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각해 봅시당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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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ser#0 님의 말: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어제 점심을 같이 한 자매와 대화중에 작년에 있었던 저녁모임에 아들을 데리고 나갔을 때 모신부님으로부터 들은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하면서 지금도 그 말이 생각난다합니다.
    그 때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신앙인다운 자세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제이기 전에 인간이고 인간은 완전할 수 없음을 우리 신자는 인식하고 그에 따라 신앙을 포기한다거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참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체를 모신 우리는 주님안에 한 형제라는 그런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각자의 능력도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주신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른 정도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주변환경등도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겸손의 기쁨을 알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니다.
    그 사람을 모르면 그 사람에 대해 흉을 본다는 말이 있지요.
    흉 또는 비하할 때 가리키는 손가락중 세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한 형제라는 기쁨이 충만하면 비하는 있을 수 없겠지요.

  2. user#0 님의 말: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어제 점심을 같이 한 자매와 대화중에 작년에 있었던 저녁모임에 아들을 데리고 나갔을 때 모신부님으로부터 들은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하면서 지금도 그 말이 생각난다합니다.
    그 때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신앙인다운 자세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제이기 전에 인간이고 인간은 완전할 수 없음을 우리 신자는 인식하고 그에 따라 신앙을 포기한다거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참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체를 모신 우리는 주님안에 한 형제라는 그런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각자의 능력도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주신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른 정도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주변환경등도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겸손의 기쁨을 알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니다.
    그 사람을 모르면 그 사람에 대해 흉을 본다는 말이 있지요.
    흉 또는 비하할 때 가리키는 손가락중 세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한 형제라는 기쁨이 충만하면 비하는 있을 수 없겠지요.

  3.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
    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주님의 도우심으로 위협은 당하지 않았어도 상처는 입었습니다.
    큰 아이 요한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저희는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성당은
    집 앞이고 신축중이라 파리 외방 사제시던 본당신부님은 힘겨운 고전을 치루고 계셨습니다.
    아직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곳이지만 아이는 교리반에 들어가 잘 적응하였습니다.
    그리도 열심이던 복사는 그 곳에서 못했지만 사제성소를 꿈꾸며 졸업 때 받은 저금을 반 나누어
    신축중인 본당에 주는 대견함도 보였습니다 .

    하루는 아이가 저녁 7시 학생미사를 끝내고 9시가 넘도록 돌아 오지 않아 길에나가 기다렸더니
    웬 청년 두사람이 아이를 감싸고 올라 오고 있었습니다.
    이사 온지 몇달 되지 않았기에 안나는 누군가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가까이 가니 아이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고 말이 없었습니다.
    악동이긴 하지만 원래가 속이 깊은 녀석이라 저는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청년들은 교사들이셨
    고 설명하시기를 요한이 신부님께 맞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제는 아버지신데 잘못하면 맞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던터라 염려말라 말씀 드리고 아이에게
    배려하신 교사들께 감사 드리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 방에 들어가 얘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미사 중에 웬 아이가 방귀를 뀌었는데 아이들이 웃었답니다. 요한도 웃었답니다.
    신부님이 고개를 들어 보시니 제일 앞자리 제일 먼저 성체를 모실 수 잇는 자리에 있던 요한이
    눈에 보이셨던지 미사 중에 내려 오셔서는 아이 뺨을 때리셨다 합니다.
    요한 말이 그것 까지는 괜찮지만 영성체 시간에 성체 모시러 나가니 발로 차시면서 성체 모실
    자격이 없다시며 너 같은 인간은 없어져야 한다 하셨답니다.

