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거처 안에서


    그분의 거처 안에서 오늘날에는 믿는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시대의 명백한 표징입니다. 문화의 타락이 믿음을 황폐화시켰고 문명의 전이가 그 믿음에 고통을 가했습니다. 하느님을 더 쉽게 부정적 측면에서 인식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느님이 속삭이실 때는 그분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그분이 침묵하시게 되면 한기를 느낍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게 된 것은 교회가 놀라움에 사로잡혔고 자주 공포심에 떨었으며, 어린이다운 신뢰심으로 하느님의 '새로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지난날을 돌아봄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난 같은 '묵시록'의 때에는 요한의 책이 기도하기 좋은 책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묵시 21,6) 그리고 외로움에 두려워 떠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묵시 21,3) 또고통을 당하여 떠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은 씻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4-15) 그러나 진정 묵시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밝혀 주는 가장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시는 하느님, 돌아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공동체는 에페소에서 "마라나타!" 곧 "오소서, 주 예수님, 오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묵시 22,17-20 참조)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Maranatha! Alleluia! 마라나타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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