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이 없게 하소서. 저로 인하여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빠져드는 이 없도록 주님 저를 이끌어주소서. 저 비록 나약하여 많은 이들에게 상처주고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게 만듭니다. 주님! 제가 저를 돌아보며 좀더 생각하고 좀더 이해하며, 좀더 성숙하여 적어도 남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나이다. 비록 매번 실패하겠지만 다시 노력하겠나이다. 저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심어주신 믿음의 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그 나무가 저의 무딤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허영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나무가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제가 제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좀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되겠습니까? 남의 행동을 판단하려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면 되겠습니까? 비록 불가능한 것들만 말씀드리는 것 같사오나 평생 노력하여 적어도 비슷해지도록 노력을 하겠나이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주님! 저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이 없게 하소서. 저로 인하여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빠져드는 이 없도록 주님 저를 이끌어주소서. 저 비록 나약하여 많은 이들에게 상처주고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게 만듭니다. 주님! 제가 저를 돌아보며 좀더 생각하고 좀더 이해하며, 좀더 성숙하여 적어도 남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나이다. 비록 매번 실패하겠지만 다시 노력하겠나이다. 저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심어주신 믿음의 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그 나무가 저의 무딤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허영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나무가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제가 제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좀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되겠습니까? 남의 행동을 판단하려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면 되겠습니까? 비록 불가능한 것들만 말씀드리는 것 같사오나 평생 노력하여 적어도 비슷해지도록 노력을 하겠나이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넘 무섭습니다요 자 그렇다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리도록 제자들을 유혹하는 짓거리를 강력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내 형제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정한 부모-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서니 주일 거를때 자기도 죄짓고, 아이도 죄짓고. 더 나아가 아이는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안함으로써 가족들이 안하게 되니.
죄의 유혹 이것은 거의 하나의 인격적 세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며 배교로 이어진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하다.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만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매달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죄의 유혹은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온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위협과 함께 예언적인 불행 선언을 하신다. 좀있다가니 다시 할께요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제자들의 공동체는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잘못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는 성인들의 사회가 아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다면 결코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 형제를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꾸짖어 주라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기 19.17) 형제가 하는 꾸짖음은 그의 형제를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번씩이라도… 그 형제가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에 따라 살려면 먼저 자기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성취할 힘을 예수님께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밝히셨음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채울 힘을 주셨다.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믿음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다. 단 한치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도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검은 뽕나무(무화과나무)의 뿌리는 대단히 강하여 폭풍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6백년이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가장 작은 신뢰와 복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이 나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것.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넘 무섭습니다요 자 그렇다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리도록 제자들을 유혹하는 짓거리를 강력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내 형제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정한 부모-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서니 주일 거를때 자기도 죄짓고, 아이도 죄짓고. 더 나아가 아이는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안함으로써 가족들이 안하게 되니.
죄의 유혹 이것은 거의 하나의 인격적 세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며 배교로 이어진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하다.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만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매달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죄의 유혹은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온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위협과 함께 예언적인 불행 선언을 하신다. 좀있다가니 다시 할께요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제자들의 공동체는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잘못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는 성인들의 사회가 아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다면 결코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 형제를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꾸짖어 주라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기 19.17) 형제가 하는 꾸짖음은 그의 형제를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번씩이라도… 그 형제가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에 따라 살려면 먼저 자기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성취할 힘을 예수님께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밝히셨음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채울 힘을 주셨다.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믿음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다. 단 한치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도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검은 뽕나무(무화과나무)의 뿌리는 대단히 강하여 폭풍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6백년이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가장 작은 신뢰와 복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이 나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것.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오늘 미사가다가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아래를 보니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허허 혹시 미사갔다오다 신자들이 바다는 멀고 맨홀은 가깝고 하니 빠질까봐 맨홀 뚜껑을 닫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망가지고 남도 망가지니 나 하나면 참으면…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남을 죄짓게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예전에 고3때 주일날 저는 새벽 미사를 보고 놀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왈 지금 성당가서 뭐하니. 