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말씀읽기: 루가1,26-38> 26 (그로부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31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32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33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36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37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38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말씀연구> 심부름. 가기 싫은 심부름이 있고, 가고 싶은 심부름이 있습니다. 오늘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주님의 탄생을 알려주려고 나자렛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처녀보고 애 낳으라는 심부름을 가는 가브리엘은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요? 물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인간적인 생각에서 보면 참 어려운 말씀 전하러 가는데…. 세례자 요한이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여섯달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나자렛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멸시를 하는 동네인 나자렛에서 태어나게 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는 거룩하고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성소에서 이루어진 반면, 예수님의 탄생 예고 거룩한 땅의 일부이지만 불경한 지역으로 여겨지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4)에 있는 한 동네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곳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한 사람의 예언자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한 7,52). 구약성서에서는 한 번도 그 동네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조차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빈정거렸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 경멸하는 하찮은 것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나자렛은 나무의 새순, 봉오리의 뜻입니다. 이사야에서도(11,1) 메시아를 햇순이라고 불렀고, 즈가리야(3,8;6,12)도 메시아를 제마하, 곧 새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자렛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곳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 동정녀의 아들이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왕가의 후손이 되도록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약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약혼이라는 말은 기혼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율법도 기혼자나 약혼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약혼녀가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예식이 결혼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정결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처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시고,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오명을 쓰지 않도록 약혼자를 갖게 하시고, 요셉을 보호자(양아버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아론의 누이의 이름이기도 했다(출애 15,20). 마리아는 히브리말의 미리암으로 야훼께 사랑받는 이란 뜻도 있다고 합니다. 또 왕비란 뜻도 있다고 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당겨 앞당겨 입으시고 은총에 충만한 분으로 지극히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께 은총에 충만하신 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뻐하여라”란 기쁨을 청하는 그리이스인의 인사입니다. 소아시아 사람은 살렘,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고 하여 평화를 청했고, 라틴 사람은 건강을 묻는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마음 속에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완전히 깃드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 누구 보다도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성모님은 당황하였습니다. 천사를 보고 당황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자기에게 해 준 인사말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즐겨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위로로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합니다.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예수 – 야훼는 구원이시다.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불릴 것이다”라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같으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그분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두 가지 본성과 한 위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처녀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본성,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적인 본성,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며 성자의 위격으로서의 예수님. 또한 예언자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다윗의 후계자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의 나라, 이스라엘 국민에게만 군림할 다윗의 후계가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영적 나라를 미리 알려 주는 징조로 한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 이것은 메시아가 다스릴 대상이 야곱의 피를 받은 자손 뿐 아니라, 히브리인, 이방인을 불문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교회, 나아가 온 인류를 말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나 같았으면 뭐라고 말했을까? <환장하것네. 시방 뭔 소리여! 이 사람이 돌았나! 난 말여 아직 처녀란 말여! 글구 곧 시집도 가야 하는 몸이란 말여. 싸게 나가셔> <저 이대로 평범하게 살게 죽다 내버려 두세요…> 처녀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천사에게 묻습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라는 히브리식 말투는 결혼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이 말에는 명백히 그녀가 세운 한 평생 독신으로 살며 정결을 지키겠다는 그녀의 허원이 나타나 있고, 결혼을 하고나서도 또한 지키겠다는 결심을 나타낸다.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이 엿보인다. 사실 만일 그녀가 결혼의 권리를 사용할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아기가 태어나리란 말을 들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바라고 있었으므로, 이 처녀와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양립시킬 수 있는가를 겸손하게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요셉과 약혼을 했을까? 그것은 부모의 의향을 따르려 했다든가, 관습을 거스리지 않으려고 했다던가, 요셉과 같은 사람과 맺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청혼을 피할 수 있고, 안심하고 자기 결심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 당시 옛 유다인에게 있어서 처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에쎄네파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고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로서 임신하게 될 일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잉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내려 오실 것이고 오직 하느님만이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의 경우를 들면서 확신을 시켜 줍니다. 아이 못 낳는 여인에게도(석녀 엘리사벳) 아기를 낳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불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께 투영하여 하느님도 불가능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은 말씀이 강생하시고,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은 이 강생을 마리아의 승낙을 조건으로 삼으심으로써, 자신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와의 불신과 반역행위를 지우셨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믿음을 드린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그를 칭찬해 봅시다. 2. 가끔은 하느님께 불신의 마음을 드리는 적이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이것을 해 주실까? 하실 수 있으실까?”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못하실 것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말씀읽기: 루가1,26-38>
26 (그로부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31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32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33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36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37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38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말씀연구>
심부름. 가기 싫은 심부름이 있고, 가고 싶은 심부름이 있습니다. 오늘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주님의 탄생을 알려주려고 나자렛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처녀보고 애 낳으라는 심부름을 가는 가브리엘은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요? 물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인간적인 생각에서 보면 참 어려운 말씀 전하러 가는데….