    이 시련을 허락하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 날 복음은 돌아 온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에 대한 강론을 해주신 사순시기였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지금은 사순시기이니 예수님 같이 잘 참아보자. 아마 하느님께서는 너가 제일
    잘 참아 받으리라 생각하시고 너를 택하셨나보다. 신부님 위해 기도하자. 집 지으시느라고 많이
    힘 드시나보다.(실제 돈이 부족해 건축업자로 부터 수모도 겪는다고 말씀하셨음)”

    본당 미사를 다시는 안 간다는 아이를 위로하고 안나는 삼일간 성체조배하며 마음을 다스렸습니
    다. 상처입은 아이와, 신부님. 부모인 저희.
    아이 가슴이 화해없이 주일 미사를 할 수가 없기에 저는 삼일 후에 신부님께 면담신청을 하고
    가지않으려는 아이를 달래어 사제관에 갔었습니다.
    아이는 문 밖에 있겠다기에 그러라 하고 먼저 제가 신부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에미가 가정교육이 부족해 거룩한 미사시간에 산만하게 한 죄를 용서 청했습니다.
    신부님은 화를 내시면서 썩은 사과는 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다른 사과 까지 썩는다 하셨습니다.

    13살 아이.
    이 아이들은
    제 아이가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 하느님의 아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안배와 신부님의 단순하심으로 자신이 잘못했노라 하시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이이니 직접 하시라 청하니 겸손하신 신부님은
    문 밖에 떨고 서있던 아이를 보시며 “이녀석아, 추운데 여기서 뭐해. 빨리 들어와.”
    하시고는 아이에게 용서를 청하시고 안수를 주셨습니다.
    장괘한 아들녀석은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아니라며 용서 할 수 없다던 아이.
    자기는 썩은 사과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생각지 않으신다고 위로하고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준 일에 감사드렸습니다.
    모든 판단과 용서는 하느님의 몫이니 우리가 그 안에서 힘겨워 하면 하느님 마음 아프시다
    얘기하였습니다.

    고통은 힘겹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불완전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스승임을 배웠습니다.
    인내와 겸손, 절제와 포용 관대함으로 의식의 확장을 선물 받습니다.
    모진 아픔이었으나 은총임을 깨닫는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진정 감사합니다.

    건강이 여의치 못하신 신부님은 검소함과 소박하심은 으뜸이십니다.
    떨어진 양말을 기워 신으시는 신부님. 그 흔한 자동차 하나 없으신 신부님.
    아! 주여! 당신 사제를 지켜주소서.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
    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섬김입니다. 안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려 얘쓰면 서로가 다치게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을 말하기 보다 좋은 점을 칭찬하면 그 영혼은 하느님의 빛으로 자신의 불완전을 볼 것
    이고 그러면 도움의 성령께서 일을 하실 것이니 안나는 하느님께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내가 섬겨 드리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안나도 잘 안되어 낑낑 거리지만 해보려고 시늉은 합니다.

  4.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
    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주님의 도우심으로 위협은 당하지 않았어도 상처는 입었습니다.
    큰 아이 요한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저희는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성당은
    집 앞이고 신축중이라 파리 외방 사제시던 본당신부님은 힘겨운 고전을 치루고 계셨습니다.
    아직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곳이지만 아이는 교리반에 들어가 잘 적응하였습니다.
    그리도 열심이던 복사는 그 곳에서 못했지만 사제성소를 꿈꾸며 졸업 때 받은 저금을 반 나누어
    신축중인 본당에 주는 대견함도 보였습니다 .

    하루는 아이가 저녁 7시 학생미사를 끝내고 9시가 넘도록 돌아 오지 않아 길에나가 기다렸더니
    웬 청년 두사람이 아이를 감싸고 올라 오고 있었습니다.
    이사 온지 몇달 되지 않았기에 안나는 누군가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가까이 가니 아이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고 말이 없었습니다.
    악동이긴 하지만 원래가 속이 깊은 녀석이라 저는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청년들은 교사들이셨
    고 설명하시기를 요한이 신부님께 맞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제는 아버지신데 잘못하면 맞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던터라 염려말라 말씀 드리고 아이에게
    배려하신 교사들께 감사 드리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 방에 들어가 얘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미사 중에 웬 아이가 방귀를 뀌었는데 아이들이 웃었답니다. 요한도 웃었답니다.
    신부님이 고개를 들어 보시니 제일 앞자리 제일 먼저 성체를 모실 수 잇는 자리에 있던 요한이
    눈에 보이셨던지 미사 중에 내려 오셔서는 아이 뺨을 때리셨다 합니다.
    요한 말이 그것 까지는 괜찮지만 영성체 시간에 성체 모시러 나가니 발로 차시면서 성체 모실
    자격이 없다시며 너 같은 인간은 없어져야 한다 하셨답니다.

