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말라기 (יכאלמ)






시작하면서   


1. 저자


2. 저작시기


3. 배경


  3.1 역사적 배경


  3.2 구조적 배경


4. 구조


  4.1 전체적 구 조


  4.2 세부적 구 조 


5. 가르침


6. 중요성


마치면서


참고문헌








시작하면서




말라기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자료의 선택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연구에 따라 자료를 남겼는데,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자료일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많은 자료를 모두 이용할 수는 없기에 되도록이면 기준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찾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본 글에서 사용한 자료의 대부분은 ‘사전류(Commentary)’이었고, 개인적 연구 자료는 몇개되지 않는다.  부족한 영어로 원전을 옮기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으며, 그 내용도 원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내용에 맞는 것인지 생각해볼 때 두렵기만 하다.




1. 저자




12 소예언서의 하나인 ‘말라기’를 저술한 예언자의 신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예언자의 이름은 편집자에 의해서 첨부된 ‘표제(1,1;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내린 하느님의 말씀)’에서 주어진 것이며, 편집자는 이것을 3,1의 내용인 ‘보라, 내가 사자를 보내겠다’는 말에서 따온 것 같다.1)  그러나 이것은 다음 1,2에서 시작하는 예언에 대한 편집자의 서문임이 틀림없다.  말라기가 예언자의 개인적 이름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가지 추정은 말라기는 단어 ‘Malachiah’의 축약형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단어는 ‘Malachiah’의 일반적 해석인 ‘야훼의 사자 혹은 야훼의 천사’라는 개념과 더불어 ‘야훼는 사자 혹은 야훼는 천사’라는 개념을 의미하는 경향도 있다.


말라기가 예언자 고유의 이름이라는 관점에 반대하는 이들은 3,1에서 ‘나의 사자’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원전 ‘יכאלמ(malakhi)’를 제시한다.  이 단어를 70인역에서 ‘그의 사자(malakho,וכאלמ)’로 읽었고, Talmud와 Jonadan의 Targum은 ‘나의 사자’를 서기관 에즈라와 동일시하였다.  그후, Jerome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2)  그러나 이같은 의견에 반대하는 측은 1,1의 말라기는 틀림없는 저자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1,1의 단어 ‘말라기’와 3,1의 단어 ‘말라기’의 일치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저자가 아마도 1,1의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3,1의 내용과 대치시키는 기교를 부린 것일 것이라고 말한다.3)


어쨋든 예언서의 주제나 역사적인 상황은 저자의 신원에 대해서 알려주는 바가 없다.  말라기의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인 것 같으며, 12 소예언서의 편집자가 3,1에 근거하여 이 무명의 저자에게 ‘말라기’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편의상 말라기 예언서의 저자는 일반적으로 ‘말라기’라고 부른다.4)  그러므로 말라기란 이름의 가장 좋은 설명은 그것을 형용사적 이름으로 취급하여 “메시지 또는 사명을 부여받은 자”를 의미하는, 그래서 선교사를 의미하는 라틴어 Angelicus(사자)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름 자체는, 그 사람의 메시지가 구약의 정경적 예언서를 마감하고 봉인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직무상의 칭호에로 귀착한다.  다행스럽게도 저자의 신원은 그의 메세지의 인증을 위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며, 저자는 강력하고도 열정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5)  이같은 해석은 말라기를 한 사람의 예언자로 한계지어 좁게 해석하는 방향을 수정한다.  곧 말라기를 일정한 예언자가 아닌 하느님이 보내신 자로 미래를 향해 열려진 개념으로 전개하여 확장시킬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에 수용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이 보내신 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저작시기




