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 참..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가?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가? 


<말씀연구>


끝까지 들어보고 이야기 합시다. 중간에 듣다가 화를 내면 상대방도 마음이 아프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그런 일을 반복합니다. 상대방이 그러면 화를 내면서도 말입니다. 오늘 말씀 들어보면서 혹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잘못생각해서 일어나는 분노는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은 그것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유다인들의 이런 반응은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가리키고,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만 몰아세웠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라는 말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들의 의도와 적개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성전에서 돌맹이 장사 했으면 그날 잘 팔렸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32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보다는 유다인들로 하여금 좀더 깊이 생각하도록 이끄는 데 역점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많은 일들이 좋은 일들로 강조되고, 아버지로부터  위임된 일들로 평가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깊은 친교를 나누고 계시다는 것이 증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애수가 닮긴 예수님의 말씀. 좋은 일을 보고도 악한 일로 몰아 세우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예수님의 마음.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유다인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이렇게 대들고 있습니다.


33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오히려 비난하고 신성 모독죄로 몰아세웠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께 대한 유다인들의 불신이 더욱 확고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유다인들의 이런 비난은 복음서가 씌어질 당시에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진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다인들의 격렬한 비난과 논박이 당시 유다인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하느님은 율법을 당신 말씀으로 받아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들”이라고 칭했다는 뜻입니다. 시편 82,6에서 판관들을 “신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대표하는 사람을 “신”이라 칭하는사례를 구약성서의 다른 대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출애 4,16;7,1; 시편 45,7; 즈가12,8 참조).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신들로 칭해진다면, 하느님으로부터 당신 말씀, 곧 당신 계시의 전달자로서 파견된 예수님이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모른다 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파견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는 분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신들”로 칭해진 자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신성모독을 하지 않고서도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 하십니다.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일들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이고, 그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이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만이라도 진지하게 보고서 믿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다시금”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얼마나 많이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배척을 받으셨던가? 얼마나 많이…


하지만 아직은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좀더 교묘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유다인들의 교묘한 계획의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고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첫날을 보내시고, 최초의 제자들을 모으셨던 그곳으로 다시 가십니다. 아마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곳을 가 보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고 믿었습니다. 시골 촌 사람들의 믿음. 똑똑하다는 유다인들의 불신. 참으로 대조가 되는 모습입니다.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이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20.89.237.9 에디시: 저두,신부님말씀 끝까지 들어보겠슴다…^^ [04/1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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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 참..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가?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오늘 아침에 이 방을 왔다가도 그냥 지나치고 (망설이다가…)
    나갔다 신부님 메일 받고 다시 왔습니다!

    제가 요즘 가슴앓이를 하는 부분이 찔려서….
    오늘이 판공날인데….성찰이 안되어 맨날 고민하며 있던 중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주님의 은총으로 자신을 되돌아 보며 성찰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내가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지는 3년이 되었읍니다.
    내가 이 곳으로 온다는 말에 구역장이 하는 말이
    열심한 사람들이 오니 구역장 내놓아야지!!(같은 시기에 또 한분이 왔거든요)

    두어달이 지나도 아무도 방문을 안하더라구요..
    알아서 잘하리라는 마음에서인지 몰라도 서운하더라구요..

    반장을 만나 언제 반모임이 있느냐 하며 참석할 것이라는 통보를 했지요.
    그 이후 구역장과 방문해 주었고… 장소가 여의치 않아 실상 안되고 있다길래
    저희 집에서 하자고 했어요. 구역장도 직장이 있고 저역시 어머니 재운 후 밤이 좋아
    야간으로 반모임을 했습니다.