    이 시련을 허락하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 날 복음은 돌아 온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에 대한 강론을 해주신 사순시기였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지금은 사순시기이니 예수님 같이 잘 참아보자. 아마 하느님께서는 너가 제일
    잘 참아 받으리라 생각하시고 너를 택하셨나보다. 신부님 위해 기도하자. 집 지으시느라고 많이
    힘 드시나보다.(실제 돈이 부족해 건축업자로 부터 수모도 겪는다고 말씀하셨음)”

    본당 미사를 다시는 안 간다는 아이를 위로하고 안나는 삼일간 성체조배하며 마음을 다스렸습니
    다. 상처입은 아이와, 신부님. 부모인 저희.
    아이 가슴이 화해없이 주일 미사를 할 수가 없기에 저는 삼일 후에 신부님께 면담신청을 하고
    가지않으려는 아이를 달래어 사제관에 갔었습니다.
    아이는 문 밖에 있겠다기에 그러라 하고 먼저 제가 신부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에미가 가정교육이 부족해 거룩한 미사시간에 산만하게 한 죄를 용서 청했습니다.
    신부님은 화를 내시면서 썩은 사과는 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다른 사과 까지 썩는다 하셨습니다.

    13살 아이.
    이 아이들은
    제 아이가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 하느님의 아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안배와 신부님의 단순하심으로 자신이 잘못했노라 하시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이이니 직접 하시라 청하니 겸손하신 신부님은
    문 밖에 떨고 서있던 아이를 보시며 “이녀석아, 추운데 여기서 뭐해. 빨리 들어와.”
    하시고는 아이에게 용서를 청하시고 안수를 주셨습니다.
    장괘한 아들녀석은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아니라며 용서 할 수 없다던 아이.
    자기는 썩은 사과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생각지 않으신다고 위로하고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준 일에 감사드렸습니다.
    모든 판단과 용서는 하느님의 몫이니 우리가 그 안에서 힘겨워 하면 하느님 마음 아프시다
    얘기하였습니다.

    고통은 힘겹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불완전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스승임을 배웠습니다.
    인내와 겸손, 절제와 포용 관대함으로 의식의 확장을 선물 받습니다.
    모진 아픔이었으나 은총임을 깨닫는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진정 감사합니다.

    건강이 여의치 못하신 신부님은 검소함과 소박하심은 으뜸이십니다.
    떨어진 양말을 기워 신으시는 신부님. 그 흔한 자동차 하나 없으신 신부님.
    아! 주여! 당신 사제를 지켜주소서.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
    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섬김입니다. 안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려 얘쓰면 서로가 다치게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을 말하기 보다 좋은 점을 칭찬하면 그 영혼은 하느님의 빛으로 자신의 불완전을 볼 것
    이고 그러면 도움의 성령께서 일을 하실 것이니 안나는 하느님께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내가 섬겨 드리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안나도 잘 안되어 낑낑 거리지만 해보려고 시늉은 합니다.

