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죄의식


<말씀읽기 루가 9,7-9>


영주 헤로데가 (그 동안에) 일어난 모든 일을 듣고 구구한 소문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켜졌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하면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다. 그렇다면 내가 들은 이 소문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하였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보려고 했다.




<말씀연구>


죄의식


우리 속담에 맞은 놈은 두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두발 뻗고 자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지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죄를 짓고도 가슴 두근거리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죄 짓고서 마음조이면서 살았던 헤로데를 만나게 됩니다. 헤로데가 왜 세례자 요한을 죽였는지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 헤로데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분명 자신이 죽였는데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밖에 없을텐데…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봐라! 지금 이스라엘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도대체 누구더냐?”…


<이랬을 것입니다….개그콘서트 버전>




사람들은 이런 저런 답을 해습니다.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켜졌습니다.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종말에 앞서 오리라고 예언된 바로 그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헤로데는 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행동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다. 그렇다면 내가 들은 이 소문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예수님의 말과 행동으로 이룩된 믿을 수 없는 일들은 헤로데에게 있어서는 설명이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그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헤로데와 같은 착각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그분을 직접 보아야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조사해야만이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다음에 토마스 사도에게 “너는 나를 보아야만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헤로데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소문이 들릴 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당사자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을 가지고 들리는 것들을 판단하게 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습니다.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두 번째로 오늘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께서 종말에 앞서 오실 분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안다는 것은 만나고 그분을 조사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내 안에 그분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서는지 기쁨과 평온이 앞서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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