세례자 요한이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여섯달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나자렛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멸시를 하는 동네인 나자렛에서 태어나게 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는 거룩하고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성소에서 이루어진 반면, 예수님의 탄생 예고 거룩한 땅의 일부이지만 불경한 지역으로 여겨지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4)에 있는 한 동네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곳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한 사람의 예언자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한 7,52). 구약성서에서는 한 번도 그 동네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조차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빈정거렸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 경멸하는 하찮은 것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나자렛은 나무의 새순, 봉오리의 뜻입니다. 이사야에서도(11,1) 메시아를 햇순이라고 불렀고, 즈가리야(3,8;6,12)도 메시아를 제마하, 곧 새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자렛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곳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 동정녀의 아들이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왕가의 후손이 되도록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약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약혼이라는 말은 기혼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율법도 기혼자나 약혼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약혼녀가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예식이 결혼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정결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처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시고,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오명을 쓰지 않도록 약혼자를 갖게 하시고, 요셉을 보호자(양아버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아론의 누이의 이름이기도 했다(출애 15,20). 마리아는 히브리말의 미리암으로 야훼께 사랑받는 이란 뜻도 있다고 합니다. 또 왕비란 뜻도 있다고 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당겨 앞당겨 입으시고 은총에 충만한 분으로 지극히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께 은총에 충만하신 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뻐하여라”란 기쁨을 청하는 그리이스인의 인사입니다. 소아시아 사람은 살렘,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고 하여 평화를 청했고, 라틴 사람은 건강을 묻는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마음 속에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완전히 깃드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 누구 보다도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성모님은 당황하였습니다. 천사를 보고 당황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자기에게 해 준 인사말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즐겨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위로로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합니다.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예수 – 야훼는 구원이시다.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불릴 것이다”라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같으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그분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두 가지 본성과 한 위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처녀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본성,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적인 본성,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며 성자의 위격으로서의 예수님.
또한 예언자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다윗의 후계자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의 나라, 이스라엘 국민에게만 군림할 다윗의 후계가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영적 나라를 미리 알려 주는 징조로 한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 이것은 메시아가 다스릴 대상이 야곱의 피를 받은 자손 뿐 아니라, 히브리인, 이방인을 불문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교회, 나아가 온 인류를 말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나 같았으면 뭐라고 말했을까?
<환장하것네. 시방 뭔 소리여! 이 사람이 돌았나! 난 말여 아직 처녀란 말여! 글구 곧 시집도 가야 하는 몸이란 말여. 싸게 나가셔>
<저 이대로 평범하게 살게 죽다 내버려 두세요…>
처녀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천사에게 묻습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라는 히브리식 말투는 결혼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이 말에는 명백히 그녀가 세운 한 평생 독신으로 살며 정결을 지키겠다는 그녀의 허원이 나타나 있고, 결혼을 하고나서도 또한 지키겠다는 결심을 나타낸다.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이 엿보인다. 사실 만일 그녀가 결혼의 권리를 사용할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아기가 태어나리란 말을 들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바라고 있었으므로, 이 처녀와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양립시킬 수 있는가를 겸손하게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요셉과 약혼을 했을까? 그것은 부모의 의향을 따르려 했다든가, 관습을 거스리지 않으려고 했다던가, 요셉과 같은 사람과 맺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청혼을 피할 수 있고, 안심하고 자기 결심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 당시 옛 유다인에게 있어서 처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에쎄네파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고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로서 임신하게 될 일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잉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내려 오실 것이고 오직 하느님만이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의 경우를 들면서 확신을 시켜 줍니다. 아이 못 낳는 여인에게도(석녀 엘리사벳) 아기를 낳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불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께 투영하여 하느님도 불가능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은 말씀이 강생하시고,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은 이 강생을 마리아의 승낙을 조건으로 삼으심으로써, 자신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와의 불신과 반역행위를 지우셨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믿음을 드린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그를 칭찬해 봅시다.
