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예를 들면서 좀더 겸손하게 형제 자매들에게 다가 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좀더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서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였습니다. 모세 이후로는 조상들의 전승만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의 관심사는 모세 율법과 아울러 거기서 발전된 전승을 보존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럽과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자들 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의 말은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가끔은 신자들이 사제들을 통하여 신앙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을 통하여 신앙을 얻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멋진 은유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은 노새와 낙타의 등에 엄청난 짐을 실어 놓고 그 짐을 옮기는 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장사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하면서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정결례, 안식일, 단식과 기도 등을 생각해 보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얼마나 번잡한 규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누르는 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 자신은 겉으로는 신심을 가장하면서도 자기네를 위해서는 그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으니 그들의 첫 번째 죄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위선.
그런데 저랑 똑같은 모습입니다. 남에게는 시키기를 좋아하고, 나는 하나도 하려 하지 않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만 할 줄 알지 행동으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제들의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꽃꽂이를 잘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에 좌지우지되어 봉사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각이 너무 발달한 신부님의 밥을 해 드리는 분도 어려움에 처합니다. 뭐가 안 들어갔다느니, 뭐가 더 들어갔다느니,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느니. 그런데 막상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제들이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꽃꽂이와 요리이다. 배우면 말이 너무 많아진다나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허영심을 꼬집으십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보여주기 위한 것, 남에게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것. 명예로운 호칭을 좋아 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의 결과입니다. 성구 넣는 갑은 그리스 말로 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구 넣는 갑은 조그만 갑인데 그 속에 출애굽기 13,1-10. 11-16 그리고 신명기 6,4-9;11,13-21절 까지의 글귀를 양피지에 써서 넣었습니다. 작은 갑은 왼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기도할 때 그것을 다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명기 6,8절의 그릇된 해석에서 나온 습관 같습니다. 거기에는 야훼의 계명에 대하여 쓰여 이는데.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로니모 성인 당시 이 관습은 인도, 페르샤, 바빌론의 유다인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미신적인 것으로 타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술은 항상 율법을 회상키시는 의미로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려 있는 푸른 털의 술이었습니다.
결국 바리사이파 사람의 미신과 허영심은 사람의 눈에 돋보이도록 일부러 크게 만든 갑과 술에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 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잔치집에 가면 항상 중앙에 앉습니다. 어르신들도 있는데.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지만 나중에는 중앙에 앉지 못하면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좋은 자리만 찾아 헤매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7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신자들이 신부님들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본당 신부님에게만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불편해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 본당 신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예수님께서 존칭을 절대적으로 배척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적 겸손을 기르기 위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높은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리브가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 “아브”,“앗바”(아버지)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라삐 이스마엘과 라삐 아키바는 세상의 아버지라 존경을 받고 그렇게 불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것을.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리스 말로 지도자는 “주”란 뜻이 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존칭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배제시켜야 할 세 가지 칭호의 예는 아무렇게나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칭호들은 초대 교회의 위계 질서의 요소를 반영해 줍니다. 특히 유다계 사회에서 제자들은 다소 신심의 모델이 되는 행위와 혼돈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특히 유다인들의 사회에서는 랍비(나의 스승)라는 경칭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제자들은 그러한 칭호를 의식적으로 거부해야만 했습니다.
지도신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말 참다운 지도신부가 될까 하는 생각을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일꾼입니다. 제자의 일꾼이 되는 선생은 없습니다.
“형제에 대하여 뛰어난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형제의 선 때문에 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제자들의 탁월한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기에 그리스도교 안의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도 이러한 칭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교의 랍비들의 본보기를 따라 자기 자신의 교리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어떤 교리 학파를 세우거나 거기에 가담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무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단죄의 선고를 받아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들어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 즉 미래 심판의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날에 세속적인 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영 속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이 말씀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높여 주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그냥 깔아 뭉게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항감이 있어야 만이 잘해주고, 예의를 갖춰주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루실라: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순간 순간마다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좋은말씀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일 되세요 [08/23-07:47]
이 헬레나: 요리잘하고 꽂꽂이 잘하시는 신부님이 혹시? 신부님은 아니시겠지요?그리고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얼마전에 제가
대접을 받으며 가운데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정말 어렵고 조심스러웠거든요
윗자리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데 책임도 따르고 모범도 보여야하는 자리인데요
저는 지금의 무수리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은 데요 왜 그것을 모르고
윗자리만 앉으려하는지….. 복음말씀을 쉽고 재미있게 [08/23-08:07]
강베로니카: 황후마마님이 무수리로 살아가신다는 겸손으로 사시는 분이 중앙에 앉아야 하지 않을까욤..? ^^;;;; 비가마니 온다꼬 하네욤.. 글루미선데이가 될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집에서 편안한 주말되세욤~ [08/23-10: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