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말씀연구>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1독서의 사도행전에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낼 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켜 놓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 시킨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들의 말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장 큰 은사는 바로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힘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나는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또한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19.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이쿠! 깜짝이야. 예수님 인사 받다가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유…예수님의 특별한 능력: 사람을 놀라게 하신다….퍽퍽 (엉뚱한 소리 했다고 돌 날라오는 소리)>


굳게 닫혀진 문을 통과하는 영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물질적인 측면도 가지고 계신 예수님. 우리가 생각하는 시공간을 넘어서 버린 그분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하신 말씀은 “평화”였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시더니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 고통을 통해 성취한 평화이며, 고통과 죽음을 통해 그가 처음으로 성취해낸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이며, 예수님께서 극도로 고조된 갈등에 연루되어 이루어진 평화입니다. 이 극도로 고조된 갈등을 성서는 죄라고 부릅니다.


결국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승리는 본질적으로 모든 갈등을 이겨내는 궁극적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 성취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멍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지상의 역사와 고통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닙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은 세상의 고통과는 무관한 환상적 찬양이 아닙니다. 이 신앙은 불가해하고 무의미한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고통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부활을 맞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21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파견이 부활의 실재속에서 평화와 화해를 기초로 삼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평화의 인사를 다시 하십니다. 그리고 파견하시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가져온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교회전체를 대표해서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권위와 힘을 부여받게 됩니다.




22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사절은 그 사람과 같습니다. 사절은 파견자를 대리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이런 관계로부터 권한이 부여되고 동시에 파견자의 명예가 사절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최고의 사절이며 계시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맡기는 것은 제자 공동체가 그 사명을 떠맡고 예수님의 권위까지 부여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의 길, 화해의 자세, 그리고 세족례 행위와 수난사화에서 명백하게 표현하듯이 힘과 지배의 포기 등을 수락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대리할 수는 없습니다. 즉 파견을 교회직무에 수반되는 권력의 합법적인 수여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에게 성령을 전해 주십니다. “숨을 내쉰다”는 것은 창세기 2,7절을 상기시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성령을 주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종말론적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수여는 죄의 용서라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개념으로 묘사됩니다(23절).오늘날 죄의 용서는 비교적인 개념에 속하며, 많은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원래 이 개념은 삶의 완전한 정화, 새로운 출발, 그리고 과거가 말씀히 정산되어 더 이상 어떤 보상도 필요하지 않는 새로운 기점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떤 마술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성취했으며, 제자들의 모든 활동, 증언, 삶이 기초를 삼았던 바로 화해를 제자 공동체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용서받는 또는 용서받지 못하는”이라는 표현은 “매고, 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일반적인 하느님의 사면이며, 화해와 생명을 위한 보편적 봉헌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교회가 제멋대로 회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 전체에 약속된 것이므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 권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는 부활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참된 화해와 평화를 주셨으며, 이 평화는 온 세상에 삶이 새로운 기점으로 선포되고 제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자 공동체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러한 은총의 보편성은, 교계제도의 힘이 바로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면죄부를 판매하듯 영적인 무역행위가 성행하게 되면, 더 이상 보편적인 의미를 보존하지 못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나는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까?




2. 성령의 은사 중에서 내가 성령께 청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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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아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성령을 받아라.”

    예수, 내 주님!
    피정 중에 당신 제대 앞에 꾸며진 꽃을 보았지요.
    항아리에 담긴 예쁜 마가렛 꽃이었어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처음엔 꽃을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꽃보다 줄기가 눈에 들었어요.
    예수님, 꽃을 받치고 있던 줄기 말예요.
    어느 것은 곧게 쭉 뻗었는가하면
    어느 것은 일부러 만든 것처럼 굽은 것도 있었죠.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예수, 내 주님!
    어젠 어머니의 밤을 했어요.
    봉헌한 초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내는 것을 보았지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똑같은 초에 불을 붙여 봉헌하였는데도
    빛을 내는 불의 크기도 다르고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도 달랐어요.
    빛을 낼수록, 흘러내릴 수록 모양도 달라졌지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예수, 내 주님!
    곧은 줄기, 굽은 줄기의 꽃도..
    흔들리는 촛불, 달라진 모양의 초도..
    모두 다 괜찮아요.
    모두 다 좋아요.
    모두 다 있는 그대로 기쁨이예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당신 앞이니까요..
    당신께 봉헌된 것이니까요..

    예수, 내 주님!
    저희 이 많은 영혼들,
    꽃보다 촛불보다 더 제각각인 이 영혼들
    당신 주신 성령으로 당신께 봉헌되오면
    모두 다 괜찮아요.
    모두 다 좋아요.
    모두 다 있는 그대로 기쁨이예요.

    당신 앞이니까요..
    그렇죠?

    예수, 내 주님!
    저는 오늘 당신께 성령을 선물받습니다.
    제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예요.
    당신 제게 주신 성령의 은혜, ‘통달’의 은혜.

    성령께서 오시어
    제 낡은 것을 새롭게 하시고
    닫힌 것을 열어주시어
    더욱 주님 알아 듣도록 일하시리라 믿어요.
    그리하여 저를 또다시 당신께 봉헌합니다..