    첨에 몇번 나오던 반장이 나중에는 안나오면서 낮에 한다고 ..또 그럼 낮에 하자 하고
    기다렸는데 그게 안되더라구요….
    원래 반장의 성격이 그렇다네요,,
    나중에는 야간에는 야간대로 낮에는 낮대로 반모임을 했지요.
    세반 중 두 반이 섞어서 각자 편한 시간에….
    반장이 나오던 말던,,,,,

    그런데 낮에 하는 사람들은 암말도 안하는데 반장님들이 자꾸 브레이키를 거는 겁니다.
    어떻게든 낮으로 통일하자구…. 나야 억지로 하면 못할것도 없지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렵잖아요.
    그 과정에서 구역장은 이사가고 새 구역장이 선임되었는데
    우리반은 1반이구 2반장은 열심히 하시고 있었는데 열심한 사람들이 밤으로 몰린다구…
    사정이 있는 사람은 안나와도 좋다는 식이 되어 버렸지요.
    저의 경우에는 낮 두시에는 도저히 갈 형편이 안되고 어머니 모시고 몇번 갔으나 어렵더라구요.

    작년 가을 구역이 갈라지며 재편성 되었을 때 아무도 장 자리를 맡지 않는다 할때 어려움이 있었고
    나 역시도 생각 끝에 반장을 못한다했고 모두가 못한다 했을 때 그 1반장이 다시 자청했어요.
    모두가 아연실색하면서도 할 수 없이 새 구역장이 승락한대로 따르기로 했어요,

    나도 낮에 무리를 해서라도 열심히 도와주자 하며 서기를 자청했지요..
    그런데 하는 과정에 너무 뜻이 안맞는 겁니다.
    모두가 답답해 하면서도 따랐지요.
    그런데 그래도 그전 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는 반장의 모습보다는
    답답한 구석이 제 눈에 더 보이는 겁니다.
    두리뭉실, 어영구영…뭔가 의견을 제시해도 딴말만 하고…
    말도 없이 반모임 펑크 내고..
    이러저러 하다보니 성질머리 더러운 저는 참다 못해 다른반(구역의 2반은 야간반)으로 가겠다고 화를 내고 말았지요..

    그리고 지난 주에 안나갔어요,,
    반장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오라고 연락하는데 핑게 대고 안갔어요.
    이제는 반장이 문제가 아니고 제가 문제입니다.
    반장이 너무 싫은겁니다. 공연히 웃는 것도 싫구요..
    차라리 이것 저것 따질 것은 따지고 혼쾌히 털어버리고 시정해 줄것은 시정해주고
    자신의 주장은 우리에게 납득시키고…뭐 이랬으면 좋으련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웃어 넘기는 그 사람이 넘 싫은 겁니다.

    구역장도 속썩는 일이 많다면서 서로 서로 이해하자구 하는데,,,,
    난 3년을 노력했다고… 이제 안보고 싶다고…내 형편에 맞게 다른 반(야간에 하는)으로 가겠다고,,,

    그런데 맘이 편치 않아요..
    이런 내가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절대 아닌데,,,
    우스운 것은 제가 지난 12월 부터 매일 소공동체와 반장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반모임 가기 전에도 수없이 화살을 쏘아 올리며 가는데
    갈 때마다 화가 납니다. 더러는 참고 오고 더러는 한마디 쏘아부치고 오고..

    이게 뭔일입니까?
    내가 반장을 더 도와야 하는데….
    그리고 더욱 나를 죽이고 주님께 의탁해야하는데..
    내 눈에 비치는 반장의 모습을 보노라며 넘 열이 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도 넘기건만…..

    그리고 우리 반에 낮에 나올 수 있는 사람보다 방에 나올 사람이 더 많은데도 대책도 안세우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기회를 제공 안합니다! (반이 갈리면 안된다네요)
    반장이 없는 반모임은 할 수 없다는 말만하고….

    하느님의 일은 한답시고 쌈박질만 하는 그들과 다를바 없는 내 모습인것 같애 몇자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제 양심의 소리는 “네가 너를 죽이면 내가 교툥정리 해 주겠다! 이렇게 들려요”,,

    정말 죽어야 하는데 안죽어 집니다! 그런데 죽을랍니다! 기도해 주세요!!

