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말씀연구>
참으로 멋진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 자들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하면서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정결례, 안식일, 단식과 기도 등을 생각해 보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얼마나 번잡한 규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누르는 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 자신은 겉으로는 신심을 가장하면서도 자기네를 위해서는 그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으니 그들의 첫 번째 죄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위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허영심을 꼬집으십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보여주기 위한 것, 남에게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것. 명예로운 호칭을 좋아 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의 결과입니다. 성구 넣는 갑은 그리스 말로 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구 넣는 갑은 조그만 갑인데 그 속에 출애굽기 13,1-10. 11-16 그리고 신명기 6,4-9;11,13-21절 까지의 글귀를 양피지에 써서 넣었습니다. 작은 갑은 왼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기도할 때 그것을 다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명기 6,8절의 그릇된 해석에서 나온 습관 같습니다. 거기에는 야훼의 계명에 대하여 쓰여 이는데.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로니모는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알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로니모 당시 이 관습은 인도, 페르샤, 바빌론의 유다인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미신적인 것으로 타락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바리사이파 사람의 미신과 허영심은 사람의 눈에 돋보이도록 일부러 크게 만든 갑과 술에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 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예수님께서 존칭을 절대적으로 배척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적 겸손을 기르기 위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하느님의 높은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리브가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 “아브”,“앗바”(아버지)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라삐 이스마엘과 라삐 아키바는 세상의 아버지라 존경을 받고 그렇게 불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것을.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리스 말로 지도자는 “주”란 뜻이 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일꾼입니다. 제자의 일꾼이 되는 선생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을 누군가에게 전하려 한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행동거지에 따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도 있고
하느님을 욕되게 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십이 갓넘었을 때 교리를 받을 시기에
하루는 어떤 여인네 두 사람이 방문을 하여 성서 연구를 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마침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성서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자취방으로 정중이 모셨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도중 교리 상식이 짧은 무식한 내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우선 천주교를 비롯한 기존의 교파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천주교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마치 잘 알고 있는듯 비난 했습니다.
당시 내가 교리 중이긴 해도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흠숭지례나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는 나의 알고 있는 바를 토대로 조목 조목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 말이 ‘천주교 신자치고는 참 아는 것이 많군요.’
라며 물러 갔습니다.
이제 교리를 받는 사람이 알긴 무얼 알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미온적인 신앙자세에도
문제가 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눈치 챗겠지만 ‘여호아의 증인’ 이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후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아래 사는 사람들인데 쓰레기 차가 와도 자신들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서 이웃 사람과 다투는 것을 목격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음 교리 시간에 나는 수녀님께 그 일을 말씀드리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천주교는 왜 전교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가? 를 질문했습니다.
그때 수녀님 말씀이 ‘전교는 우리의 의무임으로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로 전교하기 이전에 생활인의 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 하셨고 저는 그 말씀에 깊이 공감을 했습니다.
말은 하기가 참 쉽습니다. 반면에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으로 말로 하기 이전에 주변 사람들이 볼때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생활 한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요
전교는 저절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볼때 저사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가? 그래서
그가 나를 알고 카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나에게
‘어쩐지 다르다고 생각했어’라고
의미있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가? 라고 물어봅니다…
저에게 개종하기를 권유받은 적이 있지요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사람들에게 잘못된 교리상식등을 조목조목 따지며 천주교로 오라고..
나중에 슬그머니 가버리더라구요 그때 용기가 생겼답니다
무조건 겁부터먹지말고 천주교에 대해 알려줘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성서공부를 많이해야한다는 것도…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08/23-07:53]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을 누군가에게 전하려 한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행동거지에 따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도 있고
하느님을 욕되게 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십이 갓넘었을 때 교리를 받을 시기에
하루는 어떤 여인네 두 사람이 방문을 하여 성서 연구를 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마침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성서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자취방으로 정중이 모셨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도중 교리 상식이 짧은 무식한 내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우선 천주교를 비롯한 기존의 교파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천주교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마치 잘 알고 있는듯 비난 했습니다.