말라기가 속해 있는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적어도 B.C. 515년 이후임은 틀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말라기는 이미 성전이 건축되어 있다는 것과 올바른 예배 체계가 어지러워졌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1,10).6)  그리고 1,8의 ‘pechah’, 곧 페르시아의 총독을 지칭하는 말로 보아 그 시기는 틀림없이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일 것이다.  그러나 하깨와 즈가리야 처럼 파괴된 성전의 재건축에 대한 필요성과 폐허가 된 성전에 대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7), 아울러 타락한 예배행위와 사제들에 대한 보도(1,7-10; 1,14; 2,3; 3,6-12)를 보면 하깨와 즈가리야 두 예언자의 설교로 열성이 불붙은 때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는 것 같다.  느헤미야 시대엔 사회정의와 결혼에 대한 질책이 언급되고 있는데(3,5; 에즈 9-10; 느헤 5,1-13), 말라기의 비판을 보면 느헤미야의 개혁(B.C. 445년; 느헤2,1)이 시작하지 않은 것 같다.8)  그러므로 말라기의 시대는 성전을 재건축한 때인 B.C. 515년과  느헤미야가 임무를 맡았던 B.C. 445년 사이의 시대로서 아마도 페르시아의 지배자인 크세르섹스(B.C. 486년-464년)의 치세 기간중의 시대일 것이다.9)  한편, 말라기가 몹시 비난한 종교의 부패는 확실히 느헤미야와 에즈라가 강력하게 공격하였고 성공적으로 근절시켰던 것과 같은 범죄이다.  그렇기에 말라기의 시대는 B.C. 445년 이전 어느 때이거나 적어도 B.C.428년-427년 사이일 것이다.10) 


그런데 말라기의 제사장직에 대한 개념은 불확실하다.  즉, 말라기는 제사장과 레위인 사이를 구분짓지 않고 있다 (2,4-9).  이것은 신명기적 견해와는 일치하지만(신명 17,9), 제관계 법전에서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레위 1,5)과 레위지파의 보조자(민수 18,1-4) 사이에 구별을 짓고 있다.  이같은 이유때문에 가장 신빙성있는 말라기의 연대는 B.C. 460-45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만일 나바테안인들의 에돔 침입 연대를 알수 있다면 보다 더 정확한 연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11)


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이 연대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A. C. Welch는 이 예언자의 연대에 대하여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Post-Exilic Judaism]에서 말라기는 기원전 약 520년경의 하깨와 즈가리야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성전이 재건되어있다는 증거는 설득력이 없으며, 2,10-16은 이혼과 잡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계 신을 경배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같은 그림을 성전 복구 후의 시대보다는 이전의 시대에 연결시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한다.(A. C. Welch, Post-Exilic Judaism [Edinburgh: Blackwood, 1935] 113-125)  아울러 Welch가 Hesting Dictionary of the Bible에 기고한 초기 아티클에서 말라기에 대한 전통적인 시대를 지지하고 있음도 주의해야 한다.


Welch는 말라기에 대해 이른 시대(520 B.C.)를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예언자와 예언서에 대해 좀더 늦은 시대를 제안한다.  C. C. Torrey는 악한 자들로부터 의인들을 따로 구별해내는 날로써 심판의 날을 생각하고 있는 묵시의 구절(3,1-2; 19-24)이 후대의 시편과 지혜문학 가운데에 한부분으로 남아 있다고 하면서, 책이 기원전 5세기 전반 시대에 씌여졌음을 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C. C. Torrey, JBL 17 [1898] 14-15) I. G. Matthews는 기원전 4세기 초에 책이 씌여졌다고 제안한다.  그의 결정에는 강력한 묵시적인 어조와 종파분리주의의 존재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그 사실이 책이 그리스 지역에서 씌여졌고, 1,8에서 언급되는 지배자가 174년의 대사제였던 Jason이라는 주장에 대해 확실한 근거가 되지 못하며,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인 2,10-16은 Antiochus Epiphames에 의해 예루살렘에 도입된 그릇된 경배행위(2마카베 4,8)를 공격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이 180 B.C. 보다 이후에 씌여졌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Ben Sira가 Sir 48,10과 49,10에서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  이상의 연구들에 미루어, 말라기의 저작 연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 시대일 것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주장한다. 