    211.42.85.34 함중현: ^^ 그렇다구 자매님 자신을 너무 힘들게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자매님과 함께하십니다. 샬롬.. [04/11-13:37]
    211.42.85.34 루실라: 서울 살 때 구역모임에 참여하고 싶어 반장님께 건의하여 밤에 했는데 그 때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글에 많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주님께선 머지않아 자매님의 마음과 구역분들의 마음까지도 잘 헤아리고 다독여 주시리라 믿으며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04/11-14:02]
    220.89.237.9 에디시: 더불어산다는것은 멀까여? 우리에게,이웃은 멀까여? 우리에게,교회공동체는 멀까여? 우리는 멀까여? 나는 또,멀까여? 누굴,죽여야하는거져? [04/11-15:16]
    211.225.12.135 지나가는 나그네: 힘네십시요~~~~제가 그 반장 늑신 두들겨 버릴깝죠? 행님… ㅎㅎㅎ 두
    분을 위해 화살기도 올립니다.^^ [04/11-21:16]

  2. user#0 님의 말:

    오늘 아침에 이 방을 왔다가도 그냥 지나치고 (망설이다가…)
    나갔다 신부님 메일 받고 다시 왔습니다!

    제가 요즘 가슴앓이를 하는 부분이 찔려서….
    오늘이 판공날인데….성찰이 안되어 맨날 고민하며 있던 중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주님의 은총으로 자신을 되돌아 보며 성찰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내가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지는 3년이 되었읍니다.
    내가 이 곳으로 온다는 말에 구역장이 하는 말이
    열심한 사람들이 오니 구역장 내놓아야지!!(같은 시기에 또 한분이 왔거든요)

    두어달이 지나도 아무도 방문을 안하더라구요..
    알아서 잘하리라는 마음에서인지 몰라도 서운하더라구요..

    반장을 만나 언제 반모임이 있느냐 하며 참석할 것이라는 통보를 했지요.
    그 이후 구역장과 방문해 주었고… 장소가 여의치 않아 실상 안되고 있다길래
    저희 집에서 하자고 했어요. 구역장도 직장이 있고 저역시 어머니 재운 후 밤이 좋아
    야간으로 반모임을 했습니다.

    첨에 몇번 나오던 반장이 나중에는 안나오면서 낮에 한다고 ..또 그럼 낮에 하자 하고
    기다렸는데 그게 안되더라구요….
    원래 반장의 성격이 그렇다네요,,
    나중에는 야간에는 야간대로 낮에는 낮대로 반모임을 했지요.
    세반 중 두 반이 섞어서 각자 편한 시간에….
    반장이 나오던 말던,,,,,

    그런데 낮에 하는 사람들은 암말도 안하는데 반장님들이 자꾸 브레이키를 거는 겁니다.
    어떻게든 낮으로 통일하자구…. 나야 억지로 하면 못할것도 없지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렵잖아요.
    그 과정에서 구역장은 이사가고 새 구역장이 선임되었는데
    우리반은 1반이구 2반장은 열심히 하시고 있었는데 열심한 사람들이 밤으로 몰린다구…
    사정이 있는 사람은 안나와도 좋다는 식이 되어 버렸지요.
    저의 경우에는 낮 두시에는 도저히 갈 형편이 안되고 어머니 모시고 몇번 갔으나 어렵더라구요.

    작년 가을 구역이 갈라지며 재편성 되었을 때 아무도 장 자리를 맡지 않는다 할때 어려움이 있었고
    나 역시도 생각 끝에 반장을 못한다했고 모두가 못한다 했을 때 그 1반장이 다시 자청했어요.
    모두가 아연실색하면서도 할 수 없이 새 구역장이 승락한대로 따르기로 했어요,

    나도 낮에 무리를 해서라도 열심히 도와주자 하며 서기를 자청했지요..
    그런데 하는 과정에 너무 뜻이 안맞는 겁니다.
    모두가 답답해 하면서도 따랐지요.
    그런데 그래도 그전 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는 반장의 모습보다는
    답답한 구석이 제 눈에 더 보이는 겁니다.
    두리뭉실, 어영구영…뭔가 의견을 제시해도 딴말만 하고…
    말도 없이 반모임 펑크 내고..
    이러저러 하다보니 성질머리 더러운 저는 참다 못해 다른반(구역의 2반은 야간반)으로 가겠다고 화를 내고 말았지요..