다 끝날텐데 나랑 놀러 가자… 그 친구는 나랑 놀러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 냉담중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한테 충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모르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받아들이지를 안하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의 말은 왜 행위의 결과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수회사에서 그는 교회의 집사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빼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왈 네 눈에는 이것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으나(당연히 나쁜짓이지) 하느님 보시는 눈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충고해 주어야 합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어렵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말겠습니다. 저도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미국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몇백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태풍에도 끄덕 없던 나무가 어느날 말라서 죽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나무속을 작은 벌레들이 갉아먹어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큰 나무가 작은 벌레들에 의해…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라는 이 말씀도 그런것이 아닌가? 내 안의 작은 벌레들. 불신의 작은 벌래들, 악행의 작은 벌래들, 남을 죄짓게 하는 작은 벌레들이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남도 쓰러뜨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하루 묵상해 보겠습니다.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오늘 미사가다가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아래를 보니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허허 혹시 미사갔다오다 신자들이 바다는 멀고 맨홀은 가깝고 하니 빠질까봐 맨홀 뚜껑을 닫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망가지고 남도 망가지니 나 하나면 참으면…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남을 죄짓게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예전에 고3때 주일날 저는 새벽 미사를 보고 놀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왈 지금 성당가서 뭐하니. 다 끝날텐데 나랑 놀러 가자… 그 친구는 나랑 놀러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 냉담중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한테 충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모르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받아들이지를 안하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의 말은 왜 행위의 결과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수회사에서 그는 교회의 집사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빼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왈 네 눈에는 이것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으나(당연히 나쁜짓이지) 하느님 보시는 눈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충고해 주어야 합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어렵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말겠습니다. 저도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미국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몇백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태풍에도 끄덕 없던 나무가 어느날 말라서 죽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나무속을 작은 벌레들이 갉아먹어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큰 나무가 작은 벌레들에 의해…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라는 이 말씀도 그런것이 아닌가? 내 안의 작은 벌레들. 불신의 작은 벌래들, 악행의 작은 벌래들, 남을 죄짓게 하는 작은 벌레들이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남도 쓰러뜨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하루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이가 받을 재앙과 용서의 필요성 그리고 믿음이 갖는 힘을 강조하신다. 제자들은 하느님에게서 어떤 사람도 떼어 놓아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용서하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 믿음을 강하게 하여 달라고 늘 청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하느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이가 받을 재앙과 용서의 필요성 그리고 믿음이 갖는 힘을 강조하신다. 제자들은 하느님에게서 어떤 사람도 떼어 놓아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용서하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 믿음을 강하게 하여 달라고 늘 청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하느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Re..묵상
주님! 저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이 없게 하소서.
저로 인하여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빠져드는 이 없도록 주님 저를 이끌어주소서.
저 비록 나약하여 많은 이들에게 상처주고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게 만듭니다.
주님! 제가 저를 돌아보며 좀더 생각하고 좀더 이해하며, 좀더 성숙하여
적어도 남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나이다.
비록 매번 실패하겠지만 다시 노력하겠나이다.
저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심어주신 믿음의 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그 나무가 저의 무딤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허영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나무가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제가 제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좀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되겠습니까?
남의 행동을 판단하려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면 되겠습니까?
비록 불가능한 것들만 말씀드리는 것 같사오나
평생 노력하여 적어도 비슷해지도록 노력을 하겠나이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Re..묵상
주님! 저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이 없게 하소서.
저로 인하여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빠져드는 이 없도록 주님 저를 이끌어주소서.
저 비록 나약하여 많은 이들에게 상처주고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게 만듭니다.
주님! 제가 저를 돌아보며 좀더 생각하고 좀더 이해하며, 좀더 성숙하여
적어도 남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나이다.
비록 매번 실패하겠지만 다시 노력하겠나이다.
저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심어주신 믿음의 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그 나무가 저의 무딤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허영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나무가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제가 제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좀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되겠습니까?
남의 행동을 판단하려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면 되겠습니까?
비록 불가능한 것들만 말씀드리는 것 같사오나
평생 노력하여 적어도 비슷해지도록 노력을 하겠나이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세밀한 독서를 위한 주석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넘 무섭습니다요
자 그렇다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리도록 제자들을 유혹하는 짓거리를 강력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내 형제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정한 부모-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서니 주일 거를때
자기도 죄짓고, 아이도 죄짓고. 더 나아가 아이는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안함으로써 가족들이 안하게 되니.
죄의 유혹
이것은 거의 하나의 인격적 세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며 배교로 이어진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하다.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만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매달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죄의 유혹은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온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위협과 함께 예언적인 불행 선언을 하신다.
