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가리야

 

즈가리야(הירכז)


1. 서론


2. 본론


  2.1 예언자 즈가리야


  2.2 즈가리야서


    2.2.1 시대적 배경


    2.2.2 단일성


    2.2.3 문하적 형태


    2.2.4 구조와 내용


  2.3 신학


    2.3.1 역사적 배경


    2.3.2 성전재건


    2.3.3 백성의 응답


3. 결론








1. 서론




12소예언서중 11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즈가리야 예언서는 많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큰 차이를 보이며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는 두 부분이 동일한 저자나 시대에 의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저자는 누구이며 저작시기는 언제인지, 그렇지 않다면 각 부분의 저자와 시기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또한 이 책이 다른 대예언서들과 가지고 있는 관계는 어떤 것이며, 소예언서들 가운데 특별히 ‘학개’, ‘말라기’서와 가지고 있는 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책의 형태는 산문인지 아니면 시문인지, 또한 그 속에 나타나는 환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들이 묵시문학과 가지고 있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아직도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선에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시도하고자 한다.





2. 본론




2.1 예언자 즈가리야




즈가리야라는 이름은 “야훼께서 기억하신다.”또는 “야훼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1)로써 구약성서 안에서는 특히, 포로기 이후의 사제와 레위인들에게는 흔한 이름이었다.2) 즈가리야는 1,1. 7b절 편집자의 전달에 의하면, 베레기야의 아들이요 이또의 손자이다.3) 그와 달리 에즈5,1; 6,14절에서는 그를 올바르게 이또의 아들로 표시하고 있다. 문제는 즈가리야의 아버지가 베레기야인가 이또인가 하는 것인데, 많은 학자들은 즈 1,1의 “이또의 아들”은 여베레기야의 아들 즈가리야와 예언자의 혼동에 의한 결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리소스돔과 제롬은 예언자를 여호야다의 아들로 보고 있으며, A.Berthold와 같은 학자는 즈가9-14장을 쓴 것으로 보이는 이사야의 동료 여베레기야의 아들 즈가리야와 즈가1-8장을 쓴 것으로 보이는 이또의 아들 즈가리야를 혼동한 것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후에 이러한 두 이름이 함께 놓이게 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4) 한편, 느헤12,4. 10. 16절은 즈가리야를 이또의 가문의 우두머리가 된 사제나 레위인으로 말하고 있지만, 느헤12장의 즈가리야가 예언서에 등장하는 즈가리야와 같은 인물인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예언자 즈가리야는 에제키엘과 같이 사제 가문에서 나왔고, 그래서 예언자로 불리웠음이 분명하다.5) 그가 예언자와 사제를 겸해서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위와 같은 점에서 예언자 사상의 사제적인 관심들과 확실히 에제키엘에 대하여 연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해명된다고 Fohrer는 말하고 있다.6)


예언자의 나이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7) 즈가 2,4. 8을 근거로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는 아직도 젊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8) 만일 느헤12.16의 즈가리야가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라면, 그는 적어도 대사제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살았다. 즈가리야에 대한 다른 언급은 7,1-2절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리우스 왕 4년의 일로써 사람들이 베델로부터 축제에 관하여 물으러 왔던 것이었고, 또 다른 언급은 신약의 마태오 23,35에서 나타나는데, 아마도 마태오는 이또의 아들인 즈가리야와 요아스의 통치 기간에 “주님의 성전 마당에서 돌에 맞아 죽은 여호야다의 아들인 다른 즈가리야(2역대 24,20-22)”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9)  