  5.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당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저는 사제에게 상처받아 신앙을 포기하려 했던 적이 없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제도 인간이기에 말로써 크고 작은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죄가 자신도 모르게 짓는 죄에 속할거라 생각되기에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신 스스로에게 또 하나의 죄라는 멍에를 씌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제들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부단히 기도해야 겠습니다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도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참된 겸손은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겸손하길 바라기보다 자신이 먼저 겸손한 모범을 보여야겠으며, 겸손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이해하며 함부로 비하하는 언행을 삼가해야 할거라 생각합니다
    자칭 겸손한 자라 생각했던 자체가 교만임을 모른 저를 아주 부끄럽게 하는 오늘의 말씀 깊이
    새기며 진정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자신을 성찰해 보는 하루 보내렵니다

  6.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당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저는 사제에게 상처받아 신앙을 포기하려 했던 적이 없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제도 인간이기에 말로써 크고 작은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죄가 자신도 모르게 짓는 죄에 속할거라 생각되기에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신 스스로에게 또 하나의 죄라는 멍에를 씌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제들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부단히 기도해야 겠습니다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도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참된 겸손은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겸손하길 바라기보다 자신이 먼저 겸손한 모범을 보여야겠으며, 겸손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이해하며 함부로 비하하는 언행을 삼가해야 할거라 생각합니다
    자칭 겸손한 자라 생각했던 자체가 교만임을 모른 저를 아주 부끄럽게 하는 오늘의 말씀 깊이
    새기며 진정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자신을 성찰해 보는 하루 보내렵니다

  7.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몇년전  저희가 장사를 했을때 저희집에  본당교우의 동서가  일하게 되었습니다

    동서간에 서로 사이가 좋지않아  다투더니 손윗동서인 자매님이  저희집에를

    하루가 멀다하고 와서는 동서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습니다

    저희집에 일하는 동서의 말에 의하면 천주교신자인 맏동서가 부모님도 몰라라하며

    동기간에 우애도 끊어놓고 제사도 지내지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기간들은 

     성당다니는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저는 저희집에 와서 동서간에 싸우는 자매님이 같은 신자로써 부끄럽고 창피해서

    성당에 가서 자매님에게 동서간에 다투지말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손윗동서로써

    교우인 자매님에게 창피하다고 하고 집에 왔는데…

    이튿날 본당신부님께서 남편과 함께 사제관에 오라고 그날이 주일이라 신부님

    께서도 미사준비로 바쁘실텐데 무슨일인가 하고 생각하며 남편과함께 사제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저희부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약한사람을 괴롭혔다고 무슨영문인지도  모르고 당한남편과

    자매님의 일방적인 말만듣고 저희부부를 나무라시는 신부님께 제가  한사람말만

    듣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그 자매님도 부르셔서 자초지종을 들으셔야 하지않겠느냐

    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저희부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하시며 화를 내셨습

    니다 남편과 저는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하루종일을 울었습니다

    그후 남편과 저는 영세한후 처음으로 두달동안을 셩당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분한마음도 들고 신부님이 너무 미워서 양쪽말을 들어 보지도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당한 저희는 주일만 되면 가슴이 뛰고 교우들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는 것같았습니다 누구한테도 말도 못하고…

    그후 저희부부가 성당에 보이지않자 신부님께서는  몇몇 교우들을 저희집에

    보내셔서 기도해주라고  영문을 모르는 신자들은 신부님께서 열심히하는

    저희집을 기도해주라고 하신다면서 이상하다는분도 있고 빽이 좋다는 분도 있고…

    몇달이 지나고 신부님께서 인사이동이 있어 본당을 떠나시기 전날 저희집에

    오셔서 저희에게 마음 상했던것 잊어버리라고 하시며 미안해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잘못판단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저의 손을  꼭잡고 말씀하신

    신부님의 표정에서  저희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으셨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

    니다 그리고  몇몇교우들에게  저희를 업어주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상처로 몇년이 지난 지금도 신부님을 뵙게되는 기회가 있어도

    저는 신부님께 인사를 하지않고 피합니다

    저역시 신부님을 용서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부님을 이해하기에는 저희의 상처가 너무 크고 깊기에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이기에 당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처를

    주신 신부님의 마음도 괴로우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제 신부님을 용서해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고   미워하는 그마음이 더 괴롭고 힘이 들기에

    이제  신부님께 대한 모든 나쁜감정과 미움을 잊겠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라는 이런 주제로  저에게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홍신부님깨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고백성사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번 사순절 판공성사는 이것으로 대신할수 있는지요?