3. 배경




3.1 역사적 배경




유배이후의 시대는 큰 희망을 가지고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에게는 의기소침한 시대였다.  이사야 40-55장에서 예언자는 귀환한 사람들의 미래를 심화된 희망의 말로써 치장하였으며, 사람들은 메시아적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하깨와 즈가리야는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면 ‘영광의 주님’께서 전례에 없는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보증함으로써 이들의 희망을 더하였다.13)


즉, 하깨와 즈가리야는 가까운 장래에 구원의 때가 도래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그 전제 조건으로서 그들은 성전 건축을 들었던 것이다.  성전은 B.C. 515년에 완성되었으나, 그들이 말한 세계의 대변혁은 일어나지 않았다.14)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영광은 없었으며, 대신에 굶주림가난압제결혼 맹세와 계약 맹세에 대한 불성실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해이교만냉담방종과 회의주의 등이 퍼져갔을 뿐이었다.15)  그래서 세계의 대변혁을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공동체는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한 진영은 여전히 희망을 가졌으며 그럴수록 더욱 더 열심히 예배와 율법을 고수했다.  다른 진영은 실망으로 인해 그들이 회의에 빠지거나 선조들의 신앙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는 정도의 경건만을 유지했다.16)  결국 대외적으로 희망이 고양되어 있었던 유대의 공동체는 무참한 실의로 빠지게 되었고, 재외거주 유대인들은 총체적인 재건사업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되어 그들의 대부분은 각자의 거류지에 그대로 눌러앉아 사는데 만족하였다.  그렇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이야기 했던 대규모의 유대인 귀환은 결코 없었다.  이같은 희망의 좌절로 인한 실망은 환멸을 낳았고, 환멸은 다시 종교적 및 도덕적 해악을 낳았다.17)


성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이 시대의 유다 청년들은 “젊은 시절의 아내들(2,14)”과 이혼하였고, 이방계 혈통의 예쁜 여자들과 결혼하였다(2,13-16; 에즈 2-10).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의를 행했으며(3,5), 심지어는 그들을 노예로 팔기까지 했다.(느헤 5)  반종교적인 사람들이 경건한 사람들 보다 더 잘산다는 모욕적인 외침이 들려졌고(3,14-15), 지도자들 특히 사제들은 진실된 열정이 일반적으로 쇠퇴하고 있는데 대해서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었다(2,1-3,8-9; 에즈 10,15-16,18-24; 느헤 13,4-13, 22, 28-31).  성전예배는 외적인 형식으로라도 고치도록 요구조차 되지 않았고, 병든 동물들이 희생 제물로 봉헌되어졌다(1,7-8,13; 느헤 13,15-22).18) 




요컨데, 공동체가 스스로 뭉쳐서 그 풍기를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을 찾지 않는다면, 비록 총체적으로 붕괴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조만간 공동체의 그 독특한 성격을 상실할 위험이 실제로 있었고, 위기를 극복할 철저한 대책이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현재의 그런 모호한 상태로는 존손할 수도 없었고 또한 과거의 체제를 되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창조적 실체로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만 할 판국이었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잡혼에 대한 유대인들의 모호한 태도였다(2,10-16).  그리고 이같은 잘못된 행동의 계속적인 고집은 급기야 하느님 정의의 실존을 요구하는 질문을 말라기가 상기하게 하였다(2,17).19)


이같은 상황 속에서, 예언자는 의기소침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불길을 다시금 불 붙이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야훼께서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며(1,2-5), 계약은 아직 힘이 있다고 보증하였다.20)  그리고 예언서의 마지막 절의 주제인 최후의 심판을 공동체에 준비시키는 “계약의 사자”가 오심을 급박하게 외침으로서 이에 응답한다.21)  그날에 그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소유물이 될 것이며 심판의 날에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3,16-21).




3.2 구조적 배경




말라기의 언어와 사상은 신명기계 재료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사랑’, ‘두려움’, ‘충실함’은 신명기와 신명기계 역사가 자주 표현하고 있는 모티브들이다.  레위가 사제 역활을 하는 것은 신명기의 사상이다(신명 17,9; 18,1).  보물창고의 십일조(3,10)는 신명기적인 십일조이다(신명 14,28-29; 26,12-14).  3,22의 ‘모세의 율법’, ‘호렙’, ‘온 이스라엘’은 신명기적인 용어이다.