2. 가끔은 하느님께 불신의 마음을 드리는 적이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이것을 해 주실까? 하실 수 있으실까?”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못하실 것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1.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믿음을 드린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그를 칭찬해 봅시다. 1)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는 믿음을 드린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제 주위에는 그런 분이 꽤 있습니다 가장 가까우신 친정 고모님이십니다. 세 분 고모님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사시지만 그 분은 매사에 온 몸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시려 함을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팔 남매를 낳아기르시면서(것두 주님의 뜻이니 안 낳을 수 없다시면서 다 낳아 기름) 허리가 휘어지도록 안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 다 하여 자녀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우시며 그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시며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한 명도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큼) 어떠한 어려운 일 앞에서도 늘 “이건 모두 주님의 뜻이니 우리 같은 피조물은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었죠
2. 가끔은 하느님께 불신의 마음을 드리는 적이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이것을 해 주실까? 하실 수 있으실까?”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못하실 것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솔직히 아주 가끔씩은 주님께서 할 수 있으실까가 아니라 들어주실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은 제 마음안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자랑스러움으로 간직하며 살아갑니다…그 것 또한 가장 큰 기쁨이라 여기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라는 굳은 믿음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찬미예수님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만약 마리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축일도 없었겠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부르심과 계획에 초대받습니다. 그런데 내 삶 속에서 나는 얼마나 성모님처럼 ‘예’라는 신앙적 응답을 드리면서 살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나를 둘러싼 사소한 사건과 일상의 경험이 때때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내가 창조해 갈 수 있는 몫보다도 사실은 나에게 주어지는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을 느낄수록 성모님께서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가 더욱 무겁게 전해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모두 알아듣고 동의하고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밑에 설 때까지도 마리아는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한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를 끝까지 살았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광대한 우주의 신비나 인생의 의미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에서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마리아처럼 묵묵히 삶의 현실을 (비록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가슴에 품고 그분을 따를 수는 없는지,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이며 삶이 아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유경촌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매사에 주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마음 속으로라도 관상할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뜻을 바로 알아듣고 순종하는 덕도 또한 청해 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며, 만물을 지어내신 분의 그 큰 권능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있기를 또한 청해봅니다.
