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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야 한다.>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25,1.8-17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또 일곱 해를 일곱 번 해서,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 맞아 사십구 년이 지나서 일곱째 달이
되거든 그 달 십 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죄 벗는 이 날 너희는 나팔을 불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오십 년이 되는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낼 해이니,
씨를 심지도 말고 절로 자란 것을
거두지도 말며 순을 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절로 열린 포도송이를 따지도 마라.
이 해가 희년이니, 이 해를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너희는 밭에서 난 소출을 먹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야 한다.
네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에게서 무엇을 사는 경우에,
이웃끼리 서로 억울하게 하지 마라.
너는 동족에게서 사들일 때에 희년이
몇 해가 지났는지 따져 보아라.
파는 사람은 소출을 거둘 햇수를 따져서 값을 매겨라.
소출을 거둘 햇수를 따라 사고 팔아야 하기 때문에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많이 치르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적게 치러야 한다.
너희는 동족끼리 서로 억울하게 하지 마라.
너희는 하느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의 주 하느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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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난 종 안할래요. 뭐 그래요. 일을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이 농부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뭐 저렇게 살면 누가 일하러 오겠습니까?
나 이런 종 하기 싫어요. 오히려 좀 착한 농부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물론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요.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킨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더 힘이나서 일을 하겠지요.
소리만 지르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난 안해요
할 수 있어도 안할꺼예요
물론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요. 하지만…
보상은 조금밖에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수고했다는 것.
좀 쉬면서 하라는 것.
뭐 이런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그 당시 나병 환자들은 정상적인 사람들 곁에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 곁을 지나치게 된다면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소리쳐야 했다. (레위기 13,45절)
(레위기 13,44-45절)
44 그는 악성 피부병이 머리에 난 환자이므로 사제는 반드시 그를 부정한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45 악성 피부병 환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우 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한다.
. 그들이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트기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나병환자 무리에는 유다인안에 한명의 사마리아인이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인들을 개 돼지 취급 했는데 아마도 병의 비참함은 그들 사이에 그런 감정을 없애주고 공통적인 유대를 형성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전에는 사도들만이 그분을 그렇게 불렀다. 사도들은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루가 5,5; 9,49),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9,33), 또는 곤경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8,24), 그분을 그렇게 불렀다.
그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오늘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규정을 지키도록 가르치신다. 그래서 깨끗하게 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깨끗해진 나병 환자들에 관한 율법(레위기 14,2:16:29 참조)대로 사제에게 가서 보이라고 한 것이다. 사제가 그들이 깨끗해짐을 선언해야만이 그들은 공동체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하느님께 어떠한 것을 내세운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 못했다. 그는 하느님의 이 선물에 감사하여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린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기에 하느님의 치유의 선물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이 사마리아 인의 마음안에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보잘 것없는 죄인이요, 거지나 형편없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지고 있었고,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에 감사를 드린 것이다.
│ 2 그런데 마침 (거기에) 이름을 자캐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었고 또 부자였다.
│ 3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군중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키가 작았던 것이다.
불평을 해본다.
왜 나는 이런가? 왜 나는 그분을 찾기에 의지력이 없는가?
왜 나는 자케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향한 열망이 없는가?
나는 주저 앉아 있었고 자케오는 일어나서 그분을 향하고 있었다.
│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질러 달려가서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참이었기 때문이다.
│ 5 예수께서 그곳에 와서는 쳐다보시고 그에게 “자캐오, 얼른 내려오시오. 오늘은 내가 당신 집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 6 그러자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기뻐하며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셔들였다.
│ 7 이것을 보고 모두 투덜거리며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다니” 하였다.
│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보십시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의 것을 등쳐먹은 일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참된 고백성사를 본 자케오의 모습
자신이 지은 죄를 잘 알고 있는 자케오는 자신이 어떻게 기워 갚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아니 더 후하게 갚은 방법을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
내가 잘못한 것들을 기워 갚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용기가 없다.
내 재산의 반을 나눠줄 용기도 없고
내가 등쳐먹은 사람들에게 네 곱절로 갚아 줄 마음도 없다.
그러고서는 회개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개.