말라기의 형식은 논쟁의 형식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토론’으로 부른다.  또다른 이는 이것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혹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논쟁이 형식을 특징짓는 가장 적합한 용어라고 본다.  논쟁 형식은 새로운 것도 아니며 말라기만의 것도 아니다.  미가 2,6-11의 거짓 예언자들과 가진 미가의 논쟁은 고전적인 예이다.  예레미야는 그와 동시대 사람들(예레 2,23-25; 29-32)과, 그리고 거짓 예언자(예레 28,1-11; 29,24-32)와 논쟁하였다.  논쟁구절의 형식이 이전의 구절들 보다 좀더 규정화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예언자와 야훼는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경외하고 종은 그의 주인을 받든다”라는 일반적인 전제를 포함하고 있는 진술을 하고 있다.  각 전제는 그 점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고소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하느님이 경외심두려움충실함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다.  각 논쟁에서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행했는지 혹은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엇이 변하겠는가?”하고 묻고 있다(1:2, 6, 2:10, 14, 17, 3:7, 13).  그때 예언자와 야훼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들을 배열한다.  그러나 말라기는 사람들에대한 사목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책의 주요한 일격은 사랑위로확신희망이다.


말라기에는 일련의 자료적인 문제들이 있다.  1,3의 ‘תונתל’의 의미는 “자칼” 아니면 “목장”인가?22)  1,11에는 두개의 가정 hophal 분사가 함께 나타난다.  1,12의 단어 ‘וביꗼ’ “열매”는 문제가 있다.  2,4의 부정사 ‘תויהל’의 의미는 불확실하다.  2,12의 ‘הנצו דצ’는 매우 어렵다.  2,15는 아마 책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일 것이다.23)  그리고 ‘השׂצ ךחא אלו’는 질문의 형태로서 “Did he not make one?”이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24)  특히, “remnant of the spirit”의 표현은 매우 애매모호 하며, 많은 다른 번역들의 대상이 되었다.  말라기에 대하여 출간된 연구서들이 많이 있는데, Karl Buddes의 “Zum Text der drier letzen Propherens”(ZAW 26 [1906] 1-28)은 아직까지도 도움이 된다.  Lars Kruse Blinkenberg의 근래에 발표된 2개의 아티클, “The Peshitta of the Book of Malachi”, ST 20 (1966) 95-119, 그리고 “The Syro-Hexapla of the Book of Malachi”, ST 21 (1967) 62-82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말라기의 광대한 자료적 문제를 지적하면서, Kruse Blinkenberg는 Syr과 MT 사이에서 불일치 하는 111개의 항목(ST 20 [1966] 109)과 LXX와 MT 사이에서 불일치 하는 96개의 항목(ST 21 [1967] 73)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 불일치하는 것들중 거의가 심각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한편, 불행하게도 이점에 대하여 꿈란의 재료들은 말라기에 대해서 빛을 거의 던져주지 않고 있다.


말라기는 시문인가 아니면 산문인가?  수년동안 영어권의 학자들은 산문으로 생각하여왔다.  RSV, NEB, JB는 말라기를 산문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독일어권 학자들은 자주 시문의 형태로 생각했다.  Marti, Sievers, Nowack는 시문형식으로 만들고자 책을 수정하였다.  W. Rudolph는 책을 시문의 한 종류로 생각했고, 더 이상의 수정에 의지하지 않고서 절의 방식으로 번역하였다.  S. R. Driver는 “말라기의 형식은 비록 그 문장이 예언자의 고결한 웅변중에 일정한 특징으로 나타나는 리드미컬한 댓구에 자주 빠지긴 하지만, 일반적인 예언서의 그것 보다는 좀더 산문이다.  그는 과거 예언자들이 지녔던 상상적인 힘이나 수사법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말은 항상 힘이 있고 직접적이며, 그가 사용하는 직유와 비유는 효과적이다.” 라고 말한다.25) 




