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들어가는말

 

1.   들어가는 말




가톨릭 교회의 7성사 중에서 세례와 성체성사는 ‘대(大)성사’(sacramenti majores)라고 일컬을 만큼 중요한 성사이다. 특히 성체성사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례 그 자체로써 받아들일만큼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찬례가 교회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頂點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서, 흡사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또한 여기에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전례 10). 이렇게 교회 활동의 정점을 이루는 성찬례는 교회가 가장 명확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곳으로서 신자들이 교회를 공동체로 체험할 수 있는 場이다. 실제로 신자들의 신앙의식, 공동체 의식 형성에 미사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를 ‘교회의 성사’(sacramentum ecclesiae)라고도 부르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성체성사에 대해 전례적인 관심과 신학적인 연구가 집중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성사만큼 논쟁의 대상이 된 성사도 없어서, ‘일치의 성사’(sacramentum unitatis)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이다. 현재 그리스도교의 각 종파 간에는 일치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이와 함께 상호성찬식(相互聖餐式, interkommunion)의 허용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법, 교도권, 신학적인 견해 차이로 아직 상호성찬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성찬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전례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전례 개혁은 공의회 이전에 선행된 전례운동과 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사제는 더 이상 신자들을 등지고서가 아니라 신자들을 마주보며 미사를 집전하고, 미사의 용어도 라틴말에서 각기의 모국어로 바뀌게 되었다. 전례 형식과 용어의 변화 배경에는 신학적인 변화가 있었다. 즉 교회를 성직자 중심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해한 것, 말씀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잔치, 식사공동체로써의 미사성격의 재발견 등이 전례 개혁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전례 개혁에 대해서 일부 극보수주의자들은 끈질기게 반대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르페브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교회의 세속화로, 그에 의한 개혁을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공의회 이전의 전례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전례개혁이 자의적으로, 시류를 따라서 이루어진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이 개혁은 원천으로의 회귀, 즉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연구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오히려 르페브르 일파들이 주장하는 전례야말로 어느 한 시대의 전례, 즉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전례를 고정화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성체성사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그 성사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면 신자들은 과연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을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표현한대로 성체성사는 “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곳이라고 체험하고 있을까? 그저 주일미사 참예의 의무 규정 때문에 별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성체성사에 참여하지는 않는가? 성체성사가 진정 중요한 성사임을 체험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이 성사가 어디에 기원을 둔 어떤 성사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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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들어가는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   들어가는 말


    가톨릭 교회의 7성사 중에서 세례와 성체성사는 ‘대(大)성사’(sacramenti majores)라고 일컬을 만큼 중요한 성사이다. 특히 성체성사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례 그 자체로써 받아들일만큼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찬례가 교회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頂點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서, 흡사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또한 여기에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전례 10). 이렇게 교회 활동의 정점을 이루는 성찬례는 교회가 가장 명확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곳으로서 신자들이 교회를 공동체로 체험할 수 있는 場이다. 실제로 신자들의 신앙의식, 공동체 의식 형성에 미사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를 ‘교회의 성사’(sacramentum ecclesiae)라고도 부르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성체성사에 대해 전례적인 관심과 신학적인 연구가 집중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성사만큼 논쟁의 대상이 된 성사도 없어서, ‘일치의 성사’(sacramentum unitatis)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이다. 현재 그리스도교의 각 종파 간에는 일치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이와 함께 상호성찬식(相互聖餐式, interkommunion)의 허용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법, 교도권, 신학적인 견해 차이로 아직 상호성찬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성찬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전례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전례 개혁은 공의회 이전에 선행된 전례운동과 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사제는 더 이상 신자들을 등지고서가 아니라 신자들을 마주보며 미사를 집전하고, 미사의 용어도 라틴말에서 각기의 모국어로 바뀌게 되었다. 전례 형식과 용어의 변화 배경에는 신학적인 변화가 있었다. 즉 교회를 성직자 중심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해한 것, 말씀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잔치, 식사공동체로써의 미사성격의 재발견 등이 전례 개혁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전례 개혁에 대해서 일부 극보수주의자들은 끈질기게 반대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르페브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교회의 세속화로, 그에 의한 개혁을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공의회 이전의 전례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전례개혁이 자의적으로, 시류를 따라서 이루어진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이 개혁은 원천으로의 회귀, 즉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연구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오히려 르페브르 일파들이 주장하는 전례야말로 어느 한 시대의 전례, 즉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전례를 고정화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성체성사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그 성사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면 신자들은 과연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을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표현한대로 성체성사는 “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곳이라고 체험하고 있을까? 그저 주일미사 참예의 의무 규정 때문에 별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성체성사에 참여하지는 않는가? 성체성사가 진정 중요한 성사임을 체험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이 성사가 어디에 기원을 둔 어떤 성사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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