한편
자기 죄는 모르고 남의 죄만을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거은 아니오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 9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 10 사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습니다.”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저를 찾으려고 어지간히 애태우고 계시겠지요?
……
자케오를 향한 당신의 마음….
너무 멋이 있습니다.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성을 보시고는 그것을 두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난 누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다.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싫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면 내 눈에서는 더한것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도 싫다.
당황스럽다.
그리고
난 남들이 나를 통해서 웃을 수 있었으면한다.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 날 너 역시 평화를 얻는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구나!
난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사람보다는 일을 더 많이 보고
여유로운 시간보다는 바쁘게 뭔가를 하면서 성취욕을 느낀다.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로운 삶을 살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해 놓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과 부딪치게 된다.
일은 보고 사람은 보지 못한다.
함께 평화로운 길을 찾지 못한다.
바보같이….
43 네게 (불행한) 날들이 닥치리니, 네 원수들이 포위망을 치고 너를 에워싸 사방에서 좨들며
44 너와 네 안에 사는 자녀들을 짓밟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안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너를 찾아온 때를 너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후회한적도 있다.
일을 하다가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그의 능력을 봐야 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것에 대해 힘들어 했고, 당황했다.
결국 나와 갈라서게 되었고
난 그에게 한달정도 어느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어느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필요하냐고.”
난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너무 기쁜 대답이, 너무나 원했던 대답이 한달만에 나왔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면서 한달을 괴롭혔던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었다.
………
결국…
그는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좌우지간 지금 내 곁에 없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그것은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무척 도움이 되는 것이다.
………
예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리.
15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받을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단지 물로 이마를 씻는 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것입니다. 곧 내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잡거나 죽을 독을 마실지라도 그들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고,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낫게 될 것입니다.”
득도한 사람들
그들은 경지에 이르렀기에 어떠한 법에도 얽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살인을 한다 하더라도…
왜냐하면 그의 살인 또한 자비의 표현이라나…
마치 구약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들 중 분노하시고 벌하시는 것도 하느님 자비의 표현인것 처럼…
근데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
득도 했다면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잘지키면서 수련을 쌓아야 하는것이 아닌가?
…..
믿는 다는 것.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을 뛰어 넘어 나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데 있어서 방해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19 그리하여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하늘로 맞아들여져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20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며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셨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명하신 모든 사연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 예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해 동쪽에서부터 서쪽에 이르기 까지 영원한 구원에 관한 성스러운 불멸의 (복음) 선포를 두루 미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때 까지 복음을 선포하는데 열심해야지요…….
│ 29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서 옮겨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 거기 앉으셨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에 오르시어 군림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가까운 곳에 머무시고자, 그 곳에서 말씀하시니다. 마치 모세가 하느님을 뵙기 위해 산으로 오른 것처럼
│ 30 그런데 많은 군중들이 절름발이들, 소경들, 불구자들, 벙어리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예수께 다가와서 그들을 당신 발치에다 두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 31 그리하여 벙어리들이 말하고, 불구자들이 건강해지고, 절름발이들이 걷고, 소경들이 보는 것을 군중이 보고는 놀라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치유받고자 하는 환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그분을 믿고 그분께 치유를 맡길 수 있는 부류에 속할까?
32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군중이 측은합니다. 그들이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굶주린 채 헤쳐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길에서 지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33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께 “저희는 외딴 곳에 있는데 이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분은 빵을 몇 개나 가지고 있습니까?” 하시자 그들은 “일곱 개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35 그러자 예수께서는 군중에게 명하여 땅바닥에 자리잡게 하셨다.
│ 36 그분은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은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 37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먹고 배가 불렀으며 (빵)조각 남은 것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엄청나다.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바로 저분이다….
육체적인 질병 뿐만 아니라 굶주림까지 채워주시는 그분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그분
바로 저분이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께로 향할 수 밖에 없었으리…
오늘은 그냥 잘꺼구먼유
독서랑 묵상좀 해주세유
저 오늘 술 한잔 했는디유
뭐 생각 없구먼유
안녕히 주무세유
글구유
묵상은 계속 하시구유
좋은 꿈 꾸세유
26 (그로부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예수께서 오시리라는 선언은 요한의 출생에 대한 예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은 마리아 동정 잉태의 전조가 된 것이다.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
구약성서에서는 한 번도 그 동네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예수님시대의 사람들조차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1,46)라고 하였다.