4. 구조




4.1 전체적 구조




말라기 예언자의 설교는 제관계 법전을 나라의 법으로 삼은 에즈라의 개혁이 있기 전에 편집되었다.  아마도 무명의 예언자 그 자신이 설교에 대한 첫번째 편집을 책임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은 첫번째 증보(增補)를 행한 누군가에 의해서 취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최초에는 즈가리야의 예언에 결부되어 “취지(趣旨)” 혹은 “신탁”에 대한 연제들의 부분으로 수집되었다.  말라기가 분리되었을 때(아마도 12권의 책은 소 예언자들의 이름 목록이 없이 단일한 한권으로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주의 사자(1,1; 3,1)”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서문 구절이 증보되었다.  동시에 3,23-24이 첨부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를 메시아 운동의 선구자와 동일시 하는 일을 꾀하였다.  말라기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후 조금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말라기와 예언서들이 마지막 단계의 형성(수집과 편집)을 거친 것은 분명하다.  이같이 허술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성서는 이에 대하여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26)


오늘날 수집되어 있는 유배 후의 저술들을 연대학적으로 나열한다면, 주석상 말라기는 즈가리야 1-8 다음에 위치한다.  즈가리야 9-14장은 요엘서 다음에 제 2 즈가리야로 다루어져야 연대학적으로 적합하다.  이같은 이유는 제 2 즈가리야 서문(말라기는 즈가리야 9-11장, 12-14장과 마찬가지로 ‘massa’(취지 혹은 신탁)라는 머릿 단어로 시작한다.27))에서 얻을 수 있다.  비록 연대학적 순서로는 즈가리야 9-14장이 사이에 끼지만, 말라기는 언제나 히브리 성서에서 즈가리야 9-14장 다음에 첨부되어 왔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매혹적인 이론은 다음과 같다.  11개의 짧은 예언서들(소 예언자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1-8])의 수집이 거의 다 끝났을 때에 “신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3개의 예언서들이 수집되었다.  세 예언서 중에 그 어느 것도 예언서와 관련된 예언자의 어떤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 예언서들의 수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성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12라는 숫자가 부각되었고, 세 예언서중 둘이 예언서 시리즈 중에서 열한번째의 책인 즈가리야 1-8장 다음에 연결되어서 즈가리야 9-11장과 12-14장이 되었고, 남은 한 예언서는 말라기로 별도의 예언서가 된 것이다.28)


말라기 예언자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는데 있어서 독특한 대화의 기술을 사용한다.  즉, 주님 혹은 예언자의 주장이 있고, 다음에는 청중의 질문 혹은 불평, 그리고 나선 예언자의 응답(자주 거친 어조로)이 있다.  이 방법은 마음의 독자들을 더욱 가까이 수용하기 위해 사용되어졌고 그들은 좀더 개인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29)  이러한 방법은 질문하고 답하는 서기관들의 방법이지만 유대인들 가운데서 새로운 것이었으며, 그것은 토론식 교육 방법(didacticdialectie method)으로 알려져 있다.  즉, 그는 책망 또는 비난을 한다.  그리고 어떤 일어날 수 있는 반대 의견을 상상해 낸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의 본래 주장의 중요한 진리를 입증하면서 세부적으로 논박이라는 이 독특한 방법으로 나아간다.  (1) 증언, (2) 질문, (3) 논박이라는 순서로 나아가는 것이다.30)  이것을 도식화 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단     원      서       문     사람들의 질문      결      론


1. 1,2-5          1,2a              1,2b              1,2c-5


2. 1,6-2,9         1,6a, 7a          1,6b, 7b           1,7c-2,9


3. 2,10-16        2,10-13           2,14a              2,14b-16


4. 2,17-3,5       2,17a             2,17b              2,17c-3,5


5. 3,6-12         3,6-7b, 8a         3,7c, 8b           3,8c-12


6. 3,13-4,3        3,13a             3,13b             3,14-4,3


(참고: 6 단원의 3,13-4,3절은 70인역과 불가타역에 기준한 것이다.  공동번역은 3,13-21이다.부록에 해당되는 4,4-6절은 공동번역에선 3,22-24이다.)31)


그러나 일반적인 전통적 구분법은 말라기의 구조를 8부분으로 구분한다.  처음은 표제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결론이 담긴 부록으로 끝을 맺는다.32)


A.  1,1 : 표제


B.  1,2-3,21 : 신탁들


  a) 1,2-5 : 첫번째 신탁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돔과 에사오는 미워하신다는 신탁 서문.


