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꾸짖으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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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 ▨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16장,13-23 ┼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외향성 기질이 무척 강한 나는 활동적이다.

    어려서부터 봉사직에 많이도 참여하였고 정말 신바람나게 일했다.

    바로 그로 인해 성당에도 다녔고 영세도 받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성당의 봉사직이란 안해 본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때때로 본의 아니게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늘 마음은 봉사하는 사람들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질적으로 자신의 일을 한것이다.

    이제 집안에만 있어도 나는 조금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어느 것일까 하며 매순간 선택한다.

    비록 작고 초라한 일상의 일들이지만 나는 주님께 봉헌하며 하루를 맞이하고 또 그렇게 지낸다.

    같은 상황의 일이 십여년 전에도 있었다.

    중풍의 시아버지 뒷바라지를 십년 가까이 하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그 일이 하느님의 일이란 생각없이 하였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고

    그 상황에서 해방 되기만을 바랬다. 자신의 일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수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고 말씀 드린다.

    지금 주님은 내게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생각하며 지내노라면

    지난 세월 속의 어려웠던 상황들이 모두 주님의 섭리였음을 깨닫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삭혀야 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감사함으로 바뀌여 졌다.

  2. user#0 님의 말:

    ┼ ▨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16장,13-23 ┼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외향성 기질이 무척 강한 나는 활동적이다.

    어려서부터 봉사직에 많이도 참여하였고 정말 신바람나게 일했다.

    바로 그로 인해 성당에도 다녔고 영세도 받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성당의 봉사직이란 안해 본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때때로 본의 아니게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늘 마음은 봉사하는 사람들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질적으로 자신의 일을 한것이다.

    이제 집안에만 있어도 나는 조금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어느 것일까 하며 매순간 선택한다.

    비록 작고 초라한 일상의 일들이지만 나는 주님께 봉헌하며 하루를 맞이하고 또 그렇게 지낸다.

    같은 상황의 일이 십여년 전에도 있었다.

    중풍의 시아버지 뒷바라지를 십년 가까이 하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그 일이 하느님의 일이란 생각없이 하였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고

    그 상황에서 해방 되기만을 바랬다. 자신의 일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수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고 말씀 드린다.

    지금 주님은 내게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생각하며 지내노라면

    지난 세월 속의 어려웠던 상황들이 모두 주님의 섭리였음을 깨닫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삭혀야 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감사함으로 바뀌여 졌다.

  3. user#0 님의 말: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저도 그런 삶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굳게 믿으며
    당신을 진심으로 살아하며
    죽음의 힘도 누루지 못하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모습은……
    조금만 시련이 닥쳐오면 당신을 원망하고
    흔들리고 모래 집을 지으며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당신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 같아…..
    자신의 보족함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기적인 헬레나입니다
    무조건 당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 없이 손익계산을 합니다
    당신을 믿어 손해는 보지 않았는지….
    이익은 얼마나 되엇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적인 생각으로 기준을 하니
    손해만 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결산을 봅니다
    지금까지는 손해를 보앗을지라도….
    당신께서 저에게 이익을 주실 것이라고…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투자한 것을 생각하실 것이라고….
    잔머리를 굴립니다
    저에게 이익을 주실 것이라고….

    주님!

    이렇게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헬레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었을지라도…..
    당신의 사랑을 깨닫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말씀을 굳게 믿으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헬레나
    당신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헬레나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헬레나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멘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엄마! 저 보연이예요 별일없으시죠?
    그래 아빠 엄마 오빠는 잘 지내고 있단다 너도 잘 지내지?
    예!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건강하게 잘 지내라
    참! 엄마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요
    수업료를 일년치 한꺼번에 내면 5%를 혜택이 있어요
    기한이 내일까지래요
    알았다 엄마가 보낼께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잘지내라 티나 할머니께도 안부 전하고….
    엄마! 고마워요 열심히 할께요
    엄마!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주님!
    어제새벽에 딸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수업료를 내야 한다고 일년치를 한꺼번에 내면 혜택이 있다고….
    딸아이의 말에 저는 이유도 묻지 않고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요?
    딸아이를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제가 딸아이의 말에 이유를 묻고 따진다면 부모와 자식간의
    믿음이 깨지기에 딸아이에게 부모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유도 묻지 않고 거금을 보내겠다고 햇습니다
    그것도 전화 한마디에……
    이유도 묻지 않고…..
    남편이 그럽니다
    자세하게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유를 묻는 것보다….
    자세하게 알아보라고 하는 것보다….
    아빠 엄마가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딸의 말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저 잘한거죠?
    어차피 부모 품을 떠나 있는 딸에게 자신을 믿고 있다는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저 참 잘하거죠?
    그리고…..

    오늘…..
    딸아이가 공부하러 떠난 후….
    딸아이에게 갈 때 여비로 쓰려고 생각하고 저금했던 돼지 저금통을
    개봉하니 동전이 무려 백이십오만이었습니다
    (저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고 아들녀석에게 돈을 세게 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알뜰하게 사는지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아들녀석이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은행을 가서 동전을 바꾸고 ……..
    일년치 수업료를 보내주었습니다
    마음이 뿌듯햇습니다
    비록 통장에 돈이 없어졌지만……..
    돼지저금통이 죽었지만^^( 동전을 꺼내려 해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전화를………
    엄마야 돈 보냈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 안녕
    엄마!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에 눈물이 납니다
    저도 당신께 고백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당신께 ….
    당신을…..
    당신만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고백을 할수 없습니다
    양심이 찔려서입니다
    아직까지는 당신을 저의 인생에 전부라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딸아이를 믿는 것처럼….
    딸아이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
    당신을 사랑한다고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봅니다
    아껴두었던 동전까지 딸아이게 보냈던 것처럼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 한마디면……….
    이유도 묻지 않으며
    따지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 한마디면 만사가 오케이^^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아멘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 살아 계신 주 – 신상옥과 형제들

    211.199.125.88 ^*^: 보연이는 블랙홀이네요….ㅎㅎ 돼지를 잡아먹고…엄마의 사랑과 믿음을 먹고…. [08/09-11:02]

  5. user#0 님의 말: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1.말씀읽기:마태16,13-22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냐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①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와 ②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삶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 입이 아니라 내 삶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 동생인 헤로데 필립보가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도시입니다. 그 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카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카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공통된 생각은 ‘특별하신 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 삶이 멋지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삶이 그저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이 또 떠드네!”하면서 외면할 것입니다. 입만 살아서 움직이고, 일치보다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인간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초자연적인 것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계시를 받았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계시)이기에 이 “앎”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감사기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 1,42;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며, 성채이시고, 확실한 지주시며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모레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7,24-2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속량).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수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풀다와 매다”는 것은 ①“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②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기에 이제 중요한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카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광야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속량자로서의 메시아 사명을 사탄은 정치적인 메시아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유혹을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셨고, 예수님께로부터 치유 받은 사람들에게도 침묵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힘 있는 메시아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분으로 오해할까 염려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도 인간적인 마음에서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꾸중을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마음 안에 담겨 있는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은 사탄이 되어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의사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수술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게 되면 실수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것 만을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것을 생각해야 하고, 내 마음만을 주장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유혹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나는 유혹자가 되어 내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유혹하여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십니다.”내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210.95.187.27 마지아: 오랫만에 신부님 묵상글 접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사 내것보다 예수님의 것을, 내 목소리 보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성령께 도움주시기를 청하면서요. 그리고 내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지 않토록 노력하렵니다. [08/1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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