그런데 주님의 탄생 예고는 이방인의 갈릴레아(마태 4,15)에 있는 한 동네에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 경멸하는 하찮은 것을 선택하신다.
육화에 적용되는 법칙은 다음의 말씀 안에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필립비2,7)
28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천사의 태도…
천사는 요한의 출생 예고 때에는 단지 그 곳에 나타나기만 했으나, 마리아에게서는 들어가 인사하였다.
요한의 출생 예고는 성전성소에서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예고는 마리아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구약의 하느님은 성전에 계셨다. 그러나 신약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거처를 사람들 가웅ㄴ데에 두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
너무 좋은 말씀이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 말을 없을 것이다.
모세에게도 그렇게 말하셨고
판관 기드온도 같은 체험을 했다.
얼마나 좋은 말씀인가?
어려운 일에 처해있을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31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32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33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참으로 당황스러웠겠다…
처녀가 잉태라니…
그런데 신앙인인 우리들도 마찬가지 인듯 하다.
불가능한 것들
어려운 것들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
……..
우리도 이렇게 반문하면서 살아가는듯 하다.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36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37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38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
이렇게 주님께 고백했으면 좋겠다.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기를
2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하였다.
그런데 왜 하필 광야입니까?
시내 한복판에서 외쳐야지…
광야는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하느님께 방해되는 것들, 하느님의 말씀을 못듣게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회개하여라! 라는 외침
이것은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행실을 고치고, 죄를 버리고 마음을 돌리고…
…..
그런데 이전의 어느 누구도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이유로 회개를 외친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주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위협이나 하느님의 분노의 폭발과 처벌, 등으로 회개를 ㅇ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번째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한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마태4,17)
3 이 사람은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말씀하신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말했다.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니라.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굽은 길을 바르게 만들라.”
4 그런데 요한 그 사람은 낙타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그의 허리에는 가죽띠를 둘렀다. 그의 양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세례자 요한의 생활 방식은 엄격했습니다.그의 생활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증언하였습니다.
삶과 말이 같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리.
5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르단 부근 온 지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가서,
6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물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 7 요한은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뜨끔…
고백성사보고 죄짓고.. 또 보고 죄짓고…
나는 그런데…
하긴 회개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돌아서는 것일진데…
진정한 회개가 무엇일까?
│ 9 너희끼리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다’ 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말아라. 사실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하느님은 이 돌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
│ 10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 11 “나는 회개시키려고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굳건하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 12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당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당신 밀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회개의 삶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17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대의 모든 촌락에서 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이 앉아 있었다. 주님의 힘이 내려 예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시기도 했다.
예수님의 활동은 가르침과 치유로 이루어진다. 그 가르침과 치유 활동에서 예수님꼐서는 자신을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의 힘을 지니고 계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에 관한 소문은 온 마을마다 두루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르침과 치유중에서 사실 저는 치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 그런데 마침 남자들이 중풍에 걸린 사람을 침대에 (누인 채) 날라 와서는, 그를 데리고 들어가 예수 앞에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어디로 해서 그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지 몰라서,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와를 헤치고, 그를 작은 침대에 누인 채 한가운데로, 예수 앞에 내려보냈다.
팔레스티나의 집들은 벗겨 낼 수 있는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치유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 20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사람이여,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소” 하고 말씀하셨다.
엄청난 말씀이다.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
사람들은 예수님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21 그러니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속생각을 하며 “이 사람이 누구인데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오직 하느님이 아니고서야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하긴 그럴만 하다.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 행동을 칭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기득권 층에서는 변화도 싫어하고 도전도 싫어하기에.
또한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당신들의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품습니까?
23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다’ 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혹은 ‘일어나 걸어가라’ 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24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당신들이 알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그분은 중풍에 걸린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이릅니다. 일어나 그대의 작은 침대를 들고 집으로 가시오.”
25 그러자 그는 당장 그들 앞에서 일어나 자신이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자기 집으로 물러갔다.