  b) 1,6-2,9 : 두번째 신탁


             부패한 경배예식과 사람들에게 Torah와 율법 규정을 제대로 가르치


             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


  c) 2,10-16 : 세번째 신탁


             외국 이교인들의 딸들과 결혼하는 유다인들에 대한 비판과 자신들


             의 부인들에게 신실함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훈계하는 예언


             자, 신실함을 행한다면 그들을 하느님의 자손으로 삼을 것이라는


             예언자의 약속.


  d) 2,17-3,5 : 네번째 신탁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모욕했으므로 하느님은 심판하시러 곧 오실


              것이다.


  e) 3,6-12 : 다섯번째 신탁


            회개하라는 예언자의 간청과 십일조를 바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을


            그릇되이 시험하는 자들에 대한 예언자의 반대.


  f) 3,13-21 : 여섯번째 신탁(70인역과 불가타 3,13-4,3)


             하느님과 그분의 성실하심에 거슬려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


             인 훈계와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의인으로 기억되지만 악


             한 이는 멸망할 것이라는 약속.


C.  3,22-24 : 두개의 부록 (70인역과 불가타 4,4-6)


            심판의 날 전에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예언자의 간청과 엘리야


            가 강림하는 날 그분은 사랑과 쇄신을 이룩하실 것이라는 예언.




4.2 세부적 구조




말라기는 전체적으로는 세 구조로 볼 수 있다.  표제, 신탁들, 부록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탁들은 여섯개의 신탁으로 분리되며, 각 신탁들은 나름대로의 구성으로 보아 다시금 좀더 개별적인 구조로 분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말라기는 위에서 처럼 총 여덟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각 부분별로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


A. 표제 : 1,1


간단한 해설 – 이 표제의 형태는 하바꾹 1,1; 즈가리야 9,1; 12,1; 나훔 1,1; 이사야 13,1; 17,1; 19,1의 그것과 같다.  표제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신탁’, ‘취지’, ‘야훼의 말씀’이 따르는 서술; (2) 취지의 수취인-이스라엘; (3) 메세지를 전달하는 중개자-말라기 ‘…의 손에 의해’.  표제의 자리는 이 문장의 문학적 재료의 원천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다.  예언적인 책들의 표제들은 아마도 후대 편집자의 작업 결과일 것이다.  이 경우에 편집자는 12소예언자들의 재료들과 함께 취급하였다.33)


B. 신탁들 : 1,2-3,21


   신탁의 단원들은 신탁의 내용에 따라 총 6단원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각 단원들은 다시금 각 단원마다 예언자의 동기부여에 따라 일반적인 훈계를 내포하고 있는 간결한 결론을 지니고 있으므로, 각 단원은 더 상세하게 세분화하여 구분할 수 있다.




   I. 단원 1 : 1,2-534)


     1. 서문 진술 (증언; 2a)


     2. 사람들의 진술 (2b)


     3. 결론 진술(2c-5)


       1) 증언 설명 (2c-3)


       2) 전개 (예언; 4-5)


   간단한 해설 – 이 단원의 형태는 ‘예언적인 논쟁’이다.  OT에는 수많은 예언적인 논쟁들이 있다.  그들중 어떤 것은 다른 예언자들과 논쟁한 것이고(미가 2,6-11; 예레 28,1-17 참조.), 어떤 것은 일반 사람들과 논쟁한 것이다(이사 40,27-28; 에제 12,21-28).  형식은 질문과 대답 혹은 ‘문답식’의 형식이라고 흔히들 부른다.  어떤이는 그리이스의 철학적 방법이후로 ‘소크라테스식’이라 부른다.  이 구절의 구조는 단순하다.  예언자는 먼저 진리를 진술한다.  그때 그의 논쟁자들은(이 구절에서는 일반인) 질문을 함으로써 그들의 이의를 진술한다.  결국 예언자는 그의 전제를 다시 말하고 구체적인 증거로서 그것을 지지한다.  어떤 작가들은 이 문장은 글자그대로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Joyce Baldwin은 “극단적으로는 그의(말라기) 말들이 사실상 그의 대립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언명되어 있는것 같지 않다 …… 말라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읽었고 직관적으로 말들 안에 그들의 생각들을 집어넣어, 그의 말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납득하기 전의 태도를 얻어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의 정확한 자리를 결정할 방도는 없다.  ‘온 이스라엘’이라는 의식 안에서 일반인들은 연설을 들었다.  계약 갱신이나 새해 축제가 이 단원의 적당한 자리일 것이다.35)