당시 내가 교리 중이긴 해도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흠숭지례나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는 나의 알고 있는 바를 토대로 조목 조목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 말이 ‘천주교 신자치고는 참 아는 것이 많군요.’
라며 물러 갔습니다.
이제 교리를 받는 사람이 알긴 무얼 알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미온적인 신앙자세에도
문제가 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눈치 챗겠지만 ‘여호아의 증인’ 이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후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아래 사는 사람들인데 쓰레기 차가 와도 자신들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서 이웃 사람과 다투는 것을 목격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음 교리 시간에 나는 수녀님께 그 일을 말씀드리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천주교는 왜 전교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가? 를 질문했습니다.
그때 수녀님 말씀이 ‘전교는 우리의 의무임으로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로 전교하기 이전에 생활인의 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 하셨고 저는 그 말씀에 깊이 공감을 했습니다.
말은 하기가 참 쉽습니다. 반면에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으로 말로 하기 이전에 주변 사람들이 볼때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생활 한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요
전교는 저절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볼때 저사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가? 그래서
그가 나를 알고 카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나에게
‘어쩐지 다르다고 생각했어’라고
의미있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가? 라고 물어봅니다…
저에게 개종하기를 권유받은 적이 있지요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사람들에게 잘못된 교리상식등을 조목조목 따지며 천주교로 오라고..
나중에 슬그머니 가버리더라구요 그때 용기가 생겼답니다
무조건 겁부터먹지말고 천주교에 대해 알려줘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성서공부를 많이해야한다는 것도…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08/23-07:53]
요즘 저 자신을 보는데 아주 게을렀습니다.
얼마전 본당 캠프에서 비디오로 찍은 제 사진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작은 키에 뚱뚱해진 제 모습을 보며 우숩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외모야 다 늙어 그러려니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면의 모습도 이렇듯이 비정상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습니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착각속에 빠져
정말 돌보아야할 영혼을 방치하고 지냈습니다.
이제 육신을 위해 다이어트도 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영혼을 위한 다이어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니 앞이 캄캄합니다.
빼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양심에 걸러지지 않은 감정들로
쉽게 떠들고 주절거렸던 많은 말들이
나에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지난 몇달 정말 헛수고만 하고 산 느낌입니다.
다시 주님이 허락하신 내 일상안에서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얻고자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타올랐던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앞장 서 일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영향이 끼쳐질 모든 것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다시 내 마음을 모아야 겠습니다.
주님 도와 주소서!
제 안에 앙금처럼 앉아 있는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소서!!
나로 인해 영향이 끼쳐질 모든 것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다시 내 마음을 모아야 겠습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꼬~~옥 와 닿네요
지금의 저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감사해요 좋은 묵상을 해주심에 ………
주말 잘 보내세요
[08/23-21:09]
요즘 저 자신을 보는데 아주 게을렀습니다.
얼마전 본당 캠프에서 비디오로 찍은 제 사진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작은 키에 뚱뚱해진 제 모습을 보며 우숩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외모야 다 늙어 그러려니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면의 모습도 이렇듯이 비정상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습니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착각속에 빠져
정말 돌보아야할 영혼을 방치하고 지냈습니다.
이제 육신을 위해 다이어트도 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영혼을 위한 다이어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니 앞이 캄캄합니다.
빼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양심에 걸러지지 않은 감정들로
쉽게 떠들고 주절거렸던 많은 말들이
나에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지난 몇달 정말 헛수고만 하고 산 느낌입니다.
다시 주님이 허락하신 내 일상안에서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얻고자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타올랐던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앞장 서 일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영향이 끼쳐질 모든 것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다시 내 마음을 모아야 겠습니다.
주님 도와 주소서!
제 안에 앙금처럼 앉아 있는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소서!!
