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활짝 갠 얼굴빛을 종에게 보이시고,
당신의 규정을 제게 가르치소서.
◎ 알렐루야.
복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강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는 하나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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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시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남의 잘못을 용서 해 줄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이해를 하면서도 남의 잘못을 용서하며
사랑을 할 수 있는지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마음으로는 남을 용서한다는 것이
더욱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로는 할수 있다고 할지 몰라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용서는
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비유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잘못한 형제자매를 용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하니
미워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말로는 쉬운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저 같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 실천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와 죽음만이 있다는데….
솔직히 저에게 상처를 주며 가슴 아프게 하는 형제자매를
용서 힐수 있는 사랑이 저에게는 없음을 제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진정 우러나는 용서를 한다는 것이
솔직히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8)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성서말씀이 떠오르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한다면 남을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실천하지도 못하며 복음을
묵상한다고 떠벌리고 있으니 참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오늘복음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
성사를 보지 않았는데도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 할수 있는 시간을
갖게 고백성사를 본 느낌이 들어 그 어느때보다 오늘 복음말씀은 저에게
주신 보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시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남의 잘못을 용서 해 줄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이해를 하면서도 남의 잘못을 용서하며
사랑을 할 수 있는지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마음으로는 남을 용서한다는 것이
더욱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로는 할수 있다고 할지 몰라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용서는
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비유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잘못한 형제자매를 용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하니
미워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말로는 쉬운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저 같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 실천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와 죽음만이 있다는데….
솔직히 저에게 상처를 주며 가슴 아프게 하는 형제자매를
용서 힐수 있는 사랑이 저에게는 없음을 제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진정 우러나는 용서를 한다는 것이
솔직히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8)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성서말씀이 떠오르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한다면 남을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실천하지도 못하며 복음을
묵상한다고 떠벌리고 있으니 참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오늘복음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
성사를 보지 않았는데도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 할수 있는 시간을
갖게 고백성사를 본 느낌이 들어 그 어느때보다 오늘 복음말씀은 저에게
주신 보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오소서. 성령님!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어휴! 끝까지 확실하게 용서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조그마한 잘못 하나 제대로 용서하는 것도 어려운 속좁은 저에게
이 말씀이 참으로 힘겹게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그런데 뒤 이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배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하신 무자비한 종의 비유의 말씀으로 그만 저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죄를 짓지 않고 용서니 화해니 필요없는 어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면 모를까나 어차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험난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받은 은총의 빚더미에 묻혀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니 겁이 납니다.
그토록 무한한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었는지도 반성을 해봅니다.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받은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무자비한 종의 신세가 되지 않도록 당신께 받은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진정한 용서의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잦은 성찰과 반성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용서
오소서. 성령님!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어휴! 끝까지 확실하게 용서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조그마한 잘못 하나 제대로 용서하는 것도 어려운 속좁은 저에게
이 말씀이 참으로 힘겹게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그런데 뒤 이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배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하신 무자비한 종의 비유의 말씀으로 그만 저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죄를 짓지 않고 용서니 화해니 필요없는 어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면 모를까나 어차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험난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받은 은총의 빚더미에 묻혀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니 겁이 납니다.
그토록 무한한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었는지도 반성을 해봅니다.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받은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무자비한 종의 신세가 되지 않도록 당신께 받은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진정한 용서의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잦은 성찰과 반성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