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좀 보이느냐…

 

무엇이 좀 보이느냐?


<말씀연구>


가끔은 아무것도 안보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안보이고, 안 들리면 답답해지겠죠! 근데 참 보기 싫은 사람도 많고, 듣기 싫은 소리도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데…혼자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22  예수의 일행이 베싸이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가는 요르단 강의 하구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곳. 그곳은 필립보에 의해 도시로 세워졌지만 여기서는 마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따라가 볼까요? 예수께서는 소경의 두 눈에 침을 바라고 손을 얹으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23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라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침과 눈에 손을 얹는 것은 고대에 치유의 수단으로 쓰이던 방법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통속적인 견해에서 볼 때 고대에 치유의 수단으로 쓰이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치유는 단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증세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치유자의 애씀과 노고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그로 인해 과소평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런 선입관 없이 이 일을 보고하였습니다. 복음사가에 있어서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위대한 치유 능역을 나타내 주는 증거였다.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24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서의 치유는 단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증세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애씀과 노고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25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방법을 쓰셨을까요?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텐데 …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법으로 소경을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통하여 당신 사명을 증명하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한테 어느 누가 달려가서 청을 해도 그분은 모두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소경에 대한 연민과 마음 없는 군중의 흥분인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능력을 자유롭게 쓰십니다. 한 마디 말씀으로 하시는가 하면, 오늘 소경에게 하시듯이 여러 단계의 동작과 말씀으로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환자의 믿음에 비례하여 치유를 이루십니다. 그의 눈이 믿음으로 열리고,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커 갈수록 육체의 눈도 차차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소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빛이 어떤 영혼에 들어 올 때는 서서히 들어 옵니다. 그러나 영혼이 한 번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열게 되면 그는 곧 빛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을 듣는 사람들도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는 기적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발설하신 단 한 마디 명령 말씀만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목적(예수님의 비상한 치유 능력을 모사)을 의도하고 있다.




26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 가지 말아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눈을 뜬 소경에게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기적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질문을 받게 되고 모든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치유 후에 자기를 드러내지 말도록 하심으로써 세속적 영예를 추구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베싸이다 출신이 아니라 가까운 딴 마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싸이다를 피하여 곧 바로 자기 마을로 간다면, 예수님께서 원치 않으신 군중의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살아가면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또한 나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까요?




2. 예수님께 치유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분께 어떤 믿음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분이 내 상처를 치유해 주시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분께 향하겠습니까? 혹시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라는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향하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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