2.2 즈가리야서




2.2.1 시대적 배경


2.2.1.1 즈가리야서가 쓰여진 시기 : 즈가리야서 첫 부분(1-8장)에는 날짜가 잘 나와있다. 처음으로 날짜가 나오는 부분은 1,1절이며, 여기서 “다리우스 제 2년 8월”이라는 말은 BC.520년을 말한다. 이것은 학개와 즈가리야에서 날짜가 나오지 않는 단 하나의 구절이다.10) 시리아 번역판은 그것이 맞든지 틀리든지 “달의 첫 날”이라는 구절을 삽입하여 그 날짜를 제공하고 있다. 어쨌든, “다리우스 제 2년 8월”이라는 말은 즈가리야의 사명의 시작을 학개가 자신의 마지막 두가지의 신탁을 수행하기 두 달 전으로 놓는다.(학개 2,18.20). 즈가리야에서 두번째 날짜가 나오는 부분은 1,7인데 그것은 곧 “다리우스 제 2년 11월 곧 스밧 월 24일”이다. 이 날짜는 BC.519년 2월 15일과 일치한다. 이 두번째의 날짜는 즈가리야가 8개의 환시를 본 하루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W.A.M.Beuken과 P.R.Ackroyd의 의견을 따라서 Rex Mason은 1,7절은 3인칭으로 되어 있는 편집적인 부분이고, 반면에 모든 환시들은 일인칭으로 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Mason은 “비록 모든 환시들이 지금은 하나의 주제와 상황안에서 모두 합쳐지고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 안에는 더욱 다양한 기원들이 있다.”라고 말하며11), J.D.W.Watts는 1,7-6,15가 “예언자 당대에 한데 모아진 저술들”이라고 말한다. 3번째, 마지막 으로 날짜가 나오는 부분은 즈가리야7,1인데, “다리우스 왕 제 4년, 기슬레우월, 곧 9월 4일”이다. 이것은 BC.518년 12월 7일이다. 이 절 또한 편집적이며, 단식에 관한 즈가리야의 윤리적이고 종말론적인 신탁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7장과 8장은 “그리하여 야훼께서 말씀하셨다.(הוהי רמא הכ, 7,9; 8,1.4.7.9.14.18.20)에 의해 소개되는 짧은 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언사들언 아마도 몇달이나 몇년 후에 기록된 것일 것이다.


즈가리야 9-14장의 원본이 쓰여진 시기에 대하여는 많은 의견들이 제안되었다. 8세기의 여베례기야의 아들 즈가리야의 작품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고, 7세기의 예레미야의 작품(마태 27;9참조)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책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즈가리야서 전체의 날짜가 6세기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9,1-8의 삽입을 언급하며, 이것이 BC.333년의 알렉산더의 팔레스타인 침입을 말하는 것으로 4세기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B.Otzen은 9-14장 원전의 각각 다른 시기를 주장한다. 그는 9-10장은 요시아의 시기에 있었던 위기에서 나왔고, 11장은 유다가 망하던 그 해에 나왔으며, 12-13장은 유배후 초기에 나왔으며, 14장은 묵시룩적인 제 3 이사야의 특성을 상기시키며, 늦은 유배후에 나왔다고 한다. 한편 P.Hanson도 역시 9-14장 원전의 각각 다른 시기를 인정하는데, 그의 책 “묵시룩의 새벽”(The dawn of Apocalyptic)에서 그는 9장이 6세기 중반에; 10장이 6세기 반이 지난 시기에; 11,1-17과 13,7-9가 6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그리고, 14장이 BC.475-425년경에 나왔을 것이라고. 9-14장은 아마도 팔레스타인에서 즈가리야의 제자들에 의해 6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나왔을 것이다.12)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는 8장에서 9장으로 넘어가면 모든 날짜는 불확실해 진다. 즈가리야 9-14장에는 아무런 날짜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즈가리야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다. 시기도 바뀌고, 다리우스 왕이나 다른 왕의 언급도 없으며 성전은 건립되어 있다(9,8; 11,13-14; 14,21). 논쟁은 목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10,1-3에 등장하며; 11,4-17에서는 거절된 목자로서의 예언자의 행동이 나오고; 13,7-9에는 “내 양”에 반대되는 다른 신탁이 등장한다. 평화의 시간은(1-8장) 전쟁의 시간으로 바뀌었다.(9-14장).