26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두려움에 차서 “우리는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했다.
마치 한편의 영화나 내 눈 앞을 지나가는 것 같다.
치유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신성모독을 느끼는 사람들
치유를 위해서 노력하는 병자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치유받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각자의 편에서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리고 이 말씀을 대하는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는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길을 잃는 것과 망하는 것
길을 잃었다면 자신의 도움이나 다른이의 도움으로 다시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망하는 것은 가망이 없다.
그런데 길잃은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멸망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목자는 자기에게 속하지는 않지만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양 한마리 한 마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한마리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
성실한 목자는 그 양을 찾아 사방을 헤맬 것이다.
그리고 그 양을 찾았을 때는 엄청 기뻐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본당 신부들은 어떻게 사목을 해야 하는가?
나오는 신자만을 데리고 사목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쉬고 있는 신자들을 찾아가야 하는가?
……….
착한 목자라면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던데…
오늘 말씀안에서
나는 희망을 얻었다.
11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큽니다.
세례자 요한 좋겠다. 예수님께로부터 칭찬 받아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들어 높여 주며,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하느님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게 해 준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잠깐. 예수님도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나셨지만 인성으로 볼 때에만 그렇다. 예수님의 태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신 분이다.
12 요한 세례자의 날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에 눌리고 있습니다. 힘쓰는 자들이 그것을 강탈합니다.
13 사실 모든 예언자들과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이 일을) 예언했습니다.
요한은 구세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요한은 과도기적인 인물로서 반은 그림자에 가려 있고 반은 빛 속에 나와 있는 인물이며, 미래를 예언하면서 이미 그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인물이다.
요한이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도 작다는 것은 새 시대 이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그 어떤 예언자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새 시대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이것은 그 때부터 하늘나라가 현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이거은 하느님 나라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 방해받고 있으며, 당신의 사업이 무효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유혹에 의해서…
14 여러분이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 그 사람이야말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입니다.
이 말씀이 무척 어렵다. 요한이 왜 엘리야인가?
도대체 모르겠다.
엘리아의 정신으로 오신 분은 분명하지만 불가마를 타고 내려오시는 분은 아니지 않는가?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엘리야가 요한을 통해 육적으로 타나났다거나 세례자가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에 앞서 오신 분이다…
그러니 더 어렵다…
만일 예수님께서 진정한 메시아시라면 사람들은 그분의 선구자를 알아볼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말하였으므로 엘리야는 이미 와 있다고 그들에게 이야기될 수 있어야만 했따.
요한이 그 엘리야였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바로 신앙의 눈으로.
15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시오.”
이 말씀은 자기 귀를 열고 올바로 이해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으며 자기가 들은 바를 마음에 새겨 두는 사람만이 이 말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들을 귀가 없기에 아직도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어렵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 턱이 없을 테이고
예수님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엘리야가 세례자 요한임을 모르니 당연히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시고…
……….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16 “이 세대를 무엇과 비교할까? 장터에 앉아 다른 아이들에게 소리지르는 어린이들과 같습니다.
17 그들은 ‘너희를 상대로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다. 우리가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변덕을 빗대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길거리에서 노는 어린이와 같이 변덕스럽고 기분에 따라 움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이 세대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즐거운 가락을 연주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울한 곡조와 장송곡을 불러도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망쳐 놓고 심술굳게 흥을 깨놓는다.
세례자 요한에게도 그랬고, 예수님께도 그랬고…
그런데 어린이들은 단지 놀이를 망쳐 놓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으니.
18 사실 요한이 와서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귀신들렸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19 인자가 와서는 먹고 마시니까 ‘보아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 하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요한은 아주 엄격한 속죄의 생활을 하였기에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는 하기 싫으니 어찌하리.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저 사람은 미쳤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업었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미쳤다고 서슴없이 비난했다.
예수님께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 마귀 힘 빌려서 귀신 쫓아내는거야…
어 저사람은 먹고 마시고 하네…
어 저사람은…..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회피와 비방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금욕 생활을 하지 않으셨다. 기쁨의 때, 완성의 때를 가져오셨으므로 그 기간 동안 단식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예수님께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불쌍히여기셨으며 세리와 조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였고, 증오와 경멸에 찬 비난을 퍼 부었었다.