    고맙습니다, 끝없으신 주님의 사랑.

    아멘.

  2. user#0 님의 말:

    “성령을 받아라.”

    예수, 내 주님!
    피정 중에 당신 제대 앞에 꾸며진 꽃을 보았지요.
    항아리에 담긴 예쁜 마가렛 꽃이었어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처음엔 꽃을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꽃보다 줄기가 눈에 들었어요.
    예수님, 꽃을 받치고 있던 줄기 말예요.
    어느 것은 곧게 쭉 뻗었는가하면
    어느 것은 일부러 만든 것처럼 굽은 것도 있었죠.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예수, 내 주님!
    어젠 어머니의 밤을 했어요.
    봉헌한 초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내는 것을 보았지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똑같은 초에 불을 붙여 봉헌하였는데도
    빛을 내는 불의 크기도 다르고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도 달랐어요.
    빛을 낼수록, 흘러내릴 수록 모양도 달라졌지요.
    당신도 보셔서 아시지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예수, 내 주님!
    곧은 줄기, 굽은 줄기의 꽃도..
    흔들리는 촛불, 달라진 모양의 초도..
    모두 다 괜찮아요.
    모두 다 좋아요.
    모두 다 있는 그대로 기쁨이예요.

    당신 앞이었잖아요..
    당신 앞이니까요..
    당신께 봉헌된 것이니까요..

    예수, 내 주님!
    저희 이 많은 영혼들,
    꽃보다 촛불보다 더 제각각인 이 영혼들
    당신 주신 성령으로 당신께 봉헌되오면
    모두 다 괜찮아요.
    모두 다 좋아요.
    모두 다 있는 그대로 기쁨이예요.

    당신 앞이니까요..
    그렇죠?

    예수, 내 주님!
    저는 오늘 당신께 성령을 선물받습니다.
    제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예요.
    당신 제게 주신 성령의 은혜, ‘통달’의 은혜.

    성령께서 오시어
    제 낡은 것을 새롭게 하시고
    닫힌 것을 열어주시어
    더욱 주님 알아 듣도록 일하시리라 믿어요.
    그리하여 저를 또다시 당신께 봉헌합니다..

    고맙습니다, 끝없으신 주님의 사랑.

    아멘.

  3.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미사가 끝나고 성령의 메세지가 담긴 불꽃 카드를 한 장씩 받았습니다.

    저에게 전해진 메세지는 ” 두려움 ” 과 ” 진실 ” 이 두가지 였답니다.

    언제나 제 안에 임해주시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

    이기도 했던 성령께서 저에게 전해주신 메세지 역시 두려움이라니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두려워 하되,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느껴졌으며

    굉장하든 잔잔하든 일단 맞이한 성령은 진실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

    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네요.

    오늘 재대 앞에 꾸며진 꽃꽂이 역시 성령이 오시는 모습인 듯 빨간 혀의

    모습으로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듯 강렬하였으며 그 아래로는 하얀 비둘기

    한쌍이 평화로이 노닐고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더 눈길이 머물러 있을 정도로 제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재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지요.

    오늘 2독서에서 전해지는 메세지처럼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여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전해진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과연 주님께서는 저에게

    어떤 성령을 주시어 활동하시게 하셨는지 찬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 곁에 이미 와 계신 성령의 은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더 큰 성령을 또

    다른 성령을 기다리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를일이기에…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네, 주님! 이렇게 대령하고 있나이다. 미천한 저에게도 거하소서.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맞이하여 제 마음안에도 성령의 은총이 풍부하게

    내려주시길 조용히 기도드리며, 성령이 임하시도록 제 마음을 비우도록

    도우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미사가 끝나고 성령의 메세지가 담긴 불꽃 카드를 한 장씩 받았습니다.

    저에게 전해진 메세지는 ” 두려움 ” 과 ” 진실 ” 이 두가지 였답니다.

    언제나 제 안에 임해주시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

    이기도 했던 성령께서 저에게 전해주신 메세지 역시 두려움이라니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두려워 하되,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느껴졌으며

    굉장하든 잔잔하든 일단 맞이한 성령은 진실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

    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네요.

    오늘 재대 앞에 꾸며진 꽃꽂이 역시 성령이 오시는 모습인 듯 빨간 혀의

    모습으로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듯 강렬하였으며 그 아래로는 하얀 비둘기

    한쌍이 평화로이 노닐고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더 눈길이 머물러 있을 정도로 제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재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지요.

    오늘 2독서에서 전해지는 메세지처럼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여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전해진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과연 주님께서는 저에게

    어떤 성령을 주시어 활동하시게 하셨는지 찬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 곁에 이미 와 계신 성령의 은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더 큰 성령을 또

    다른 성령을 기다리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를일이기에…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네, 주님! 이렇게 대령하고 있나이다. 미천한 저에게도 거하소서.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맞이하여 제 마음안에도 성령의 은총이 풍부하게

    내려주시길 조용히 기도드리며, 성령이 임하시도록 제 마음을 비우도록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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