참고) 따라서 우리는 9-14장이 적어도 즈가리야 후대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즈가리야 시대 훨씬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2.1.2 즈가리야의 활동시기


그의 활동시기는 세 자료인 1,1. 7a: 7,1에 의해 학개보다 두 달 후인, BC.520년 다리우스왕 2년 8월에서 4년 9월(518년)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확정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넘어서, 대략 BC.515년 새성전의 건축이 낙성되었을 때나13), 그 이후에 공포된 바 있는 3,8이하의 신탁이 추측케 하는 바와 같이, 다른 시기에도 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좌우간 그는 학개와 동시대인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후배이며, 아마도 포로생활에서부터 즈루빠벨과 함께 귀국하였던 것 같다.14) 그는 학개보다 약간 나중에 예언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으며, 때때로 학개 곁에서 예언을 수행하였고, 학개가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에도 자기의 예언을 계속하였다.15)


유대로 돌아온 귀환민들은 결코 부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들 중 더욱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레스의 팔레스타인 귀환령이 선포되었을 때 바빌로니아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귀환민들은 자원과 자본이 거의 없었으므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 갈 수 밖에 없었고, 가장 긴급한 요청은 영성을 강조하고 공동체의 삶을 신정체제속에서 부활시켜 줄 뛰어난 지도력이었다. BC.520년경 학개와 즈가리야가 받은 소명은 바로 이러한 어려운 과업에의 소명이었다.


K.Galling은 역대기 학파의 역사관을 분석하며 성전재건이 이루어진 시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 고레스가 대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한 직후에 다른 성소들의 복구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약탈한 제사 기물의 회송도 지시하였다는 사실은 완전히 부정해 버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는 다음의 사실이 더 옳을 것 같다. 그의 제 2후계자인 다리우스 1세의 허락에 따라서 비로소 성전 기물들이 회송되었고, 또 성전재건도 시작되었다. 유배자들의 귀환은 고레스에게서 지시된 것이 아니며, 그러한 허락은 암암리에 이루어졌을 것이며 귀환 이동은 점차 여러번의 강제 퇴거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성전 기물을 되돌려 낼 때 세스바살이 왕의 특별한 임명을 받은 관리로서 감독자가 되었다. 성전 재건은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착수되었다. 520년 경 예언자 학개와 즈가리야가 성전 재건을 요구하고, 새로운 종말론적 긴장으로 차 있던 그 때에 성전 재건을 통하여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도록 함으로써, 그 때에야 비로소 성전복구 공사가 착수되었다.”16)


즉, 이러한 가운데서 학개가 제 2 성전의 기초를 놓기 위한 시발적 동인을 마련했다고 한다면 즈가리야는 자신의 예언신탁을 통하여 회복된 신정체제에 더 큰 정신적 차원을 제공함으로써 이 재건사업의 완성에 근본적으로 협조하였다. 즈가리야가 당시의 유대에 있던 사회적 사회적, 영적 상황의 긴급성에 관심을 보였던 반면, 그의 신탁과 환상들은 귀환한 포로민 공동체가 만약 그들이 언제나 영성을 유지한다면, 장래에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주었다. 그의 메시지는 유대의 상황이 더 이상은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시대에 선포되었던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였다.17)




2.2.2 단일성


2.2.2.1 대체로 즈가리야 1-8장의 본문은 그 전달과정에서 예언서들이 일반적으로 겪었던 것보다 더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 분명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예언들이 즈가리야 예언자의 말이라는 것 때문이며, 즈가리야 자신에 의해서 그 말들이 선포된 순서대로 배열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즈가리야 시대 직후 수집되고 편집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같다. 문체에 있어서의 뚜렷한 차이점과 신탁들의 내용을 밤의 환상들의 내용과 완전히 조화시키는데 어려운 점으로 인해 이 1-8장에서 조차도 성격이 다른 두 명의 저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생겨나게 되었다. 즉, 첫째는 초기 저자로서 그의 신탁들은 비록 희미하나마 전형적인 히브리 예언자들의 주제를 반향하고 있으며 그의 종말론적 희망은 즈루빠벨을 도래하고 있는 메시야적인 왕으로서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에제키엘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 후기 저자로서 그는 즈루빠벨이 권력을 잃은 후에 그 자신의 희망을 야훼의 초자연적 개입에 있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한 자이다. 그는 야훼의 초자연적 개입을 새로운 시대에 관한 묵시적인 환상들로 표현하였으며 이방인들의 멸망과 연이어서 사제직을 중심으로 한 성전제의가 있을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신탁들과 환시들이 서로 다소간 논리적인 연속성을 따르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같은 예언자의 저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18)