   II. 단원 2 : 1,6-2,936)


     1. 서문 진술 (유비와 증언; 1,6a)


     2. 재진술된 사람들의 질문 (1,6b)


     3. 재진술된 증언 (1,7a)


     4. 재진술된 질문 (1,7b)


     5. 결론 진술 (1,7c-2,9)


       1) 증언 설명 (1,7c-14)


       2) 경고 (2,1-9)


   간단한 해설 – 이 구절은 말라기에서 가장 긴 부분이다.  책의 총 55절중 23절이 여기에 포함된다.  사제들과의 논쟁을 다루며, 1,14만이 일반인에게 주의를 돌리고 있다.  구절은 고대 근동에서 보편적으로 진리로 알려져 있던 전제의 진술과 더불어 시작한다.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경외하고(행동이 반복됨은 불완전함을 암시한다) 종은 그의 주인을 받든다.”  ‘그의’라는 말은 책에서는 아버지 앞에 있지 않기에, 진술은 어떤 아들이 어떤 아버지를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암시로서 야훼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고 주님이시고, 사람들은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 들어있다(1,6b).  이런 문책은 온종일(현재) 하느님의 이름을 경멸하고 있는 이로써 언급되어 있는 사제들에게 직접적으로 연설되었다.  그러나 사제들은 그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요구한다(1,6b).  그같은 분명한 증거들은 7-8절에서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부정탄 음식과 병든 짐승을 제물로 봉헌함으로서 하느님의 제단을 모독하였다는 고소를 받는다.  실제로 신명 15,21; 레위 22,20-25는 이를 직접적으로 금하고 있다.  예언자는 페르시아의 지배자도 그같은 동물들을 선물이나 세금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넌지시 언급한다(1,8).  9절은 풍자적인 대목이다.  예언자는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도록”하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우연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다.  그분은 그같은 선물이나 그같은 선물들을 봉헌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0절은 광대극 혹은 가짜와도 같은 경배의식을 금지시키기 위해 성전의 문을 닫아걸라고 요구한다.  11절은 수많은 이방인들의 경배의식이 예루살렘 사제들의 경배의식 보다 더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암시한다.  12절과 13절은 사제들에 대한 문책을 반복하고 사제들이 자신들의 일을 권태롭고 폐단으로 가득차게 하고 있음을 더한다. 


구절중 심판의 국면은 사기꾼인 일반인을 저주하고 있는 14절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절은 책에 후대에서야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구절만이 일반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의 권위는 위대한 왕이신 야훼로부터 온다.  “위대한 왕”이란 문구는 오래된 히타이트식의 접견장소에서 히타이트의 황제에게 언급되는 칭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구절의 두번째 부분은 사제들 위에 임하는 심판을 포고하고 있다(2,1-9).  그들이 경고의 말(1,6-14)들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2,2).  그들 각자는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고(2,3) 직무에서 쫓겨날 것이다(2,3).


레위 가문의 초기 사제들과 글 중에 현존하는 사제단의 행위와 특성은 어떻게 비교되는가?  하느님은 레위와 계약을 맺으셨고 그들은 초기 사제로 야훼와 사람들의 뜻에 봉사하였다(2,4-7).  그러나 글 중에 현존하는 사제단은 배교하였고(2,9) 하느님과 사람들의 눈에 직위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었다(2,9).


형태는 예언적인 논쟁이나 논쟁자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1,6, 7절에서 질문들을 하고 1,13에서 “폐단이 무엇이냐”고 말한다.  다른 재료들에서 야훼와 예언자는 모두 경고들을 내세우면서 과거의 축복들과 실패들을 재검토하고, 사제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포고하고 있다.  이 단원의 자리는 성전 재건 기념 축제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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