    그리고 지난 주에 안나갔어요,,
    반장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오라고 연락하는데 핑게 대고 안갔어요.
    이제는 반장이 문제가 아니고 제가 문제입니다.
    반장이 너무 싫은겁니다. 공연히 웃는 것도 싫구요..
    차라리 이것 저것 따질 것은 따지고 혼쾌히 털어버리고 시정해 줄것은 시정해주고
    자신의 주장은 우리에게 납득시키고…뭐 이랬으면 좋으련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웃어 넘기는 그 사람이 넘 싫은 겁니다.

    구역장도 속썩는 일이 많다면서 서로 서로 이해하자구 하는데,,,,
    난 3년을 노력했다고… 이제 안보고 싶다고…내 형편에 맞게 다른 반(야간에 하는)으로 가겠다고,,,

    그런데 맘이 편치 않아요..
    이런 내가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절대 아닌데,,,
    우스운 것은 제가 지난 12월 부터 매일 소공동체와 반장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반모임 가기 전에도 수없이 화살을 쏘아 올리며 가는데
    갈 때마다 화가 납니다. 더러는 참고 오고 더러는 한마디 쏘아부치고 오고..

    이게 뭔일입니까?
    내가 반장을 더 도와야 하는데….
    그리고 더욱 나를 죽이고 주님께 의탁해야하는데..
    내 눈에 비치는 반장의 모습을 보노라며 넘 열이 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도 넘기건만…..

    그리고 우리 반에 낮에 나올 수 있는 사람보다 방에 나올 사람이 더 많은데도 대책도 안세우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기회를 제공 안합니다! (반이 갈리면 안된다네요)
    반장이 없는 반모임은 할 수 없다는 말만하고….

    하느님의 일은 한답시고 쌈박질만 하는 그들과 다를바 없는 내 모습인것 같애 몇자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제 양심의 소리는 “네가 너를 죽이면 내가 교툥정리 해 주겠다! 이렇게 들려요”,,

    정말 죽어야 하는데 안죽어 집니다! 그런데 죽을랍니다! 기도해 주세요!!

    211.42.85.34 함중현: ^^ 그렇다구 자매님 자신을 너무 힘들게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자매님과 함께하십니다. 샬롬.. [04/11-13:37]
    211.42.85.34 루실라: 서울 살 때 구역모임에 참여하고 싶어 반장님께 건의하여 밤에 했는데 그 때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글에 많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주님께선 머지않아 자매님의 마음과 구역분들의 마음까지도 잘 헤아리고 다독여 주시리라 믿으며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04/11-14:02]
    220.89.237.9 에디시: 더불어산다는것은 멀까여? 우리에게,이웃은 멀까여? 우리에게,교회공동체는 멀까여? 우리는 멀까여? 나는 또,멀까여? 누굴,죽여야하는거져? [04/11-15:16]
    211.225.12.135 지나가는 나그네: 힘네십시요~~~~제가 그 반장 늑신 두들겨 버릴깝죠? 행님… ㅎㅎㅎ 두
    분을 위해 화살기도 올립니다.^^ [04/11-21:16]

  3.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1)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2) 돌을 던지려고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특별히 좋은 일을 한 적이 없어서 돌 맞을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장 공동체내에서 교우들을 위해 주님의 심부름을 하다가 돌을 맞을지라도 제게
    주어진 일은 기쁜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 우리에게 주시는 무한한 사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사랑이신 하느님의 행적을 믿으며 나도 이웃에게 그 사랑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작은 사랑의 행위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려고 합니다

  4.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1)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2) 돌을 던지려고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특별히 좋은 일을 한 적이 없어서 돌 맞을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장 공동체내에서 교우들을 위해 주님의 심부름을 하다가 돌을 맞을지라도 제게
    주어진 일은 기쁜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 우리에게 주시는 무한한 사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사랑이신 하느님의 행적을 믿으며 나도 이웃에게 그 사랑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작은 사랑의 행위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려고 합니다