2.2.2.2 그러나, 즈가리야 9-14장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대략 세가지로 나누어 진다. 첫째는 BC.6세기 말엽에 즈가리야 자신이 전체의 책을 기록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는 유배기 이전의 가설로써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에 의한 것이다. 즉, 이것은 사무엘 8,2에 언급된 여베레기야의 아들 즈가리야가 BC.8세기의 것인 9-11장과 13,7-9을 구성했으나, 13,7-9을 제외한 12-14장은 BC.7세개의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익명의 저자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세째로 이와는 달리 대략 BC.3세기의 즈가리야시대 이후의 어느 때에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19)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구분이 정확한 것이 아닐 지라도 우리는 즈가리야 9-11장, 12-14장은 분명히 즈가리야1-8장의 저자와는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말라기가 즈가리야서의 뒷부분과 더욱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원래의 즈가리야서(1-8장)에 즈가9-11, 12-14장이 첨가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Achtemeier는 즈가리야서를 1-8장의 1즈가리야, 9-11장의 2즈가리야, 12-14장의 3즈가리야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있다.20)




2.2.2.3 또한 즈가리야 9-14장의 저자에 대하여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다양한 수라는 데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을수 있기는 하지만 신학사상들과 역사적 배경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어학적, 문체적 근거에 의해서도 즈가리야1-8장의 저자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거의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즈가리야 9,1; 12,1; 과 말라기 1,1은 그 다음에 따라나오는 부분을 “야훼의 말씀의 경고”(הוהי רבד אשׂמ)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절들은 즈가 9,1-말라 4,6이 익명의 예언집이었으며, 그 예언집을 12예언서의 편집자들이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 세 부분 중에서 두 부분이 그 앞부분에 있는 동일한 성격을 지닌 예언적인 저작, 즉 즈가리야서에 첨부되었다. 반면에 그 마지막 부분은 그 앞의 두 부분과 성격상 다른 것으로서, 수적으로 중요한 총 12예언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말라기라는 명칭하에 독립된 저작으로서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즈가리야서 안에 들어 있는 두개의 앞 부분은 9-11장과 12-14장이며, 이는 즈가리야1-8장과 분리해서 취급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21)




2.2.2.4 즈가리야서 전체의 단일성에 대한 연구사


즈가리야서의 단일성에 대한 연구는 구약성서 연구의 오랜 주제였다. 과거 이사야서가 한 사람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믿어졌던 것처럼, 즈가리야서가 한 저자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믿어지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편집비판의 제기로 이 책의 단일성이나 각 부분들이 최종 편집자에 의해 의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17세기 까지는 즈가리야서가 한 저자에 의해 모두 쓰여졌다고 하는데 아무 심각한 문제가 없었지만 1638년에 캠브리지의 한 신학자가 마태오 27.9절이 느헤11,12를 인용했는데 그것은 즈가리야라기 보다는 예레미야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처음으로 즈가리야서의 단일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Mede는 즈가리야가 전체 책을 썼다는 데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즈가리야 9-11장에 대하여 의심을 보이면서 이의 진정한 저자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미첼, ICC, 252참조) 그는 이 부분이 즈가리야라기보다는 예레미야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성서적 근거를 단지 마태오 27,9에만 두고 있다. 이러한 Mede의 주장은 1699년에 R.Kidder가 에례미아가 즈가리야 9-14장을 썼다고 하는 것음 매우 있음직한 견해이며, 그것은 성서의 견해에 근거를 둔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그 이후, 즈가리야서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논쟁이 영국, 독일, 미국 등에서 일어났다. 1784년에 Flugge는 즈가리야9-14장을 9개의 예언들로 나누며,22) 그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써 즈가리야가 그것들을 여기에 모아 보존한 것으로 가정된다고 설명한다.23)


