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당신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오해할까봐 기적을 베풀고도 침묵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려야 되시는 분이심을. 영화롭게 세상의 권좌에 앉으실 분이 아니심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반대합니다. 그러시면 안된다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면 안된다고, 내 삶의 전부인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면 안된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라고. 나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이어야 한다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2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여러 의견들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들은 내용들을 전합니다.
28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29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명백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메시아에 대하여 품은 생각이 아직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앙은 단호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30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에서 예수님께 대해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응답, 즉 예수님께서 거부하시는 잘못된 기대가 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적,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을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래 처음부터 줄곧 이것을 거부해 오셨고 가장 엄하게 단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나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는 당신 정체를 알리지 못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유대인들이 의미하는 그런 메시아라고 칭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란 다윗의 아들로서 신정 정치적인 왕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지상적인 해방자이고자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10,37참조), 베드로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된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 맑게 정화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하여튼 베드로는 군중 속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게서 더 많을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31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32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수난 당하고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사흘이라는 숫자에 눈길을 옮겨봅시다. 3일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전화점이 되어 뒤따르게 되는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으로서 자주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3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스승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 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33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 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괴로운 사명에서 멀리 하게 하려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 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 사명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 상과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생기게 된 작은 사욕까지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은총의 빛을 향하여 열어 놓고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나눠봅시다>
1.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걸고 있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희망이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