어렸을적 당시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이 꽤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웃집에서 겻방살이하는 상덕이네가 있었는데 상덕어머니는 어린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서울 태생으로 농갓집일에 서투신 어머니일을 도와드리고는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상덕아빠는 가솔을 돌볼 생각을 않고 늘 술에 절어 있었으며 아내를 자주 폭행하는 사람으로 간혹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지거미를 자기고 와서 그집의 유일한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상덕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은데 유학자 집안으로 유학 사상이 투철하신 어머니께서 상덕어머니의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잘 이해하시지는 못하시면서도 그 사람의 신앙을 놀라워 하시며 그러한 형편에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험담을 하지 않는 상덕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러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상덕어머니는 자신의 신앙때문에 어쩌면 남편으로부터 더 힘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는 상덕어머니가 많이 맞고 왔는데 어머니께서 연유를 물으시니 상덕아버지왈 ‘술지거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덕은 하나님덕이 아니라 바로 내덕이라’며 아내를 구타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상덕어멈은 그 힘든 생활에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시며 놀라워 하셨었습니다. 중농정도의 농사채로 그리 부유한 형편은 아닌 우리집이 양식 걱정을 하지 않고 매사의 일을 사람을 사서 한다는 이유로 늘 우리집에는 어려운 사람이 식객으로 와서 살았는데 유독 상덕어머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비굴하거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우리집 안살림을 도왔으며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된 성서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양들과 함께 계시는 원색그림을 처음본 기억도 상덕어머니를 통해서인 듯 합니다. 그 후 어드론가 남편을 따라 이사를 갔고 들리는 말로는 상덕아버지는 쥐약을 먹고 죽은 개를 식용하다가 그 독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됬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어머니께서는 그 소문을 들으시고 상덕어머니를 생각하시며 매우 안타까워 하셨고 상덕어머니를참으로 신심이 돈독한 사람의 표양으로 말씀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신앙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신 분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금을 통하여 만날 수 있어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의 이웃이나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글로 들어서 알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 지금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바로 신앙인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의 유년기에 바로 이웃에서 살던 상덕어머니의 신앙을 상기해 보며 매우 훌륭한 신앙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세 받은 나이로 따진다면 삼십년이 넘었으니 장년의 나이인데 신앙의 성숙도는 유년기를 면치 못하는 뿌리 깊지 못한 자신의 신앙심을 성찰하며 대림시기에 예수님께서 오신 의미를 깊이 새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성탄과 새해를 맞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루실라: 좋은말씀 잘 읽었습니다. 시험은 끝나셨는지요? [12/09-07:33]
오늘 새벽에 일어나 첫눈을 밟고 성당에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정말 깨끗하구나 하면서 가로등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눈 그림자도 보았다.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곱고 깨끗한 눈도 조금있으면 사람들이 밟고 자동차가 지나 다니며 더러워지고 어느듯 세상이 혼잡하게 되겠구나~
요즈음 나는 엉뚱한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음 쓸 일이 생겼다. 이제 내게는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 갈 일은 없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되겠다 하며 주어진 여건을 잘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서 잘 살겠노라고 다짐을 했는데…..
미국으로 간 친지의 실수?로 나는 법정 싸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다 밝혀 질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로 한다.
이제 겨우 자리 잡아 안정된 생활로 가는구나… 늦었지만 가족이 힘을 합쳐 아이들이 제대하면 하다만 공부도 마저하고 어머니 잘 보살펴 드려 하느님 곁에 가시도록 최선을 다하면 되겠구나 했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저는 그동안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하면서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어머니의 건강도 악화되어 이제는 도저히 혼자 돌볼 수 없다. 동생이랑 번갈아 보지만 한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의 소리는 벗어날 길이 없다.
늘 모자란 잠 때문에 감기도 떨어지지 않고 피곤 한 몸으로 이 곳 저곳 뛰어 다니는 시간들.
어렵사리 살아 온 우리 가족인데…. 재판비용뿐 아니라 계속 들어 가는 잔 돈푼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은총을 많이 받았다. 주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컴 앞에 앉아 복음 작업하고 옆에 누워 계신 어머니 성화 받아 가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리고 원죄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잉태로 온 세상을 구원해 주실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것은 성모님의 믿음, 순명, 겸손, 인내에서 온 것이다. 그 덕행을 본받자 다짐하고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기도”를 마치며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
루실라: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주님을 기억하는 자매님의 모습에 고개숙여지네요 모니카 자매님의 가정에 어려운 일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저도 기도하겠습 니다. 날씨가 추운데 건강에도 신경 쓰셨으면 합니다. [12/09-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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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믿음을 드린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그를 칭찬해 봅시다.
1)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는 믿음을 드린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제 주위에는 그런 분이 꽤 있습니다
가장 가까우신 친정 고모님이십니다. 세 분 고모님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사시지만 그
분은 매사에 온 몸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시려 함을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팔 남매를 낳아기르시면서(것두 주님의 뜻이니 안 낳을 수 없다시면서 다 낳아 기름)
허리가 휘어지도록 안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 다 하여 자녀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우시며
그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시며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한 명도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큼)
어떠한 어려운 일 앞에서도 늘 “이건 모두 주님의 뜻이니 우리 같은 피조물은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었죠
2. 가끔은 하느님께 불신의 마음을 드리는 적이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이것을 해 주실까?