한편, 즈가리야서가 즈가리야시대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 주장한 첫 학자는 1792년의 Corrodi였는데, 그는 9장은 알렉산더 대왕의 시기이며, 14장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시기라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견해가 Eichhorn에 의해 1824년에도 대두되었다. 이후 1881년에 B.Stade는 9-14장이 BC.306-278년 사이에 쓰여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즈가리야서의 단일성은 최근에는 문학,역사,신학적인 배경하에서 연구되었다. 1961년에 P.Lamarche는 9-14장은 BC.500-480년 경에 살았던 한 저자가 다른 단편들을 교차형태로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저자가 하느님 나라의 최종적 승리에 대한 묘사를 4개의 주제24)하에 교차적으로 정리해 놓았다고 믿는다. 뒤를 이어 J.Baldwin은 Lamarche의 의견에 동의해 9-14장이 단일한 저자에 의해 쓰여졌을 뿐 아니라, 1-8장에도 교차적 배열이 나타나므로 이는 바로 즈가리야자신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W.Harrelson등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Y.T.Radday와 D.Wickmann은 자신들의 이사야 연구 방법론과 같은 방법으로 즈가리야서를 4개의 부분으로 구분하였는데,25) 문제는 뒷부분의 저자가 앞의 저자와 동일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결론은 첨단 장비를 이용한 언어학적 분석에 의한 것인데, 이는 사실 8장과 9장의 단절을 주장하기에는 불충분한 증거인 것이다.


R.Mason은 1-8장과 9-14장 사이의 주요 강조점 5개의 유사함에 대하여 연구했다.26) 그는 이러한 것들을 찾아내기는 하였지만, 서로간의 차이점을 제시하며 9-14장은 “서로 다르며, 즈가리야 후대에 기록되었다.”라고 말한다.27)


B.Childs는 우선 1-8, 9-11, 12-14장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9-14장에는 1-8장에 나타나는 동일한 편집적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며, 9-14장은 9,1과 12,1에 의해 다시 두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이들 각 부분들은 1-8장과 독립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또한 1-8장과 9-14장은 동일한유형, 교훈적인 확장, 예언적 완성과의 관계등과 같은 직접적인 문학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즈가리야서를 두부분으로 나누어 다룰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 두부분의 놀라운 동질성을 인정한다. 그는 이러한 동질성을 두 부분의 배후에 놓여있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의 요소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고 있지 않다. 그는 9가지의 서로 일치하고 있는 요소28)들을 지적하며, 두 부분의 어휘가 다르고, 9-14의 수준높게 구사된 교차적 배열29)이 서로간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것을 어렵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단일성의 요소들은 후대의 편집자들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즈가리야서 “전체에 ‘단일성’은 드러나지만, 그러한 ‘단일성’과 어떻게 그러한 단일성들이 나왔는지에 대한 일치점은 거의 없다.”는데 동의한다.30)




2.2.3 문학적 형태




2.2.3.1 환시라는 형태에 대하여


우리는 왜 예언자가 그의 메시지를 “밤의 환시”라고 하는 형태로 전달하려는지 묻는것이 좋을 듯 하다. 아모스, 예루살렘의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제키엘 등 과거의 많은 예언자들이 계시의 일부분을 환시들을 통하여 받았다. 게다가 하느님 역사의 표지를 찾아내는 ’파수꾼‘으로서의 예언자의 이상은 그들 중의 몇몇에게서 이용되어 왔다(하박 2,1-3; 에제 3,17; 이사 21,8-9. 11 참조). 이들 중 에제키엘, 이사야 등에 나타난 신탁들은 상당히 모호하며, 확실히 그것들은 예루살렘의 이사야보다 후대의 것이다. 그들은 유배의 고통이 끝나기를 원하는 것과 관계되어 있으며 바빌론의 멸망을 기대하고 있으며, 병거와 말들의 연결은 즈가리야의 처음과 마지막 환시에서의 그것들의 역할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가 있다. 우리는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문학적 의존성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아침의 빛으로서 드러날 하느님의 이끄심과 함께 고통과 번민의 시간으로 밤의 상징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는 몇개의 시편에서도 마찬가지이다(시편 30,5; 46,5 참조). 그것은 고통의 긴 밤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시는 하느님 중재의 첫번째 빛을 찾아내려는 사상을 제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즈가리야는 자신의 역할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러한 모티브와 전승들을 끌어다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의 백성에게 긴 고통의 밤이 지나고 하느님 날의 새벽이 밝아온다는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밤의 환시”들을 단지 문학적인 결정체로만 봄으로써 그것들이 하느님의 메시지의 진정한 확신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는 안된다. 위대한 시들이 소네트같은 형태들을 사용하여 진정한 느낌을 표현하듯이 진정한 예언자들은 그들이 내적으로 깊이 느낀 것들은 고정적인 형태를 통하여 표현했을 수도 있다. 환시들 안에는 작은 구조의 차이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음의 단순한 형태를 따른다.