    저에게 보속만 살짝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겸손이라는  단어자체가 솔직히 저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제 자신이 겸손하고는 거리가 멀기에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가는 겸손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입니다

    겸손해지려면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저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겸손함을

    보여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몇년전  저희가 장사를 했을때 저희집에  본당교우의 동서가  일하게 되었습니다

    동서간에 서로 사이가 좋지않아  다투더니 손윗동서인 자매님이  저희집에를

    하루가 멀다하고 와서는 동서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습니다

    저희집에 일하는 동서의 말에 의하면 천주교신자인 맏동서가 부모님도 몰라라하며

    동기간에 우애도 끊어놓고 제사도 지내지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기간들은 

     성당다니는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저는 저희집에 와서 동서간에 싸우는 자매님이 같은 신자로써 부끄럽고 창피해서

    성당에 가서 자매님에게 동서간에 다투지말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손윗동서로써

    교우인 자매님에게 창피하다고 하고 집에 왔는데…

    이튿날 본당신부님께서 남편과 함께 사제관에 오라고 그날이 주일이라 신부님

    께서도 미사준비로 바쁘실텐데 무슨일인가 하고 생각하며 남편과함께 사제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저희부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약한사람을 괴롭혔다고 무슨영문인지도  모르고 당한남편과

    자매님의 일방적인 말만듣고 저희부부를 나무라시는 신부님께 제가  한사람말만

    듣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그 자매님도 부르셔서 자초지종을 들으셔야 하지않겠느냐

    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저희부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하시며 화를 내셨습

    니다 남편과 저는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하루종일을 울었습니다

    그후 남편과 저는 영세한후 처음으로 두달동안을 셩당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분한마음도 들고 신부님이 너무 미워서 양쪽말을 들어 보지도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당한 저희는 주일만 되면 가슴이 뛰고 교우들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는 것같았습니다 누구한테도 말도 못하고…

    그후 저희부부가 성당에 보이지않자 신부님께서는  몇몇 교우들을 저희집에

    보내셔서 기도해주라고  영문을 모르는 신자들은 신부님께서 열심히하는

    저희집을 기도해주라고 하신다면서 이상하다는분도 있고 빽이 좋다는 분도 있고…

    몇달이 지나고 신부님께서 인사이동이 있어 본당을 떠나시기 전날 저희집에

    오셔서 저희에게 마음 상했던것 잊어버리라고 하시며 미안해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잘못판단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저의 손을  꼭잡고 말씀하신

    신부님의 표정에서  저희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으셨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

    니다 그리고  몇몇교우들에게  저희를 업어주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상처로 몇년이 지난 지금도 신부님을 뵙게되는 기회가 있어도

    저는 신부님께 인사를 하지않고 피합니다

    저역시 신부님을 용서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부님을 이해하기에는 저희의 상처가 너무 크고 깊기에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이기에 당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처를

    주신 신부님의 마음도 괴로우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제 신부님을 용서해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고   미워하는 그마음이 더 괴롭고 힘이 들기에

    이제  신부님께 대한 모든 나쁜감정과 미움을 잊겠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라는 이런 주제로  저에게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홍신부님깨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고백성사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번 사순절 판공성사는 이것으로 대신할수 있는지요?

    저에게 보속만 살짝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겸손이라는  단어자체가 솔직히 저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제 자신이 겸손하고는 거리가 멀기에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가는 겸손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입니다

    겸손해지려면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저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겸손함을