하실 수 있으실까?”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못하실 것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솔직히 아주 가끔씩은 주님께서 할 수 있으실까가 아니라 들어주실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은 제 마음안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자랑스러움으로
간직하며 살아갑니다…그 것 또한 가장 큰 기쁨이라 여기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라는 굳은 믿음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믿음을 드린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그를 칭찬해 봅시다.
1)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는 믿음을 드린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제 주위에는 그런 분이 꽤 있습니다
가장 가까우신 친정 고모님이십니다. 세 분 고모님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사시지만 그
분은 매사에 온 몸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시려 함을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팔 남매를 낳아기르시면서(것두 주님의 뜻이니 안 낳을 수 없다시면서 다 낳아 기름)
허리가 휘어지도록 안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 다 하여 자녀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우시며
그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시며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한 명도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큼)
어떠한 어려운 일 앞에서도 늘 “이건 모두 주님의 뜻이니 우리 같은 피조물은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었죠
2. 가끔은 하느님께 불신의 마음을 드리는 적이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이것을 해 주실까?
하실 수 있으실까?”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못하실 것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솔직히 아주 가끔씩은 주님께서 할 수 있으실까가 아니라 들어주실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은 제 마음안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자랑스러움으로
간직하며 살아갑니다…그 것 또한 가장 큰 기쁨이라 여기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라는 굳은 믿음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찬미예수님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만약 마리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축일도 없었겠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부르심과 계획에 초대받습니다.
그런데 내 삶 속에서 나는 얼마나 성모님처럼 ‘예’라는 신앙적 응답을 드리면서 살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나를 둘러싼 사소한 사건과 일상의 경험이 때때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내가 창조해 갈 수 있는 몫보다도 사실은 나에게 주어지는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을 느낄수록 성모님께서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가 더욱 무겁게 전해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모두 알아듣고 동의하고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밑에 설 때까지도 마리아는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한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를 끝까지 살았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광대한 우주의 신비나 인생의 의미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에서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마리아처럼 묵묵히 삶의 현실을 (비록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가슴에 품고 그분을 따를 수는 없는지,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이며 삶이 아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유경촌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매사에 주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마음 속으로라도 관상할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뜻을 바로 알아듣고 순종하는 덕도 또한 청해 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며, 만물을 지어내신 분의 그 큰 권능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있기를 또한 청해봅니다.
+찬미예수님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만약 마리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축일도 없었겠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부르심과 계획에 초대받습니다.
그런데 내 삶 속에서 나는 얼마나 성모님처럼 ‘예’라는 신앙적 응답을 드리면서 살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나를 둘러싼 사소한 사건과 일상의 경험이 때때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내가 창조해 갈 수 있는 몫보다도 사실은 나에게 주어지는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을 느낄수록 성모님께서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가 더욱 무겁게 전해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모두 알아듣고 동의하고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밑에 설 때까지도 마리아는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한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셨던 그 응답의 의미를 끝까지 살았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광대한 우주의 신비나 인생의 의미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에서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마리아처럼 묵묵히 삶의 현실을 (비록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가슴에 품고 그분을 따를 수는 없는지,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이며 삶이 아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유경촌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매사에 주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마음 속으로라도 관상할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뜻을 바로 알아듣고 순종하는 덕도 또한 청해 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며, 만물을 지어내신 분의 그 큰 권능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있기를 또한 청해봅니다.
어렸을적 당시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이 꽤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웃집에서 겻방살이하는 상덕이네가 있었는데 상덕어머니는 어린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서울 태생으로 농갓집일에 서투신 어머니일을 도와드리고는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상덕아빠는 가솔을 돌볼 생각을 않고 늘 술에 절어 있었으며 아내를 자주 폭행하는 사람으로 간혹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지거미를 자기고 와서 그집의 유일한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상덕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은데 유학자 집안으로 유학 사상이 투철하신 어머니께서 상덕어머니의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잘 이해하시지는 못하시면서도 그 사람의 신앙을 놀라워 하시며 그러한 형편에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험담을 하지 않는 상덕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러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상덕어머니는 자신의 신앙때문에 어쩌면 남편으로부터 더 힘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는 상덕어머니가 많이 맞고 왔는데 어머니께서 연유를 물으시니
상덕아버지왈 ‘술지거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덕은 하나님덕이 아니라 바로 내덕이라’며 아내를 구타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상덕어멈은 그 힘든 생활에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시며 놀라워 하셨었습니다.