좀있다가니 다시 할께요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제자들의 공동체는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잘못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는 성인들의 사회가 아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다면 결코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 형제를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꾸짖어 주라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기 19.17)
형제가 하는 꾸짖음은 그의 형제를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번씩이라도…
그 형제가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에 따라 살려면 먼저 자기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성취할 힘을 예수님께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밝히셨음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채울 힘을 주셨다.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믿음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다. 단 한치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도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검은 뽕나무(무화과나무)의 뿌리는 대단히 강하여 폭풍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6백년이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가장 작은 신뢰와 복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이 나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것.
그런 믿음 어디서 구하나.
돈주고 살수 있다면 살텐데….
세밀한 독서를 위한 주석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넘 무섭습니다요
자 그렇다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리도록 제자들을 유혹하는 짓거리를 강력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내 형제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정한 부모-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서니 주일 거를때
자기도 죄짓고, 아이도 죄짓고. 더 나아가 아이는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안함으로써 가족들이 안하게 되니.
죄의 유혹
이것은 거의 하나의 인격적 세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며 배교로 이어진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하다.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만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매달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다.
죄의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죄의 유혹은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온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위협과 함께 예언적인 불행 선언을 하신다.
좀있다가니 다시 할께요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제자들의 공동체는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잘못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는 성인들의 사회가 아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다면 결코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 형제를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꾸짖어 주라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기 19.17)
형제가 하는 꾸짖음은 그의 형제를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번씩이라도…
그 형제가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에 따라 살려면 먼저 자기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성취할 힘을 예수님께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밝히셨음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채울 힘을 주셨다.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믿음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다. 단 한치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도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검은 뽕나무(무화과나무)의 뿌리는 대단히 강하여 폭풍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6백년이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가장 작은 신뢰와 복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이 나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것.
그런 믿음 어디서 구하나.
돈주고 살수 있다면 살텐데….
Re..세밀한 독서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오늘 미사가다가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아래를 보니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허허
혹시 미사갔다오다 신자들이 바다는 멀고 맨홀은 가깝고 하니 빠질까봐 맨홀 뚜껑을 닫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망가지고 남도 망가지니 나 하나면 참으면…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남을 죄짓게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예전에 고3때 주일날 저는 새벽 미사를 보고 놀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왈
지금 성당가서 뭐하니. 다 끝날텐데
나랑 놀러 가자…
그 친구는 나랑 놀러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 냉담중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한테 충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모르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받아들이지를 안하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의 말은
왜 행위의 결과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수회사에서 그는 교회의 집사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빼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왈
네 눈에는 이것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으나(당연히 나쁜짓이지)
하느님 보시는 눈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충고해 주어야 합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어렵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말겠습니다.
저도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미국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몇백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태풍에도 끄덕 없던 나무가 어느날 말라서 죽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나무속을 작은 벌레들이 갉아먹어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큰 나무가 작은 벌레들에 의해…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라는 이 말씀도
그런것이 아닌가?
내 안의 작은 벌레들. 불신의 작은 벌래들, 악행의 작은 벌래들, 남을 죄짓게 하는 작은 벌레들이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남도 쓰러뜨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하루 묵상해 보겠습니다.
Re..세밀한 독서
“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오늘 미사가다가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아래를 보니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허허
혹시 미사갔다오다 신자들이 바다는 멀고 맨홀은 가깝고 하니 빠질까봐 맨홀 뚜껑을 닫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망가지고 남도 망가지니 나 하나면 참으면…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남을 죄짓게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예전에 고3때 주일날 저는 새벽 미사를 보고 놀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왈
지금 성당가서 뭐하니. 다 끝날텐데
나랑 놀러 가자…
그 친구는 나랑 놀러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 냉담중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한테 충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모르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받아들이지를 안하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의 말은
왜 행위의 결과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수회사에서 그는 교회의 집사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빼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왈
네 눈에는 이것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으나(당연히 나쁜짓이지)
하느님 보시는 눈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충고해 주어야 합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어렵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말겠습니다.
저도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미국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몇백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태풍에도 끄덕 없던 나무가 어느날 말라서 죽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나무속을 작은 벌레들이 갉아먹어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큰 나무가 작은 벌레들에 의해…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라는 이 말씀도
그런것이 아닌가?
내 안의 작은 벌레들. 불신의 작은 벌래들, 악행의 작은 벌래들, 남을 죄짓게 하는 작은 벌레들이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남도 쓰러뜨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하루 묵상해 보겠습니다.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가17,1~6)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이가 받을 재앙과 용서의 필요성 그리고 믿음이 갖는 힘을 강조하신다. 제자들은 하느님에게서 어떤 사람도 떼어 놓아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용서하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 믿음을 강하게 하여 달라고 늘 청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하느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주어야한다는 말씀이….