이런 사람들 비위 누가 맞출 수있을까요?
난 못혀유.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행한 일로 드러났습니다.”
향수를 물병에 넣어도 향수는 향수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그들이 어떻게 판단한다 하더라도 예수님과 요한의 모습은 변하지 않습니다.
뇌물도 안통하고, 고문도 안통하고. 모함도 안통하고….
근디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눈감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누가 옳고, 무엇이 옳은지 자명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남의 시선을 바라봅니다.
힘있는 자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그르다고 하면 그른 것이고…
10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께 “그러면 왜 율사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일반적인 믿음에 의하면 하느님꼐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에 앞서 그가 오는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전령이요 선구자로서 엘리야를 먼저 보내시게 되어 있었다.
말라기서의 마지막 대목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말라기 4,5-6)
“이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나는 문제가 안되지만 다른 이들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 두었고, 화해에로 준비시켰다.
회개하라. 라는 요한의 외침
그 외침 안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화해와 용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1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놓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 물로 자신의 죄를 씻고,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일
그것을 세례자 요한이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언행을 보고서 엘리야를 보았어야 했다. 세례자 요한이 길을 고르게 하고 골짜기를 메우며 언덕을 낮춤으로써 모든 것을 준비했다.
바로 예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12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미 엘리야는 왔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습니다. 이처럼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두고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줄을 깨달았다.
커다란 궁금증이 풀린다.
스승 예수께서는 틀림없는 메시아라는 것.
그리고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이라는 것.
깨달았다면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함부로 대하는 것 처럼 해서는 안된다.
깨달았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오늘도 나 때문에 당하는 예수님의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조금이라도…
2 요한은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3 그분께 “당신이 오실 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게 하였다.
어느 본당에서는 수녀님이 아침마다 보좌신부를 깨우는 것이 일이라고 합니다. 보좌신부가 아침에 안일어나서 미사시간은 다 됐지. 신부는 안나오지…
그러니까 결국은 참다못해서 이런전화를 했답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
어휴…..
그런데 이 부분은 좀 이해가 안된다.
예수님의 세례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아보았는데
왜 물어보는 것일까?
요한은 솔직하게 제자들을 시켜서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요한의 마음에는 한자락 의심이 싹 텄었던 같다.
아니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해서 일수도…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듣고 보는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리시오.
5 소경들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머거리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습니다.
6 나에게 걸려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
예수님의 대답 너무 멋지다.
보고 느낀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당신 신자입니까?
예 저는 신자입니다. 세례명은 뭐고 본당은 어디고….
이것 보다도
당신이 보기에 내가 신자 같습니까?
나의 향기를 보고 판단해 보시오….하면 얼마나 멋질까?
그동안 내가 다디던 미용실이 있었다. 내가 가서 한번도 기다려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람이 그만큼 없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가는 시간에 기다림 없이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머리를 깍으러 갔었는데 그 미용실이 사라지고 다른 것이 들어와 있었다. 얼마나 서운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에 또하나의 미용실이 있었다.
한 사람 기다리고 깎았는데 그 아주머니 왈
혹시 목사님이시냐구…
난 아무말 안했는디. 말도 별로 없었구요.
물어보니 교회다닌다고..
…..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신앙인 같아 보이는구나….허허.
7 이들이 떠나갔을 때에 예수께서는 요한을 두고 군중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로 나갔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까?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습니까? 고운 (옷)을 입은 사람입니까? 알다시피 고운 (옷)을 걸친 사람들은 왕가에 있습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습니까? 예언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갈대와 같은 사람
바람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 갈대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이쪽에. 내일은 저쪽에 달라붙는 사람을 의미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목숨걸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니었다. 낙타털옷을 입었으니.
이렇게 말해본다면 어떨까?
너희는 무엇하러 성당에 왔느냐? 재미를 찾아서 왔느냐? 재미있는 것은 텔레비젼에도 있다.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러 왔느냐? ………..
우리는 기도하러 온 사람. 하느님을 만나러 온 사람.
정말로?
10 이 사람으로 말하면 ‘보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먼저 보내니 그는 너에 앞서 네 길을 닦아 놓으리라’ 고 기록되어 있는 그 사람입니다.
