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설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3/20)


    성주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가장 거룩하고 뜻 깊은 때입니다. 완전히 자신을 비워 낮추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써 부활의 드높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하느님께마저도 버림받은 듯이 보이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난 듯한 바로 그때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입당송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이 입성은 마치 왕의 임직식과도 같다. 예수님을 왕이라 할 때 그분께서는 솔로몬보다 훨씬 큰 참된 평화의 임금이시다. 그 평화는 적군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죽음을 예고한 분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평화이다. 예수님께서는 왕이나 군대의 지휘관들처럼 찬란한 군마가 아닌 서민들이 이용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다. 이 장면은 즈가리야가 전하는 평화의 임금의 나귀를 연상하게 한다(즈가 9,9).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주님의 인내를 본받아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교회는 이스라엘의 자녀들과 함께 오늘,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건너가시려고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리스도의 예언적 개선에 참여한다. 이 주일에 봉독되는 수난 사화는 초기부터 복음의 핵심을 이룬다.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어떤 것도 꾸미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죄 없는 종이신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음모를 밝혀 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 죽음과 성서의 기록이 꼭 들어맞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의 틀 안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의 희생 제사이지만 어린양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의 새로운 예식으로 이해된다. 복음사가들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쓰여졌다 할지라도 수난사의 공통된 특징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안에서 절정을 이루는 악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다. 이사야 예언자는 동족에게 박해를 받았지만, 그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하느님께 비폭력의 길을 배운다. 그는 자신의 방어를 하느님께 맡긴다. 왜냐하면 그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받으심으로써 사람의 마음이 증오로부터 깨끗하여지기를 바라신다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강생의 중심 주제를 펼친다. 사람이 되시고 자신을 낮추시어 영광에 이르신 하느님께 대한 찬가이다. 강생은 하느님께서 여행삼아 ‘ 지상 나들이’를 하신 것도 아니고, 인간을 경험하시려는 ‘사치’도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사랑받은 이 찬가의 메시지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찬가는 겸손한 삶을 나누시고 미천하고 가난하며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아담은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파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당신을 낮추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다(제2독서).
    제1독서
    <나는 욕설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7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나의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 사람마다 저를 보며 업신여기고, 머리를 끄덕대며 비쭉거리나이다. “주님께 의탁했으니, 구하시렷다. 그를 사랑하시니, 빼내 주시렷다.” ◎ ○ 숱한 개들이 저를 둘러싸고, 악한 무리 이 몸을 에워쌌나이다. 그들은 제 손과 발을 *사뭇 뚫었나이다. 제 뼈는 마디마디 셀 수 있게 되었나이다. ◎ ○ 저희끼리 제 겉옷을 나눠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 제비 뽑나이다. 주님, 멀리 계시지 마옵소서. 구원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시옵소서. ◎ ○ 저는 당신 이름을 겨레에게 전하고, 그 모임 한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오리니,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찬양하여라. 야곱의 후예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아, 모두 다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
    제2독서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높이 올리셨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립비서 말씀입니다. 2,6-11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수난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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