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말씀연구>


본당 신부님들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주제 가지고 계속 강론 하려고 하면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힘들 것입니다. 본당 신부님들이 인내를 가지고 강론하실 때, 잘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리고 친척들이 누구고…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군거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군거린다는 것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셨을 것입니다.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리에서 쥐가 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또 졸음만 오고… 그런데 인간이 쓴 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느님을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책은 이해하려고 반복해서 읽기라도 하지만 예수님에 관해서는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불신으로 가득 차서 수군덕거리고만 있으니…




45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아버지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직접 주의 깊게 듣는 내적 경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이런 경청으로 들을 것을 습득함을 뜻합니다. 이런 듣고 배우는 과정에서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일들이 이루어 집니다. 즉 아들 예수님께로 오게 되는 것,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47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서의 믿음이 이제 인간의 행동이 따라야 할 믿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 편의 응답 또는 결단으로서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50  하늘에서 내려 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의 빵이 서로 비교되고 있습니다. 만나는 죽음에 역점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즉 예수님 자신은 생명을 준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을 먹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현재적 선물로 언급된 빵이 미래적 선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헌신할 예수님의 죽음을 내다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의 결론이요 동시에 성체성사에 관한 가르침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은 최후의 만찬에서 언급되고 있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피”(마르14,24; 마태26,28)와 비교될 수 있는 말로서 성체 성사적 선물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세상의 생명을 위해 예수님의 죽음을 실현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으로 주어진 예수님의 살은 성체성사 안에서 제공되고 취하게 되는 “성체”를 가리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요즘 말씀들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영성체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해시면 좋겠습니다.




219.249.0.6 이헬레나: 한가지 여쭈어 볼 말씀이 있는디유….
도대체 이 빵 이야기는 언제쯤이면 끝나는지유 배가고파 묵상을 하기
가 힘듭니다유 신부님께서 복음묵상하는 사람들만이라도 빵이라도 사주
시든지 아니면 우유라도 사주시든지 허기져서 …….
눈앞에 빵이 왔다갔다 하네유 ……….소보루 크림빵 팥빵 보름달빵등
다 좋습니다 기대해두되겠쥬? 씬부님………..빵줘유 [05/08-08:10]
219.249.0.6 이헬레나: 오늘 안에 소식주지않으시면 ……..절에 갈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석가탄
신일인데 절에 가는사람들 떡과 국수도 준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절에 간다음에 후회하지 마시고 빵한조각이라도 주시면 옛정을 생각혀

기냥 성당에 다니겄슈…….. 빵을 주세용 빵을………. [05/08-08:14]
211.194.124.5 루실라: 하하하…역쉬 대단한 자매님이셔용… 덕분에 저두 빵 먹을 수 있으려나 기~다~려~봐야쥐 ^^ [05/08-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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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요즘 말씀들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아직도 하느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에 세속일에
    더 마음이 쓰이면서 편치 않음이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같습니다
    신앙에 뿌리가 내리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제 신앙의 뿌리가 내려 하느님을 온전히 믿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2. 영성체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해시면 좋겠습니다.


    미사 할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 깊이가 다르게 느껴 집니다
    제자신이 미사지향이나 하느님께 간절히 청을 할때는 기쁜마음으로
    영성체를 하게되지만 의무적으로 하게 될때는 전례의 한 부분으로 성체를
    모실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무적으로 성체를 모셨을 경우라도
    고백성사를 보지 않았을 때나 여러이유로 성체를 모시지 못한경우보다는
    성체를 모셨을 때가 기쁘고 즐겁기는 합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면 미사의 기쁨도 못느끼게 되고
    그런일이 반복되다 보면 미사참례를 하지않게 되어 냉담으로 가게되기에
    성체는 미사때 반드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경우에는 어떤때에는 성체를 모시기가 좀 꺼려지는 일이 있지만
    소죄 라기에는 좀 그런 경우 성체를 모시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반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기쁨의 눈물이 나옵니다
    요즈음의 저의 기도는 하느님께 저의 마음이 편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신앙이나 믿음도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2.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요즘 말씀들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아직도 하느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에 세속일에
    더 마음이 쓰이면서 편치 않음이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같습니다
    신앙에 뿌리가 내리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제 신앙의 뿌리가 내려 하느님을 온전히 믿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2. 영성체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해시면 좋겠습니다.


    미사 할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 깊이가 다르게 느껴 집니다
    제자신이 미사지향이나 하느님께 간절히 청을 할때는 기쁜마음으로
    영성체를 하게되지만 의무적으로 하게 될때는 전례의 한 부분으로 성체를
    모실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무적으로 성체를 모셨을 경우라도
    고백성사를 보지 않았을 때나 여러이유로 성체를 모시지 못한경우보다는
    성체를 모셨을 때가 기쁘고 즐겁기는 합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면 미사의 기쁨도 못느끼게 되고
    그런일이 반복되다 보면 미사참례를 하지않게 되어 냉담으로 가게되기에
    성체는 미사때 반드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경우에는 어떤때에는 성체를 모시기가 좀 꺼려지는 일이 있지만
    소죄 라기에는 좀 그런 경우 성체를 모시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반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기쁨의 눈물이 나옵니다
    요즈음의 저의 기도는 하느님께 저의 마음이 편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신앙이나 믿음도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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