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지 1년 이상이 넘었으나 아직 고향 나자렛에 가신 일이 없으십니다. 나자렛을 찾으신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마을에도 유명한 라삐들의 주장의 권위를 빌리지 않으시고, 다만 당신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 구약을 해석하고, 새로운 법을 세우는 입법자로서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54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서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는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까지 감명을 받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받은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깎아 내렸을 것입니다.




55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올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형제 자매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내 죄를 감추기 위해 남을 깎아 내리거나 모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이 잘못을 하면 먼저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먼저 아내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내의 반응이 이상했습니다. 식탁위에 녹음기를 올려놓더니 시작 버튼을 누르고 나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녹음기에서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담겨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달려가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하지만 아내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


내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남에게 화를 내거나 모함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좌우지간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기에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57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그리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습니까? 그분께 마음을 활짝 열던지, 걸림돌에 걸려서 닫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나자렛 사람들은 걸림돌에 걸려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걸림돌 때문에 넘어진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닫힌 마음은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혹시 내 죄를 남에게 덮어씌운 적은 없습니까? 또한 남의 죄를 내가 덮어 쓴 적은 없습니까?




2.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3. 미사 검색창에서 “예수님의 형제” 를 쳐서 찾아 읽어 봅시다.




211.179.143.225 이 헬레나: 오랫만에 신부님 묵상하신글을 읽으니 새롭습니다
기분전환도 되는 것같고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데 저희들에게는
신부님의 복음묵상이 보약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묵상 보여주셔서…….
좋은 하루 되세요 [08/01-08:22]
요한신부: 미안해유….넘 놀아서… [08/01]
61.81.102.213 루까: 요한 신부님 오랜만이네요. 항상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집안일만 챙기게 되네요. 큰일하는 신부님 도와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08/01-12:57]
211.55.115.89 소화: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올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08/01-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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