  5. user#0 님의 말:

    <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안나가 사랑하는 이를 누군가가 공경하고 사랑해 드리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좋아집니다.
    좋은 일을 하는 분의 공로인 성덕의 향기가 안나를 거룩하게 해주니 이 또한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안나가 못하지만 도와 주어야 할 일은 없을까 살펴보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바라보기만 합니다.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 믿음은 모든 상황을 떠나야 진정한 믿음이 오지 아닐까 싶습니다.
    조건도, 여건도, 모든 상황도 배제하고 말 하는 그대로 믿는 것,
    내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의 존재를 믿는 일은 아름다움 자체인 것 같습니다.
    맹종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향이 순수할 때는 모든 일을 좋게 만드시는 분의 섭리로 어리석음 조차 지혜로
    변화되겠지요? 성인들께서는 이성도 지성도 감성 조차 비우면 믿음이 온전해진다 하셨으니
    언제일런지는 몰라도 안나도 노력해 봅니다. 모든 틀을 벗어 버리면 참 자유롭다지요?

    2) 안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아주 아주 조금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말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하느님의 그 넓으심은 신비이지만 안나가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을까?
    온 세상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다 합치면 하느님의 모습일까?
    바보!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느님을 알지? 하고는
    노력도 안합니다.

  6. user#0 님의 말:

    <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안나가 사랑하는 이를 누군가가 공경하고 사랑해 드리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좋아집니다.
    좋은 일을 하는 분의 공로인 성덕의 향기가 안나를 거룩하게 해주니 이 또한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안나가 못하지만 도와 주어야 할 일은 없을까 살펴보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바라보기만 합니다.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 믿음은 모든 상황을 떠나야 진정한 믿음이 오지 아닐까 싶습니다.
    조건도, 여건도, 모든 상황도 배제하고 말 하는 그대로 믿는 것,
    내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의 존재를 믿는 일은 아름다움 자체인 것 같습니다.
    맹종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향이 순수할 때는 모든 일을 좋게 만드시는 분의 섭리로 어리석음 조차 지혜로
    변화되겠지요? 성인들께서는 이성도 지성도 감성 조차 비우면 믿음이 온전해진다 하셨으니
    언제일런지는 몰라도 안나도 노력해 봅니다. 모든 틀을 벗어 버리면 참 자유롭다지요?

    2) 안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아주 아주 조금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말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하느님의 그 넓으심은 신비이지만 안나가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을까?
    온 세상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다 합치면 하느님의 모습일까?
    바보!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느님을 알지? 하고는
    노력도 안합니다.

  7.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이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좋은일을 하는 분들을 대할때 기분이 무지 좋습니다.^^
    그분의 신분,나이,그리고 생김새가 어떻든 존경스러울 뿐이지요.
    저역시 닮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더군요
    언젠가 어떤 열심한 신자분이 슬픈얼굴을 하면서 그럽디다
    ‘전 하느님을 매일 보는게 제 소원인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서 슬프다고 하더군요
    미사에 매일 다니다 보면 각 단체들이 우리단체에 들으라고 가만 놔두질 않지요
    신부님 역시 너무 열심하고 당신한테 잘하니(알사탕도 사옵니다) 얼마나 이쁩니까?(신부님들은 남여노소 할것없이 매일미사 나오면 제일 이뻐하죠.)
    신부님이 이뻐해 주니 주위사람들…가만 안 놔두지요
    신부님한테 잘하는 모습만 봐도 이말저말 보태서 한보따리 풀어놓는거… 죄의식 없이 잘도 합죠
    ‘내원~~ 죽을 맛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영혼의 아버지신 신부님한테 못하면
    잘하는 자매님이 고마워서라도 칼국수 한그릇 사줄것이지…그렇게는 못할망정
    허~참 넘까지 못하게 하는 요상한 인간도 무지 많더구만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죠.(저도 별볼일 없는 주제에~)
    그사람은 신나게 입방아 찧느라 입은 고소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지옥일겝니다.
    그것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영혼 지옥행입죠 허허
    자매님은 천사니깐 천당표 잖수?
    그런데 뭐가 슬프십니까요? 천당표인데….
    그들의 말과 고통 때문에 천당표 안 받겠다는 말유?
    누구때문에…
    무엇때문에…
    천당표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구 했습죠…