11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큽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전적으로 다름을 알고 있고.
26 (그로부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아들이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 왕가의 후손이 되도록 모든 것을 안배하셨다.
28 천사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천사의 차별
요한의 출생 예고시 성전 성소에서
예수님의 출생 예고는 마리아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즈가리야의 의혹에는 벙어리로 만드시고
마리아의 이의제의에는 관용, 사라도에게도 마찬가지.
이거 남녀 차별입니다요.
또한 즈가리야에게는 아무런 인사도 안했으면서 마리아에게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하고 인사한다. 이것도 차별?
(기뻐하여라 라는 표현은 예언자들이 기쁜 소식을 알릴 때 종종 사용. 천사는
메시아 시대의 환호로 마리아에게 인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하다고 누가 인사해 주었으면 좋겠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하긴 놀랠만 하다. 그런데 나 같았으면 당황해서 무슨 말을 어찌 할까 생각도 못할텐데 성모님께서는 그 인사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다르긴 좀 다르다…
30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리아!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습니다.
31 두고 보시오.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32 그는 크게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옥좌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33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야곱의 가문 위에 군림할 것이며 그의 왕권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36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37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와 닿는 것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이다. 내 틀에 맞추어서 불가능을 단정짓지만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내가 그분을 향해서 마음을 좀 열었으면 좋겠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38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성모님의 동의. 천사는 사명을 완수했고, 우리는 구세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성모님의 동의
당신 말씀은 그렇지만 제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러운 신앙이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기도해야 겠다.
내 뜻이 아니라 당신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39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유다 산골 고을로 서둘러 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성모님의 마음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의 임신사실을 보고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사나흘쯤 걸리는 거리를 서둘러 갔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그의 태내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성모님은 태중에 메시아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태중에서 요한이 메시아를 알아보았습니다.
<우스게 소리 하나>
한 비신자가 성모송을 외우다가 문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이름이 뭘까?
바로 태중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태중의 아들”이니까…
한 무식 했죠?
그리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축복받았습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이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아기가 내 태내에서 신명이 나 뛰놀았습니다.
45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
성모님께서 복되신 이유는 바로 태중의 아기 때문이다.
내가 복된 이유는 바로 그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외면하면 결국 나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복되신 이유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였기에
나 또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 복된 사람입니다.
내 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 또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과독서는 예수님의 잉태예고와 예수님의 출생예고인것 같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사실앞에 저 같았으면 기절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아께서는 이 엄청난 사실에 하느님께 대한 확소한 믿음과 겸손과신뢰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대림시기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메세지는 마리아에 소박한 믿음과 솔직한 의지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과 믿음으로써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생각하면서 저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다져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대림시기 동안 삼종기도를 음미하며 정성껏 바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저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세요.
아멘.
18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했는데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몸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롭고 또한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몰래 그를 소박하기로 작정하였다.
의로운 사람되기.
요셉은 법대로 사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마리아를 법정에 세우고 돌에 맞아 죽게 했겠죠. 하지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의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말고 그의 허물을 탓하지 말고 그를 감싸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많은 경우 의로운 사람, 사랑이 있는 사람보다는 판단하고 단죄하고 시기 질투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왜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가? 요셉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받아들이시지 않으셨는가? 하긴 그분이랑 나랑 비교한다는 것이….
20 요셉이 이런 속셈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 마리아를 당신 아내로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실 그 몸에 수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1 그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당신은 그 이름을 예수라 부르시오. 사실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22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이르기를
23 “보라,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 하였다. 이는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24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지시한 대로 자기 아내를 데려왔다.
성가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물론 예수님께서 계셨기에 성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모님도 요셉 성인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처지.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 그리고 요셉 성인도 바로 성모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서로에게 잘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이 말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좀 어렵네요. 죄송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한 아버지 즈가리야의 축복을 들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차서 축복의 말을 해줍니다.
나 또한 성령으로 가득차서 축복의 말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나의 삶 또한 아기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라고
그래서 우리 모두도 요한처럼 살아야 된다고…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 되어 그분의 길을 닦아라…
오늘 하루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