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말씀연구>


성무일도 저녁기도를 바칠 때 “성모의 노래”를 바칩니다. 이 찬미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찬미가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해방을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찬미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역사 속에 변혁을 이루십니다.


성모의 달을 마치면서 성모님의 노래로 마치는 오늘. 참으로 뜻 깊은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39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유다 산골 고을로 서둘러 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마리아는 그 여행 끝에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마리아는 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해 주신 엘리사벳에게만 인사하였고 여행 도중에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훗날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 말라”(10,4)는 명령으로 파견하신 그 제자들처럼 그렇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나자렛에서 유대 산골의 그 동네로 가는 길은 네겝 지방과 유대 광야, 그리고 스펠라 지방과 접해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동네는 오늘날 예루살렘 서쪽 4마일 지점에 있는 아일 카림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마리아가 여행해야 할 길은 사나흘 쯤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마리아가 서둘러 간 ‘유다 마을’(29절)은 보다 믿을 만한 전승에 의하면 나자렛에서 1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예루살렘 서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아인카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오랫동안의 여행은 마리아가 그 당시의 방법대로 여행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희생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특히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사랑과 봉상의 정신이 컸었음을 말해주고자 합니다. 사실. 마리아가 걸음을 서둘러 길을 떠난 것은 “그 예언을 의심해서이거나 천사가 알려준 내용이 불확실해서이거나 또는 그 증거에 대한 의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기뻤고, 바로 그 내적인 기쁨에서 오는 열정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으로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리아가 한 그 먼 여행- 아마도 곧 해산하게 될 늙은 친척을 돕기 위한 – 은 그리스도께서 육화의 신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보다 더 힘든 여정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라고 바울로 사도는 자신의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유다의 ‘산’위로 올라갔다고 하면, 반대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시기 위해 ‘심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그의 태내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아기의 자연적인 태동은 구세주와의 만남이 불어넣어 준 기쁨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리브가의 태중에서 쌍둥이 에사오와 야곱이 꿈틀거렸을 때 그것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야훼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습니다.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창세기 25,22-23)




그리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축복받았습니다.


성령 강림절에 일어났던 일이 유년기 복음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 있는 즈가리야의 집에서 역시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사도행전 2,17-21; 요엘 3,1-5).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성령으로 가득 차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축복을 받은 이유는 바로 아이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이어서 이렇게 외칩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마리아는 태중에 거룩하신 분을 모시고 있기에 신약의 계약의 궤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44  보십시오, 당신이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아기가 내 태내에서 신명이 나 뛰놀았습니다. 45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


엘리사벳의 찬양의 노래는 마리아에 대한 축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리아는 믿음과 순명의 정신으로 동의하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군중 속에 있던 한 여자가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라고 마리아를 축복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7-28)..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믿음의 행위로 시작됩니다.


성령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은 황홀감에 빠져 말을 합니다. 신적인 영향력에 도취된 엘리사벳은 마치 레위인들이 계약의 궤 앞에서 노래한 것(역대기 상 16,4)과 같은 장엄한 전례적 어조로 노래를 합니다. 엘리사벳은 그녀의 집에 나타나신 주님의 종으로서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은 엘리사벳에서 마리아로 옮겨집니다.


마니피캇은 하느님의 어머니의 말씀으로 합당하고,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장 숭고하고 뛰어난 환희의 찬가입니다. 나자렛에서 즈가리야의 집까지 오는 길에서 마리아는 천사가 알려 준 일을 묵상하고, 그 동안 그녀의 머리에는 성서의 말씀이 떠 올랐을 것이며, 그 결과 이런 환희의 찬미가가 용솟음쳤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노래하십니다.


46 “내 영혼이 주님을 기리고 47  내 영이 내 구원자 하느님을 반겨 신명났거니,48  정녕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도다. 보라, 이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이것은 구세주의 어머니로 자신을 택해 주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진실된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모님께서는 당신 품에 내려오신 하느님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천한 신세는 이름도 없는 마리아의 낮은 생활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평민의 딸, 가난한 목수의 약혼자였던 여인을 하느님께서는 그 지극히 높으신 왕좌에서 돌보아 주시고, 하느님의 어머니란 고귀한지위로 끌어 올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성모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언제까지나 복된 분으로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세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는 말씀”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찬미를 통해서 말입니다.




49  권능 떨치는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도다. 그분의 이름 거룩하여라.50  그분의 자비는 세세 대대로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로다.


왜 언제까지나 세대를 이어 사람들은 성모님을 찬미하는가? 그것은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의 전능, 성덕, 자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인간이 되심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시요, 죄의 노예인 우리에게는 그 노역에서 풀려나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이 자비는 언제까지나 만민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일”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하느님께서 한 시골 처녀를 메시아의 어머니로 삼으신 놀라운 일을 가리킵니다.


또한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존경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기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미칠 것입니다.




51  그분이 당신 팔로 힘을 행사하시어 그 심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52  권세 부리는 자들은 권좌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올리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 주시고, 세상 사람들이 부자나 권력자들을 들어 높이는 것과는 반대로  겸손한 이들을 들어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안에는 나자렛의 처녀 어머니의 아들이신 앙, 메시아께서 유다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찬탈자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당신 권위를 도로 차지하시고, 대체하신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듯 합니다.




53  굶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요한 자들은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도다.


소아시아 궁정의 습관을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쉽게 이해 될 것입니다. 그 궁정에는 권력자만이 들어가고, 왕에게 선물을 바친 다음, 무엇인가 보상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경우는 이와는 다릅니다. 겸손하게 구하는 이에게는 항상 너그러우시고,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우쭐대는 자의 교만한 기도에는 귀를 기울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에게는 참으로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보잘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가? 부요한 이들,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54  그분이 자비를 기억하시어 정녕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도다.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미치리로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지키시고 항상 믿는 이들을 눈여겨 보아 주셨습니다. 더욱이 몸소 인간이 되시어 새로운 영광을 주셨습니다. 도우셨다는 것은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인간이 되시어 구원의 손길을 내 미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셨던 계약을 지속적으로 지켜주신 것입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지 하느님은 아니십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민에게 미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모님의 달을 마치면서 성모님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해봅시다.




2. 마니피캇을 읽어 보면서 와 닿는 구절은 어떤 구절이 있는지 이야기 해 보고, 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찬양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11.194.124.5 루실라: 성모님의 신심을 본 받게 해주시라고 정성을 다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08/16-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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