1) 도입


2) 환시의 묘사


3) 예언자가 환시의 의미에 관하여 물음


4) 해석하는 천사가 설명을 해줌


이러한 형태로부터 갈라져 나온 하나의 환시는 3장에 나타나는 4번째의 것으로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원래 7개의 연속적 환시들 안에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31)




2.2.3.2 묵시문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즈가리야서 안에는 다양한 문학적 형태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주로 산문체로 쓰여졌지만, 몇개의 시를 담고 있으며(9-10장), 또한 권고들(1,1-6), 환시들(1,7-6,8), 상징적 행동들(6,9-15),그리고 신탁들(7,1-14,21)을 가지고 있다.32) 그러나 즈가리야서의 문학적 형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그것이 묵시적인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답은 각 사람의 묵시에 대한 정의에 달려있지만, 사실 이에 대하여는 학자들의 일반적인 일치점이 없다.


J.M.Schmidt는 예언의 묵시로의 전이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며, 즈가리야의 환시는 이러한 전이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즈가리야의 환시들을 묵시적이라고 인정한 H.Schultz를 언급하는데, Schultz는 예언은 갑자기 묵시적으로 바뀌지 않았으며, 이미 에제키엘이나 즈가리야의 환시들에 나타나는 모습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상징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며, 거기에 나타나는 언급들은 목적을 가지고, 과거의 예언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H.Gese는 일곱개의 밤의 환상들이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즈가리야서가 최초의 묵시룩이라고 말하는 한편, P.Hanson은 Gese의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여 “묵시적 종말론”은 그 기원을 예언자들의 환시의 연속선상과 유배 후 초기 사제적정치 사이에 그 기원을 둔다고 말하고 있다. 제 2 차 성전건립 때에 사제들은 종교에 대한 통제력과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사제계 지도자들은 미래의 종말론을 필요로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종말론은 그들의 사제적지위 안에서 “현실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고전적인 예언의 전승자들은 사제정치의 위치 아래에서, 영광스럽게 된 시온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하느님 백성의 재건에 대하여 절망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백성을 위하여 고대의 신적 전사(Divine worrior)의 모티브에서 야훼의 우주적인 중재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Hanson의 견해는 R.P.Carrol에 의해 비판되었다. Carrol은 Hanson의 사회적 분석과 양식비판적 접근의 작업을 조금 더 확장해 설명한 후에, 몇가지의 난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Hanson이 접근방식에서 너무 과도한 (예언자계와 사제계라는)양극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신화와 역사를 이용하여 환시자들과 성직정치가들의 두 부류를 보는 방식이 명확하지 않다고 믿는다.


즈가리야서가 묵시적인지 아닌지는 묵시룩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달려있다. 어쨌거나,즈가리야서는 환시들을 담고 있고, 천사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초기의 예언들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에는 강력한 종말론적인 강조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중적”이라는 것은 논의할 만 하다. 만일 즈가리야9-14가 묵시적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러한 문학 유형의 선두주자임를 나타내는 것이다.33)






2.2.4 구조와 내용




2.2.4.1.  1-8장


2.2.4.1.1  1,1-6 : 서론과 회개에로의 부름, 여기서 에언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귀환한 유대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특히 그는 그들이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조상들의 오류를 피할 것을 부탁했다.