    보여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제가 철없는 12세때…
    인생을 바꿀수 있는 분도 사제이시고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수 있는 분도 사제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사제 한 분의 배려없는 결정으로 인해
    가족들의 절망과 비애…
    나 한사람만 국한된 상처이고 절망과 포기였다면 차라리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긍정하게 만들었던 사건들…그땐 절망 뿐이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위협을 당하는 편이 오히려 절망보다 나은것이라 생각이 들어었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그분을 영원히 잊어버리는 결과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마 사제도 인간이며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보다 사제라는 직분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저의 주관적인 잣대와 틀에 맞추었기 때문에 더욱 분노를 자아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금에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내 종교안에서 나를 바라볼줄 알고 하느님을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건 은총이고 자비이신 그분의 입김이시며 내치지 않고 품어준 사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복수의 칼로 마음을 도려내고 있었을때
    그분은 조용히 상처난 마음에 약을 발라주고 계셨던 것이지요
    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그분
    그것에 비교하면
    겨우…
    내 삶에 일부분이 도전 받았다는 이유로
    난 그분을 원망했고 죽음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사랑만 줬을뿐인데…
    이렇게 자신이 잘못된다던지 억울하다고 느껴질땐
    항상 연관을 지어 그분을 끌여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싸움으로 그분은 죄도없이 못 박히고 또 박혀질수 밖에 없는 존재…
    이것이 사랑임을…알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타인을 용서할 줄 모를때
    당신 가슴에 못박은 저를…
    조건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아! 이것이 용서였음을….

    그러기에
    어떠한 상황이 온다해도 그리고 종교가 부패의 극에 달할지라도
    종교를 떠날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 위해 돌아가신 그 분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참된 겸손은 남이 나를 겸손한 자로 바라볼 때 이지요
    겸손한 자는 자신이 겸손한 자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분은 인격이 스스로 다듬어져 그 분처럼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 가는 분이지요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자기를 비하시킨다고 마음 상한다면
    그 마음부터 버리지 않는 이상 겸손한 자가 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겸손은 누가 도와 준다해서 겸손해 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먼저 겸손한 자가 되어야
    상대방도 내 모습을 바라보고 저절로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10.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제들 때문에 신앙을 포기 했었거나 위협당한 적은 없으십니까?

    제가 철없는 12세때…
    인생을 바꿀수 있는 분도 사제이시고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수 있는 분도 사제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사제 한 분의 배려없는 결정으로 인해
    가족들의 절망과 비애…
    나 한사람만 국한된 상처이고 절망과 포기였다면 차라리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긍정하게 만들었던 사건들…그땐 절망 뿐이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위협을 당하는 편이 오히려 절망보다 나은것이라 생각이 들어었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그분을 영원히 잊어버리는 결과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마 사제도 인간이며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보다 사제라는 직분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저의 주관적인 잣대와 틀에 맞추었기 때문에 더욱 분노를 자아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금에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내 종교안에서 나를 바라볼줄 알고 하느님을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건 은총이고 자비이신 그분의 입김이시며 내치지 않고 품어준 사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복수의 칼로 마음을 도려내고 있었을때
    그분은 조용히 상처난 마음에 약을 발라주고 계셨던 것이지요
    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그분
    그것에 비교하면
    겨우…
    내 삶에 일부분이 도전 받았다는 이유로
    난 그분을 원망했고 죽음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사랑만 줬을뿐인데…
    이렇게 자신이 잘못된다던지 억울하다고 느껴질땐
    항상 연관을 지어 그분을 끌여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싸움으로 그분은 죄도없이 못 박히고 또 박혀질수 밖에 없는 존재…
    이것이 사랑임을…알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타인을 용서할 줄 모를때
    당신 가슴에 못박은 저를…
    조건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아! 이것이 용서였음을….

    그러기에
    어떠한 상황이 온다해도 그리고 종교가 부패의 극에 달할지라도
    종교를 떠날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 위해 돌아가신 그 분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2.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참된 겸손은 남이 나를 겸손한 자로 바라볼 때 이지요
    겸손한 자는 자신이 겸손한 자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분은 인격이 스스로 다듬어져 그 분처럼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 가는 분이지요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자기를 비하시킨다고 마음 상한다면
    그 마음부터 버리지 않는 이상 겸손한 자가 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겸손은 누가 도와 준다해서 겸손해 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먼저 겸손한 자가 되어야
    상대방도 내 모습을 바라보고 저절로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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