    히~그런데 넘 얘기하다 지는 없구만유
    이렇게 말하는 저요?
    부끄럽습니다만 오래전 지옥티켓 열심히 모았던 사람였습다
    그눔에 티켓으로 머리통을 얻어맞고
    하느님께 뽀뽀해 달라고 그분 입술 물어 뜯어씁죠
    하느님이 그러시더군요
    너는 내 몸뚱이를 왜 이리 가만 놔두지 않느냐고…(그려~차라리 뜯어먹어라 임마)우히히
    그분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는걸 보고야 전 느꼈습죠
    이렇게 살면 제손이 제입을 찟어서
    말마저 못할거라고….
    내가 말을 잘못할 때마다 그분에 입술에선 피가 난다는 것을….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에 대해 알고있는지 없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신뷔님…
    어제에 이어 계속 왜 그러시는 겁니까? 어렵시리…ㅎㅎㅎ
    혹시 별명이 찰거머리 아니십니까? (지송혀유)

    그분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에 눈이 멀었는데 보일까요?
    헌데 정말 저의 어머니 말씀 맞다나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긴 보이는데…
    저의 어머닌 그분이 보이셨나 봅니다.

    제가 머리가 커졌을때…
    저는’어디? 어디? 아무리 봐두 없구만…’그랬습죠
    그리고 어머니께 왜 거짓말만 시키냐고 했습지요.

    어머니는 늘 그랬습니다.
    메뚜기만 봐도 하느님이 보이지 않느냐고
    ‘구람 똥숫간에 있는 구더기도 하느님이시겠네? ‘ㅋㅋㅋ
    그러면 왜 하느님을 죽이는 고야? 허참~알수 없었습니다.
    어려선 정말 구더기도 하느님이라면 그런줄 알았는데…
    그런데 정말 보이더군요
    어느날….
    바로
    여기있더군요…..





    세상이었답니다.

    아이가 세상을 알기 위해서
    부모에게 그러죠 ‘엄마 이게 뭐야’
    왜? 라는 질문으로 부터 시작한다 합니다.
    그건 그분을 알기 위한 물음인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을 배웠잖습니까?
    배웠는데…모른다는건…쪕$^$%$
    조금 크면 어린이 처럼 있는 그대로 믿는 마음이 사라지고
    세상을 내 생각대로 만들어가기 때문일겝니다.
    하느님을 밀가루 반죽하듯 이리저리 주물러 내생각,모습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고(성철스님이 그러셨쥬?)세상은 세상이지요.
    그래서 세상은 그분입죠…(이건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있다고 확실하게 정의 할수 있는건
    세상있기에 자연이 있는 것이며
    그속에 생기돋은 식물이나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
    그리고 작은 나눔들이 모아져 배불둑한 어린이의 생명이 살아나는 곳에서…
    그분을 진실로 느낄수 있기에
    그분이 계심을 확실하게 정의할수 있습니다.