  


2.2.4.1.2  1,7-6,8 : 8개의 밤의 환상과 신탁들


  ① 1,7-17 : 첫 환시 – 반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느님의 질투적인 사랑


  ② 2,1-4 : 둘째 환시 – 하느님은 이방세계를 뒤흔들고 그에게 복수를 행하신다.


  ③ 2,5-17 : 세째 환시 – 예루살렘은 방해가 되는 거대한 성벽이 없이 하느님 나라의  수도로써 하느님의 보호에 들어가게 된다.


  ④ 3,1-10 : 네째 환시 – 여호수아는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사제로 임명되었으며, 성전 영역은 세상의 세력에서 면하게 된다.


  ⑤ 4,1-14 : 다섯째 환시 – 메시아의 통치가 정치적인 대리인들과 종교적인 대리자들에게 나누어짐. 이는 보편성을 띠게 되는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줌.


  ⑥ 5,1-4 : 여섯째 환시 – 귀향자들의 고대적인 옛법들을 위한 유다의 불명예스러운 소유관계들에 관한 결정


  ⑦ 5,5-11 : 일곱째 환시 – 구원시대에 있어서 민족과 사회의 속죄


  ⑧ 6,1-8 : 여덟째 환시 – 하느님의 영에 의해서 실현된 민족의 강화




2.2.4.1.3  6,9-15 : 환시들에 대한 결론 – 상징적인 행동을 수행하라는 야훼의 명령을 전해주고 있으며, 즈가리야는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 때의 정치적, 메시아적 통치자로 즈루빠벨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2.2.4.1.4  7,1-8,23 : 단식과 윤리의 문제 – BC.597년 예루살렘의 함락을 기념하여 단식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 진술하는 즈가리야의 신탁을 포함한 또하나의 역사적 단원이다. 백성들에게 선포된 것은 형식적 행위에 탐닉하기 보다는 특별히 고귀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느님게서 귀환민들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백성들이 높은 도덕적, 윤리적, 영적 표준들을 준수한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공동체의 삶에 하느님의 축복이 내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자신의 긴 역사에서 경험해 본 적인 없는 정도의 번영을 누릴 것이다. 신정체제는 당시의 사회에서 너무나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열국들이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열심히 따를 것임을 말하고 있다.


  ① 7,1-6 : 단식에 관한 물음


  ② 7,7-14 : 이전 예언자들의 말씀의 반복


  ③ 8,1-23 : 약속의 계명


    8,1-8 : 다섯개의 짧은 희망의 메시지


    8,9-17 : 두개의 약속과 권고를 포함한 설교


    8,18-23 : 미래에 관한 세개의 짧은 메시지




2.2.4.2  9-14장


2.2.4.2.1  9,1-11,17 : 새로운 신정을 약속하는 예언이다. 이 부분은 거주할 땅과 바빌론 유배 에서의 귀환, 적대세력에의 승리와 현세의 축복 및 민족적인 부강등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야훼를 그들의 목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심판에 대한 비유로 끝나고 있다. 따라서 회복하고 하나가 되어 적들을 무어뜨렸던 유다와 에브라임은 땅과 왕을 약속받는다(9장).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것이며, 강해질 것이다(10장). 이스라엘은 야훼의 돌보시는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심판을 받을 것이다(11장).


  ① 9,1-8 : 시리아에 있는 야훼의 왕국


  ② 9,9-10 : 새로운 왕의 오심


  ③ 9,11-17 : 포로에서의 해방


  ④ 10,1-2 : 예언적 권고


  ⑤ 10,3-12 : 유다와 요셉의 재건


  ⑥ 11,1-3 : 폭군들에 대한 노래


  ⑦ 11,4-17 : 목자가 거절되다


2.4.2.2  12,1-14,21 : 새로운 신정의 승리와 다가오는 야훼의 날을 묘사하는 예언이다. 이 부분은 철저히 종말론적이며, 세 가지 독특한 묵시문학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곧 예루살렘이 원수들에 의해 어떻게 포위되며, 야훼께서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12장), 정화되고 순수해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13장), 마지막으로 민족들은 기쁘고도 즐거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있으며, 그 날에는 모든 것이 야훼를 향해 거룩해진다고 하는 심판과 구원에 관한 묵시문학적인 대환상으로 끝난다.