나로 인해 영향이 끼쳐질 모든 것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다시 내 마음을 모아야 겠습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꼬~~옥 와 닿네요
지금의 저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감사해요 좋은 묵상을 해주심에 ………
주말 잘 보내세요
[08/23-21:09]
어릴적 아빠가 그러셨습니다..
나쁜친구, 좋은 친구 둘과 함께 걸으면 모두가 스승이 된다고..
나쁜 친구를 보믄.. 나는 저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좋은 친구를 보믄.. 나는 저 친구를 닮아야지.. 라고욤..
언행일치가 안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리파 사람들을
주위에서도 흔히 볼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럴때가 종종 있꼬욤..
바른 말일수록 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오널 하루 내가 뱉은 말한마디에 책임지는 하루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부지의 유례.
낳아주시구 길러주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수 없기에
아부지라 부르게 됐다는….. 하…하하.. ㅡ.ㅡ;;;;;;;;;;;;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 다여니를 못가게 만들고 있지욤.. (__)
참 안탑갑습니다.
신자가 무신 도 닦는 사람도 아니공..
앞에서 조심한다고는 하지만..참 어렵습니다.
세례를 받았어도 다툴수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럴때마다 베로니카~~라고..
신자믄 좀 달라야하지 않겠냐고…
틀린말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두 아닌데.. 자꾸 종교적으로 문제를 끌구 나가 힘이 들곤 합니다.
동생도 저도 문제가 좀 있찌욤…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싫고
어설프게 다니는게 싫다고 합니다.
어떻게하면.. 동생이 주님이 내미는 손을 잡을수 있을까욤..?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주 가끔 행복한, 남은 인정하지 않지만 행복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만..
거의 대부분이 열등감으로 사는지라.. 모라 할 말이 없네욤..
감사해요 저에게 용기를 주셔서 주말 보람있게 보내세요
저는 주일인 내일 본당신부님 영명축일이라 성당에가서 맛있는 음식준비
하고 왔답니다 약속 없으시면 우리성당에 놀러오세요 맛있는 음식 많이
드릴께요 안뇽 [08/23-21:06]
어릴적 아빠가 그러셨습니다..
나쁜친구, 좋은 친구 둘과 함께 걸으면 모두가 스승이 된다고..
나쁜 친구를 보믄.. 나는 저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좋은 친구를 보믄.. 나는 저 친구를 닮아야지.. 라고욤..
언행일치가 안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리파 사람들을
주위에서도 흔히 볼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럴때가 종종 있꼬욤..
바른 말일수록 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오널 하루 내가 뱉은 말한마디에 책임지는 하루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부지의 유례.
낳아주시구 길러주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수 없기에
아부지라 부르게 됐다는….. 하…하하.. ㅡ.ㅡ;;;;;;;;;;;;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 다여니를 못가게 만들고 있지욤.. (__)
참 안탑갑습니다.
신자가 무신 도 닦는 사람도 아니공..
앞에서 조심한다고는 하지만..참 어렵습니다.
세례를 받았어도 다툴수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럴때마다 베로니카~~라고..
신자믄 좀 달라야하지 않겠냐고…
틀린말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두 아닌데.. 자꾸 종교적으로 문제를 끌구 나가 힘이 들곤 합니다.
동생도 저도 문제가 좀 있찌욤…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싫고
어설프게 다니는게 싫다고 합니다.
어떻게하면.. 동생이 주님이 내미는 손을 잡을수 있을까욤..?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주 가끔 행복한, 남은 인정하지 않지만 행복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만..
거의 대부분이 열등감으로 사는지라.. 모라 할 말이 없네욤..
감사해요 저에게 용기를 주셔서 주말 보람있게 보내세요
저는 주일인 내일 본당신부님 영명축일이라 성당에가서 맛있는 음식준비
하고 왔답니다 약속 없으시면 우리성당에 놀러오세요 맛있는 음식 많이
드릴께요 안뇽 [08/23-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