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추수할때까지둘다 함께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추수할때까지둘다 함께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13,30)


오늘복음은 가라지 비유와 그에대한 해설을 들려줍니다 ‘가라지”라는


문제는 거의 반사적으로 없애야할 무엇으로 생각하는것이  우리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요 어쩌면 그것이 너무나 이치와 도리에 맞는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복음에서는 집주인은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버리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것일까요?


이 비유는 먼저 교회란 선인과 악인이 함께 뒤섞여  사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라지는 말과 함께 추수때까지 가지고 가야할 무엇이기에


교회도 마지막 심판때까지 악인들과 함께 갈수없는 공동체라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깨달아야 할 점은 선인과 악인의 구분과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것은


인간의 일이아니라  하느님께 속하는 일이라는것이지요


가라지를 태우는것이 추수때의 일이라면  우리 주위의 형제자매들에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것도  또 하나의 신앙의 덕이 되는 행위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대답을 통해서 종들의 본연의 일은  말을 가꾸는데


있을 뿐이지 가라지를 뽑는 심판자가  아니라는 사실 더 나아가 이 가라지


비유는 결코 교회안에  악인의 문제 이상의 것으로 생각 할수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란 단순히 악인만을 상징하는  말이 아니라


“누구나 거부하고 받아들이고 싶지않은 죄나 단점” 등 부정적인 무엇을


상징할수 있는 말이지요 이렇게 알아듣고 보면  이러한 가라지는


교회공동체안에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모습안에서도 너무나


쉽게 발견될수 있는  모습이요  사랑스런 나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나의 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이웃들 안에서  너무나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가라지 비유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그리고


나와 너의 가슴안에  자라나는 정말로 받아들일수 없고,뽑아버리고 싶고


뽑아 버리면 시원할것같은  이 가라지에 대하여  뽑아버리고 싶은 불가능한


욕구를 자제하라는 것이요  나와 타인이 가지는 단점과  부정적인면에


대하여  좀더 너그러운 마음과  받아들일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요구가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주의 할점은 이러한 가라지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는  불가항력적인 것이기는해도


심판때까지만  유보된 한시적인 문제이기에  좋은 밀에대한 애정으로


가라지와 밀을 구분하는 노력까지  면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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