    헐헐~~ 잘난척 하긴…
    이몸은 바리사이~~~~임다요^^

  8.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요 >

    1. 좋을 이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합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야.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돌에 맞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좋은일을 하는 분들을 대할때 기분이 무지 좋습니다.^^
    그분의 신분,나이,그리고 생김새가 어떻든 존경스러울 뿐이지요.
    저역시 닮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더군요
    언젠가 어떤 열심한 신자분이 슬픈얼굴을 하면서 그럽디다
    ‘전 하느님을 매일 보는게 제 소원인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서 슬프다고 하더군요
    미사에 매일 다니다 보면 각 단체들이 우리단체에 들으라고 가만 놔두질 않지요
    신부님 역시 너무 열심하고 당신한테 잘하니(알사탕도 사옵니다) 얼마나 이쁩니까?(신부님들은 남여노소 할것없이 매일미사 나오면 제일 이뻐하죠.)
    신부님이 이뻐해 주니 주위사람들…가만 안 놔두지요
    신부님한테 잘하는 모습만 봐도 이말저말 보태서 한보따리 풀어놓는거… 죄의식 없이 잘도 합죠
    ‘내원~~ 죽을 맛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영혼의 아버지신 신부님한테 못하면
    잘하는 자매님이 고마워서라도 칼국수 한그릇 사줄것이지…그렇게는 못할망정
    허~참 넘까지 못하게 하는 요상한 인간도 무지 많더구만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죠.(저도 별볼일 없는 주제에~)
    그사람은 신나게 입방아 찧느라 입은 고소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지옥일겝니다.
    그것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영혼 지옥행입죠 허허
    자매님은 천사니깐 천당표 잖수?
    그런데 뭐가 슬프십니까요? 천당표인데….
    그들의 말과 고통 때문에 천당표 안 받겠다는 말유?
    누구때문에…
    무엇때문에…
    천당표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구 했습죠…

    히~그런데 넘 얘기하다 지는 없구만유
    이렇게 말하는 저요?
    부끄럽습니다만 오래전 지옥티켓 열심히 모았던 사람였습다
    그눔에 티켓으로 머리통을 얻어맞고
    하느님께 뽀뽀해 달라고 그분 입술 물어 뜯어씁죠
    하느님이 그러시더군요
    너는 내 몸뚱이를 왜 이리 가만 놔두지 않느냐고…(그려~차라리 뜯어먹어라 임마)우히히
    그분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는걸 보고야 전 느꼈습죠
    이렇게 살면 제손이 제입을 찟어서
    말마저 못할거라고….
    내가 말을 잘못할 때마다 그분에 입술에선 피가 난다는 것을….

    2.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리석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은 보고 믿었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틀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에 대해 알고있는지 없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신뷔님…
    어제에 이어 계속 왜 그러시는 겁니까? 어렵시리…ㅎㅎㅎ
    혹시 별명이 찰거머리 아니십니까? (지송혀유)

    그분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에 눈이 멀었는데 보일까요?
    헌데 정말 저의 어머니 말씀 맞다나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긴 보이는데…
    저의 어머닌 그분이 보이셨나 봅니다.

    제가 머리가 커졌을때…
    저는’어디? 어디? 아무리 봐두 없구만…’그랬습죠
    그리고 어머니께 왜 거짓말만 시키냐고 했습지요.

    어머니는 늘 그랬습니다.
    메뚜기만 봐도 하느님이 보이지 않느냐고
    ‘구람 똥숫간에 있는 구더기도 하느님이시겠네? ‘ㅋㅋㅋ
    그러면 왜 하느님을 죽이는 고야? 허참~알수 없었습니다.
    어려선 정말 구더기도 하느님이라면 그런줄 알았는데…
    그런데 정말 보이더군요
    어느날….
    바로
    여기있더군요…..





    세상이었답니다.

    아이가 세상을 알기 위해서
    부모에게 그러죠 ‘엄마 이게 뭐야’
    왜? 라는 질문으로 부터 시작한다 합니다.
    그건 그분을 알기 위한 물음인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을 배웠잖습니까?
    배웠는데…모른다는건…쪕$^$%$
    조금 크면 어린이 처럼 있는 그대로 믿는 마음이 사라지고
    세상을 내 생각대로 만들어가기 때문일겝니다.
    하느님을 밀가루 반죽하듯 이리저리 주물러 내생각,모습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고(성철스님이 그러셨쥬?)세상은 세상이지요.
    그래서 세상은 그분입죠…(이건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있다고 확실하게 정의 할수 있는건
    세상있기에 자연이 있는 것이며
    그속에 생기돋은 식물이나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
    그리고 작은 나눔들이 모아져 배불둑한 어린이의 생명이 살아나는 곳에서…
    그분을 진실로 느낄수 있기에
    그분이 계심을 확실하게 정의할수 있습니다.

    헐헐~~ 잘난척 하긴…
    이몸은 바리사이~~~~임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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