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본디를 빼먹은 신앙











바오로의 매일묵상
[2004/3/3]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음(루가 11,29-32)

군중이 계속 모여 들고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하고 탄식하시며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 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묵상

오늘은 아무래도 제1독서를 읽은 후에 오늘 복음 보아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듯 합니다.

『야훼의 말씀이 또다시 요나에게 내렸다.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 내가 일러 준 말을 그대로 전하여라.’
요나는 야훼의 말씀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굉장히 큰 도시로서 돌아 다니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 가 하룻동안 돌아 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고 외쳤다.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듣고 니느웨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그리고 대신들의 뜻을 모아 니느웨 시민들에게 아래와 같이 선포하였다.

‘사람이나 짐승, 소떼나 양떼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맛을 보아서는 안 된다.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혀라.
그리고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남을 못 살게 굴던 나쁜 행실은 모두 버려라.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멸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실지 아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 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요나 3,1-10)

마음이 힘들고 답답하다보니 우리는 이러저러 소문난 곳에 참 많이도 쫒아 다닙니다.
‘저쪽 기도회에서는 치유가 불길같이 일어난다더라!’
‘아냐, 저기 저 기도회 강사님의 말씀이 그렇게 감명깊을 수가 없대요!’
‘아유, 말도 말아요! 저쪽 동네 강사님은 어쩜 그리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아시고 강의 하시는지 눈물을 쏙 빼놓더라니깐!’
‘그 얘기 들었수? 어디 모임이 있는데 거기선 기적이 일어난다잖어!’
이런 얘기 듣고 귀가 솔깃해져보신 적 있으시죠?…ㅎㅎㅎ
겉으로는 ‘에이그, 그거 다 뜬소문이지…’하지만 속으로는 그 곳에 갈 계획 세우신 적도 있으시죠?…ㅎㅎㅎ

예전 저희 집에는 커다란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어느날 신심이 깊으신 외삼촌께서 저희 집에 놀러 오셨더랬어요.
그런데 삼촌이 성모상 모셔져 있는 곳을 유심히 보시더니만 이렇게 말씀 하시더군요.
‘바오로, 예수님은 어디 계시니?’
‘허걱!’
그 한마디 말씀이 제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이 와닿더군요.
저야말로 허상을 뒤쫒고 있었던 셈이지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본디는 예수님이 먼저라는 것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뒤쫒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구경’하기 위함이었죠.
요나는 단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라고 한마디의 말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그 한마디 말에 즉시 반응을 보이죠.
한마디 말에 그들의 악행을 회개하며 하느님께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말씀도 많이 하시고 기적도 베풀어 주셨건만
회개할 마음은 없고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다 생각하며 예수님을 쫒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기적만을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니는게 먼저입니까?

우리 삶이 버겁고 힘들다하여 치유가 있다는 기도모임, 마음의 위로를 준다는 강사가 있다는 모임등을 쫒아다니지만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느님께 무릎꿇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느님께서 직접 위로를 주시기를 청해야 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난 죄 지은 것이 없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오만임을 아시는지요?
하느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는 이웃을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치유(기적)는 사랑의 성사가 있은 후에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기도

우리에게 신앙을 주시고 갚아 주시는 그리스도님, 우리를 어두움 속에서 놀라운 광명에로 불러 주셨으니 찬미 받으소서.

오늘의 명상



진실의 열매


진실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법을 체득함으로써
더 신실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의 신실함은
하느님에 대한 신실함의 연장이다.
진실한 친구는 서로 믿고 인정하며 돌보고 지지하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과
자신의 잠재능력에 충실하라고 서로를 격려한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Written by Pau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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