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바늘귀로 빠져 나가다.
우리는 재물과는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입니다. 하지만 재물에만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서도 안 되는 존재입니다.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부자는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재물이 자기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내가 돈이 많이 있건, 적게 있건 간에 말입니다. 그 재물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결국 예수님의 이 경고에 해당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이란 것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재물은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해 주십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재물과 하느님을 저울에 올려놓고서 자신의 이익을 따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예전에 밀가루 신자들이 구호품을 받으려고 성당에 열심히 나왔던 것처럼 성당에서도 미사 나오는 이들에게 돈을 준다면 빠지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주일학교가 잘 안되는 본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신부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얘들아! 아이들이 왜 성당에 안오지?”
“신부님! 교회가면 먹을 것도 주고, 은총표도 주고, 목사님이 학교 앞에 와서 문구도 사주고 그래요. 그런데 성당은 주이 것도 없잖아요.”
“……”
신부님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쩌지? 우린 그렇게 줄 수가 없는데… 성당에서 아무것도 안주면 너희들도 교회에 나갈래?”
그러자 아이들은 소리쳤습니다.
“아~뇨!”
“그래! 내가 물질적으로 너희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성당에 오면 너희들에게 기쁨은 주마.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을…”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떠나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결코 아무도 재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상심에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재물에 마음을 쓰다보면 재물에 마음이 가지 하느님께 마음이 가지 않는 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부자청년의 반응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부모공경, 이웃사랑… 이런 것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이것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평상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성당에도 잘 나가고, 활동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시련이 닥치면 풀이 죽어 버리거나 돌아서 버립니다. 부자청년도 그랬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마음의 중심이 하느님께로 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께로 온전히 마음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할 만큼 노력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고 매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베드로는 살며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예수님께 말씀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언제나 의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부터 이 말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게 되는 재생 때에, 나를 따른 여러분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 보다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주님!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