  ① 12,1-8 : 나라들에 의한 예루살렘 공격


  ② 12,9-14 : 그들이 찔렀던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통곡


  ③ 13,1-6 : 죄, 우상들, 거짓 예언자들로부터 예루살렘 정화


  ④ 13,7-9 : 얻어맞는 목자


  ⑤ 14,1-5 : 예루살렘을 위한 전쟁의 날


  ⑥ 14,6-11 : 새 예루살렘


  ⑦ 14,12-15 : 예루살렘을 대항해 싸우던 사람들에 대한 재앙


  ⑧ 14,16-21 : 나라들의 예루살렘으로의 순례34)




2.3. 신학




2.3.1 역사적인 맥락에서   




즈가리야도 마찬가지로 성전건축을 위해서 예언활동에 뛰어 들었지만, 그는 자기 시대의 실제적인 문제를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종말론적인 마지막 때가 열리는 주제와 종말론적인 예배 공동체의 기구조직을 위해서 말씀을 받았다. 즈가리야의 사상은 그의 동시대인 학개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그의 선배들의 사상에 많이 의존하였다. 그는 신정체제(Theocracy)의 이상에 대한 열정이 거의 식었다가 학개의 활발한 가르침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던 시대에 예언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예언자적 소명이 거의 동시대인 학개의 노력에 이은 후속적 활동으로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신정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긴급한 과제에 관한 한 두 사람 사이의 중요한 신학적 차이가 있지는 않다. 학개와 즈가리야에게 있어서 상황은 무엇이 먼저인가 하는 우선권의 문제로 귀결되었고 그들의 사상가운데에서는 재건되어 제기능을 하는 성전이 가장 중요한 근본문제였다. 이 두사람은 귀환한 공동체가 계약관계의 이상을 체현하는 한에서만 비로소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으며 예배의 적절한 형식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내적 정결상태의 외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즈가리야는 제의적 형식주의에 내포된 위험들에 대해 더욱 뚜렷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개인이 하느님께서 자신의 삶에 대해 요구하는 것들을 의식하면서 행하여야 한다는 중대한 필요성에는 학개보다도 더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학개보다도 공동체 내의 계약의 이상을 하느님의 뜻에 대한 엄격한 순종을 통하여 소중히 키워나가야 할 필요성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즈가리야의 동시대 세계에 대한 넓은 시야는 메시아 사상을 선포했던 그의 종말론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물론, 그는 자기 민족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기에 민족주의적 관점이 뚜렷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의 폭넓은 환시 속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믿음과 헌신의 정신 속에서 함께 모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는 때에 관하여 명상하고 있다. 그는 이사야등의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구원의 장을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구원의 완성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다스릴 메시야라는 인물을 통하여 도입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러한 과정의 최종적 단계를 예루살렘이 죄로부터 벗어나 정결해지고 공동체가 계속되는 평화와 번영의 상태로 회복되는 단계로서 간주하였다.35)


즈가리야가 그의 선배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의존성은 매우 쉽게 과대평가 되었다. 그가 단순한 도용자나 모방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가 “이전의 예언자들”이라고 인용하여 그들의 언어를 자신의 일이나 목적에 맞게 적용한것을 보아 명백하다.  첫번째로 환시들은, 고찰된 바에 의하면 명백히 아모스의 환시들로부터 제시를 받았다. 그것들은 하나의 선배 예언자를 상기시키지만 그것은 묘사된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다루어지고 있는 방법적인 측면에서이다. 보아 온 것처럼 처음의 세개는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된 회복을, 다음의 두개는 새로운 공동에의 조직을, 마지막의 세개는 죄악의 제거를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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