중농정도의 농사채로 그리 부유한 형편은 아닌 우리집이 양식 걱정을 하지 않고 매사의 일을 사람을 사서 한다는 이유로 늘 우리집에는 어려운 사람이 식객으로 와서 살았는데 유독 상덕어머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비굴하거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우리집 안살림을 도왔으며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된 성서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양들과 함께 계시는 원색그림을 처음본 기억도 상덕어머니를 통해서인 듯 합니다. 그 후 어드론가 남편을 따라 이사를 갔고 들리는 말로는 상덕아버지는 쥐약을 먹고 죽은 개를 식용하다가 그 독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됬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어머니께서는 그 소문을 들으시고 상덕어머니를 생각하시며 매우 안타까워 하셨고 상덕어머니를참으로 신심이 돈독한 사람의 표양으로 말씀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신앙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신 분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금을 통하여 만날 수 있어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의 이웃이나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글로 들어서 알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 지금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바로 신앙인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의 유년기에 바로 이웃에서 살던 상덕어머니의 신앙을 상기해 보며 매우 훌륭한 신앙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세 받은 나이로 따진다면 삼십년이 넘었으니 장년의 나이인데 신앙의 성숙도는 유년기를 면치 못하는 뿌리 깊지 못한 자신의 신앙심을 성찰하며 대림시기에 예수님께서 오신 의미를 깊이 새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성탄과 새해를 맞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어렸을적 당시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이 꽤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웃집에서 겻방살이하는 상덕이네가 있었는데 상덕어머니는 어린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서울 태생으로 농갓집일에 서투신 어머니일을 도와드리고는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상덕아빠는 가솔을 돌볼 생각을 않고 늘 술에 절어 있었으며 아내를 자주 폭행하는 사람으로 간혹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지거미를 자기고 와서 그집의 유일한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상덕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은데 유학자 집안으로 유학 사상이 투철하신 어머니께서 상덕어머니의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잘 이해하시지는 못하시면서도 그 사람의 신앙을 놀라워 하시며 그러한 형편에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험담을 하지 않는 상덕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러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상덕어머니는 자신의 신앙때문에 어쩌면 남편으로부터 더 힘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는 상덕어머니가 많이 맞고 왔는데 어머니께서 연유를 물으시니
상덕아버지왈 ‘술지거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덕은 하나님덕이 아니라 바로 내덕이라’며 아내를 구타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상덕어멈은 그 힘든 생활에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시며 놀라워 하셨었습니다.
중농정도의 농사채로 그리 부유한 형편은 아닌 우리집이 양식 걱정을 하지 않고 매사의 일을 사람을 사서 한다는 이유로 늘 우리집에는 어려운 사람이 식객으로 와서 살았는데 유독 상덕어머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비굴하거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우리집 안살림을 도왔으며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된 성서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양들과 함께 계시는 원색그림을 처음본 기억도 상덕어머니를 통해서인 듯 합니다. 그 후 어드론가 남편을 따라 이사를 갔고 들리는 말로는 상덕아버지는 쥐약을 먹고 죽은 개를 식용하다가 그 독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됬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어머니께서는 그 소문을 들으시고 상덕어머니를 생각하시며 매우 안타까워 하셨고 상덕어머니를참으로 신심이 돈독한 사람의 표양으로 말씀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신앙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신 분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금을 통하여 만날 수 있어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의 이웃이나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글로 들어서 알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 지금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바로 신앙인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의 유년기에 바로 이웃에서 살던 상덕어머니의 신앙을 상기해 보며 매우 훌륭한 신앙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세 받은 나이로 따진다면 삼십년이 넘었으니 장년의 나이인데 신앙의 성숙도는 유년기를 면치 못하는 뿌리 깊지 못한 자신의 신앙심을 성찰하며 대림시기에 예수님께서 오신 의미를 깊이 새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성탄과 새해를 맞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첫눈을 밟고 성당에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정말 깨끗하구나 하면서
가로등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눈 그림자도 보았다.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곱고 깨끗한 눈도 조금있으면
사람들이 밟고 자동차가 지나 다니며 더러워지고
어느듯 세상이 혼잡하게 되겠구나~
요즈음 나는 엉뚱한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음 쓸 일이 생겼다.