어제부터 복음을 읽고 묵상한답시고 …..왜 이렇게 어려운 말씀인지 답답해서..
잠을자고 아침이 되도 …몸이 피곤해서 그런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몸만 피곤한것이 아니라….마음이 편하지않기 때문인것을 …
저에게 상처를 준사람에게 …몇번씩이나 용서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에 얼마나 저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 반성이 됩니다
항상 제 자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이 복음말씀이 …거미와같은 삶을 살았던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의 교만한 마음이 …
특히 요즈음은 바쁘다는 핑계로 제가 인도한 예비자에게도 신경쓰지않고..
본당에서 활동을 많이 했을때는 …너무 힘이들어 ..
모든 직책을 놓고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자고 제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더 열심히 할것같이 자신만만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나태해지고 …본당공동체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않는
나도 왕년에 너네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열심히 봉사하는 자매님들을..
일곱번씩을 용서해주는사람은 제가 아니라 …
저의 교만함과 이기심으로 상처를 주신 모든분들께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인것을..
남을 죄짓게 하는것도 힘이 들지만 ….제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일이…
그래도 이렇게 복음을 묵상한답시고 …이렇게 몇자라도 적게되니 이순간이
저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느끼게 합니다
가방끈이 짧은것이 여지없이 들통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제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라도 통회의 시간을 갖게 되어 마음으로는
참 기쁘고 저 같은 사람도 회개할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
오늘하루 기쁘고 즐겁게 지내고 싶습니다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한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꿀벌과 같은 삷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뿐이지만….저도 언젠가는 ….희망을 갖고 살겠습니다
:
:
성서공부 하지않고 복음을 묵상하려니…
요즈음은 너무 힘이들고 …성서 말씀을 묵상하려해도 …..
답답하고 ..점점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생각해보니…성서공부를 하지않은것이 가장 큰
이유인것 같습니다
이제 반성도 해봤으니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은 이렇게 그럴듯하게 잘하는것이 제 주특기입니다
특기를 살려서,,,성서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성서를 만화책으로 ……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가17,1~6)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이가 받을 재앙과 용서의 필요성 그리고 믿음이 갖는 힘을 강조하신다. 제자들은 하느님에게서 어떤 사람도 떼어 놓아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용서하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 믿음을 강하게 하여 달라고 늘 청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하느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주어야한다는 말씀이….
어제부터 복음을 읽고 묵상한답시고 …..왜 이렇게 어려운 말씀인지 답답해서..
잠을자고 아침이 되도 …몸이 피곤해서 그런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몸만 피곤한것이 아니라….마음이 편하지않기 때문인것을 …
저에게 상처를 준사람에게 …몇번씩이나 용서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에 얼마나 저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 반성이 됩니다
항상 제 자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이 복음말씀이 …거미와같은 삶을 살았던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의 교만한 마음이 …
특히 요즈음은 바쁘다는 핑계로 제가 인도한 예비자에게도 신경쓰지않고..
본당에서 활동을 많이 했을때는 …너무 힘이들어 ..
모든 직책을 놓고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자고 제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더 열심히 할것같이 자신만만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나태해지고 …본당공동체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않는
나도 왕년에 너네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열심히 봉사하는 자매님들을..
일곱번씩을 용서해주는사람은 제가 아니라 …
저의 교만함과 이기심으로 상처를 주신 모든분들께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인것을..
남을 죄짓게 하는것도 힘이 들지만 ….제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일이…
그래도 이렇게 복음을 묵상한답시고 …이렇게 몇자라도 적게되니 이순간이
저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느끼게 합니다
가방끈이 짧은것이 여지없이 들통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제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라도 통회의 시간을 갖게 되어 마음으로는
참 기쁘고 저 같은 사람도 회개할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
오늘하루 기쁘고 즐겁게 지내고 싶습니다
“하루에 일곱번이나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한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꿀벌과 같은 삷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뿐이지만….저도 언젠가는 ….희망을 갖고 살겠습니다
:
:
성서공부 하지않고 복음을 묵상하려니…
요즈음은 너무 힘이들고 …성서 말씀을 묵상하려해도 …..
답답하고 ..점점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생각해보니…성서공부를 하지않은것이 가장 큰
이유인것 같습니다
이제 반성도 해봤으니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은 이렇게 그럴듯하게 잘하는것이 제 주특기입니다
특기를 살려서,,,성서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성서를 만화책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