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죄를 지으면

 

<형제가 죄를 지으면>


14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이 말씀 안에는 공동체 안에서의 죄가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것은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연결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형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고맙다고 하기 보다는 “그래! 네놈은 어디 잘하나 보자!”라고 마음 품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가 돌아서면 형제를 하나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니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15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라’ 는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16  그래도 그들의 말의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그런데 잘못을 범한 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합니다. 구약의 규율에 따르면, 증언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의하여 확인될 때에야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어떤 나쁜 짓이든 어떤 잘못이든,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증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두세 사라의 증언이 있어야 고소할 수 있다”(신명19,15). 여기서는 충고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최후의 비상 수단을 연기시키기 위해서 법적인 절차라는 요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라이나 세 사람이 함께 사실을 증언하고 잘못을 범한 형제가 회개하도록 촉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좀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죄인으로 단정하는 것, 그리고 여럿이서 한 사람을 몰아 세우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욥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친구 셋이 찾아와서 욥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욥은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형제에게 다가갈 때 그도 마음을 돌려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몰아세우면 그른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끔은 정말 “저 사람이 신앙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다가가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회개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할 마음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온다면 예수님은 맨발로 뛰어나가 그들을 맞아들이십니다. 즉 기다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교회 밖으로 떠났다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회개를 위하여 인내와 친절을 가져야 합니다.




17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사도들은 베드로사도와 똑같이 특권(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16,19)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의 차이는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후계자를 갖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를 이어받는 교황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그 특권이 이어집니다.


교회는 맬 수 있을 뿐 아니라 풀 수도, 즉 파문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죄인을 파문한다는 것은 구태여 최종적인 판결로 볼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고 다시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가혹한 징계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형제가 구언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회개하기를 바라는 열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개인의 개인적인잘못과 전체 공동체의 생활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공식적인 교회에 관계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책임의 구분이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권고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개인에게 형제적인 충고의 책임이 맡겨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도록 불려져야 하며, 최종적으로 최고 법정에 호소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비성사적인 활동과 성사적인 활동은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서로 관계를 맺고 질서지어지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이 보시기에 누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형제 자매들의 신앙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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