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십니다. 오늘은 노동자 요셉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오늘 축일의 의미는 바로 목수이신 요셉성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 목수 일을 하셨던 성 요셉.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1955년 5월 1일,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 축일에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노동자 성 요셉”축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성가정의 보호자로 간택되신 성 요셉은 자신의 본업인 목수 일을 하시며 성자 예수님을 무난히 양육하셨고, 예수님 역시 부모를 도와 목수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는 인간의 노동 문제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수차례에 걸쳐 노동 문제에 관한 칙서를 반포하고, 심각해진 노동 문제 해결을 도우며 노동자의 앞길을 명시해 주고 철저한 노동 정책을 수립하도록 세계에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의 의의는 교회의 입장에서 노동의 신성성을 주장하고, 교회 정신에 입각한 노동 사회를 세움으로써 인간 본연의 목적을 달성시키도록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54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서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는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놀랐습니다.


55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자신 뿐만아니라 상대방을 올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형제 자매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기에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57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그리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혹시 내가 로또 300억 당첨 되었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대로 다니시겠습니까?




2.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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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1.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혹시 내가 로또 300억 당첨 되었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대로 다니시겠습니까?

    300억이나 되는 돈이 당첨된다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돈은 오히려 화가 되지 않을까..
    주위의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간만에 선심을 베푸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 좋겠지만..
    가진 사람이 더 무섭다고 나 또한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돈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된 불특정 다수인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고 그 사람의 신용을 풀 길이 열려 사회안에서 겪는 고통에서 해방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건 그렇고,
    근 25년여 전에 학교 졸업하고 만 일년 넘게 집에서 놀면서 노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의 직업에 대해 너무도 감사하고 있고,
    주님 곁으로 갈 때까지 주님 주신 시간을 잘 쓸 수 있는 은총을 청해본다

    2.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람이며 형제임을 깊이 새로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형제를 비하하는 것은 곧 자신을 비하하는 것임을 깨달을 일이다.
    상대방을 비하한다고 해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올라간다고 알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형제를 귀히 여길 일이다.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여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일이다.
    현명한 사람은 잘 듣는다고한다.
    말하기에 바쁜 사람은 귀담아 듣기에 인색하다.
    자신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우리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들을 일이다.

  2.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1.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혹시 내가 로또 300억 당첨 되었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대로 다니시겠습니까?

    300억이나 되는 돈이 당첨된다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돈은 오히려 화가 되지 않을까..
    주위의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간만에 선심을 베푸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 좋겠지만..
    가진 사람이 더 무섭다고 나 또한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돈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된 불특정 다수인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고 그 사람의 신용을 풀 길이 열려 사회안에서 겪는 고통에서 해방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건 그렇고,
    근 25년여 전에 학교 졸업하고 만 일년 넘게 집에서 놀면서 노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의 직업에 대해 너무도 감사하고 있고,
    주님 곁으로 갈 때까지 주님 주신 시간을 잘 쓸 수 있는 은총을 청해본다

    2.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람이며 형제임을 깊이 새로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형제를 비하하는 것은 곧 자신을 비하하는 것임을 깨달을 일이다.
    상대방을 비하한다고 해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올라간다고 알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형제를 귀히 여길 일이다.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여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일이다.
    현명한 사람은 잘 듣는다고한다.
    말하기에 바쁜 사람은 귀담아 듣기에 인색하다.
    자신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우리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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