이제 내게는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 갈 일은 없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되겠다 하며
주어진 여건을 잘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서 잘 살겠노라고 다짐을 했는데…..
미국으로 간 친지의 실수?로 나는 법정 싸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다 밝혀 질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로 한다.
이제 겨우 자리 잡아 안정된 생활로 가는구나…
늦었지만 가족이 힘을 합쳐 아이들이 제대하면
하다만 공부도 마저하고 어머니 잘 보살펴 드려
하느님 곁에 가시도록 최선을 다하면 되겠구나 했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저는 그동안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하면서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어머니의 건강도 악화되어
이제는 도저히 혼자 돌볼 수 없다.
동생이랑 번갈아 보지만 한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의 소리는 벗어날 길이 없다.
늘 모자란 잠 때문에 감기도 떨어지지 않고 피곤 한 몸으로
이 곳 저곳 뛰어 다니는 시간들.
어렵사리 살아 온 우리 가족인데….
재판비용뿐 아니라 계속 들어 가는 잔 돈푼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은총을 많이 받았다. 주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컴 앞에 앉아 복음 작업하고
옆에 누워 계신 어머니 성화 받아 가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리고 원죄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잉태로
온 세상을 구원해 주실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것은 성모님의 믿음, 순명, 겸손, 인내에서 온 것이다.
그 덕행을 본받자 다짐하고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기도”를 마치며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
모니카 자매님의 가정에 어려운 일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저도 기도하겠습
니다. 날씨가 추운데 건강에도 신경 쓰셨으면 합니다. [12/09-07:36]
오늘 새벽에 일어나 첫눈을 밟고 성당에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정말 깨끗하구나 하면서
가로등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눈 그림자도 보았다.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곱고 깨끗한 눈도 조금있으면
사람들이 밟고 자동차가 지나 다니며 더러워지고
어느듯 세상이 혼잡하게 되겠구나~
요즈음 나는 엉뚱한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음 쓸 일이 생겼다.
이제 내게는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 갈 일은 없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되겠다 하며
주어진 여건을 잘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서 잘 살겠노라고 다짐을 했는데…..
미국으로 간 친지의 실수?로 나는 법정 싸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다 밝혀 질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로 한다.
이제 겨우 자리 잡아 안정된 생활로 가는구나…
늦었지만 가족이 힘을 합쳐 아이들이 제대하면
하다만 공부도 마저하고 어머니 잘 보살펴 드려
하느님 곁에 가시도록 최선을 다하면 되겠구나 했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저는 그동안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하면서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어머니의 건강도 악화되어
이제는 도저히 혼자 돌볼 수 없다.
동생이랑 번갈아 보지만 한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의 소리는 벗어날 길이 없다.
늘 모자란 잠 때문에 감기도 떨어지지 않고 피곤 한 몸으로
이 곳 저곳 뛰어 다니는 시간들.
어렵사리 살아 온 우리 가족인데….
재판비용뿐 아니라 계속 들어 가는 잔 돈푼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은총을 많이 받았다. 주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컴 앞에 앉아 복음 작업하고
옆에 누워 계신 어머니 성화 받아 가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리고 원죄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잉태로
온 세상을 구원해 주실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것은 성모님의 믿음, 순명, 겸손, 인내에서 온 것이다.
그 덕행을 본받자 다짐하고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기도”를 마치며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
모니카 자매님의 가정에 어려운 일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저도 기도하겠습
니다. 날씨가 추운데 건강에도 신경 쓰셨으면 합니다. [12/09-0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