 기쁨도 얻지 못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염려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염려했습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간에…

    예수님께서는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 하시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추수는 흔히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현재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하나 하나를 어루만져 주시려 하시는데, 절망에 빠진 이들을 하나 하나 일으키려 하시는데, 그래서 하느님을 향하지 못하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만드려고 하시는데 그 일을 할 일꾼이 부족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추수 주인에게 빌어 그의 추수(밭)에 일꾼들을 보내시라고 하시오.”


    측은지심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에게 오는 이를 막지 않는다. 그가 힘든 병에 걸렸다면 그래서 나에게 치유받기를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겠노라. 그러니 너희는 누가 잘났거든 잘난 그대로 인정해 주어라. 그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꿔 놓지 말고 그의 장점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라. 또한 삶을 살아가면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너의 손을 내 밀어 주어라. 그 일을 하라고 나는 너를 파견한다”


    주님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나를 파견하셨습니다.

  2. user#0 님의 말:


    추수할 것은 많은데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면을 보여줍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36)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37-38).

     

    예수께서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쉬실 여가 없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셨습니다. 병자를 보면 병자를

    고쳐주시고, 불구자를 보면 불구자를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34)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쳐주셨고,

    파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의 시비를

    받아주셨습니다. 세상은 넓은데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고, 해결을 한다 하여도 다음 세대는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최소한의 시간 3년만

    복음을 전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어 성령과 함께

    교회와 더불어 전교하고 계십니다.

     

    20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달리며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아직도

    ‘불쌍한 마음’으로 일꾼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의

    품안에 들었다가도 뛰쳐나간 사람들, 온갖 질병과

    가난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 양심의 불안으로 떨고 있는

    사람들, 고래 싸움에 등터진 사람들, 세상 물결에 희생된

    청소년들, 오류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주는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길입니다.

     

    아직도 이 한국 땅에 많은 일꾼을 보내주시고, 바로

    나를 일꾼으로 써주심에 주님께 감사 드리며, 주님의

    일을 찾아 나섭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마다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김경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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