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빙자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위선자들을 질책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입술로만
공경할 뿐 마음은 떠나 있었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제 마음을 주님
법으로 기울게 하소서.
주님의 가르침으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3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를 드리며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잘 따라 주지를 않아 힘듭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마음까지의 여행을
가장 긴 여행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더 긴 여행은 가슴에서 손과
발에 이르는 여행이 아닐까요?
때로는 마음은 있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마음에서 손발까지 가닿는 여행을 떠나 봅시다.
언행일치, 우리에게 언제나 큰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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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5주간 화요일(2/7)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빙자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위선자들을 질책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입술로만 공경할 뿐 마음은 떠나 있었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제 마음을 주님 법으로 기울게 하소서. 주님의 가르침으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3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를 드리며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잘 따라 주지를 않아 힘듭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마음까지의 여행을 가장 긴 여행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더 긴 여행은 가슴에서 손과 발에 이르는 여행이 아닐까요? 때로는 마음은 있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마음에서 손발까지 가닿는 여행을 떠나 봅시다. 언행일치, 우리에게 언제나 큰 숙제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이 성사를 이루시며 저희 병을 낫게 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저희를 주님에게서 갈라놓는 악에서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저를 두고 하시는지………
양심이 찔렸습니다
맞아요 주님!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공경해야 한다고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지껄였지만 당신을 공경하기보다는 세속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었던 사람이 바로 저 헬레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빈수레가 요란하듯 저의 마음역시 요란했습니다
잘난 척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성서지식도 없으면서 …….
못난 것이 잘난 척만 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은사랑이시라며 성서말씀을 들먹이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저의 가식적인 행동에 당신께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죄만스럽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잘못을 뉘우치며 깨닫게 되었으니….
저의 이런 마음도한 당신께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에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계명을 지키기보다 세속 일에 마음을 빼앗긴 저의 마음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신앙생활또한 반성이되었습니다
당신의 계면이 첫째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고도 실천을 하지 못햇습니다
그이유는요?
저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당신의말씀보다는 눈 앞에 이익을 생각하다보니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의말씀을 무시할때가 많았음을……..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렷던 순수하고 욕심없었던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에전에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성당 문을 두드렸 그때의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오늘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묵상하며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저를 두고 하시는지………
양심이 찔렸습니다
맞아요 주님!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공경해야 한다고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지껄였지만 당신을 공경하기보다는 세속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었던 사람이 바로 저 헬레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빈수레가 요란하듯 저의 마음역시 요란했습니다
잘난 척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성서지식도 없으면서 …….
못난 것이 잘난 척만 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은사랑이시라며 성서말씀을 들먹이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저의 가식적인 행동에 당신께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죄만스럽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잘못을 뉘우치며 깨닫게 되었으니….
저의 이런 마음도한 당신께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에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계명을 지키기보다 세속 일에 마음을 빼앗긴 저의 마음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신앙생활또한 반성이되었습니다
당신의 계면이 첫째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고도 실천을 하지 못햇습니다
그이유는요?
저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당신의말씀보다는 눈 앞에 이익을 생각하다보니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의말씀을 무시할때가 많았음을……..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렷던 순수하고 욕심없었던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에전에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성당 문을 두드렸 그때의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오늘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묵상하며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아침에 눈이 너무 많이와서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며칠전에 뵙고 전화통화를 자주하지만 그래도 눈이 많이 오니 걱정이되었습니
다. 오히려 저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천주교인은 아니시지만 저를 성당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제가 신앙인이되게끔 도와주신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신앙적인 이야기를 얘기해도 그많은것을 이해해주시고 받아주
시고 계시고 전혀 꺼리낌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저의 친정어머님이십니다.
비신앙인친구들한테 못하는 이야기를 친정어머니한테는 해도 모든걸 다 이해
하시고 오히려 잘못된것을 지적해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전에는 어머니를 참많이 이해못했고, 불만도 많았습니다.
어머니를 지금도 100%헤아릴수는 없지만 그나마 신앙인으로서 변화해가는
저의 후원자이십니다.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시는 그런분이십니다.
오늘아침에 복음말씀을 읽으려고 어머니를 그나마 조금은 이해하게되고
불만도, 예전에 가졌던 마음이 아니라고 그래서 엄마가 좋다고 했나봅니다.
이제서야 몇 %를 헤아리고 있다고했나봅니다.
이런어머니를 올바로 공경하지못하고 제멋대로인 저를 용서하소서.
너무나 부족한 저를 그래도 감싸안아주심에 제가 용기를 갖나봅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계시기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아침에 눈이 너무 많이와서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며칠전에 뵙고 전화통화를 자주하지만 그래도 눈이 많이 오니 걱정이되었습니
다. 오히려 저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천주교인은 아니시지만 저를 성당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제가 신앙인이되게끔 도와주신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신앙적인 이야기를 얘기해도 그많은것을 이해해주시고 받아주
시고 계시고 전혀 꺼리낌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저의 친정어머님이십니다.
비신앙인친구들한테 못하는 이야기를 친정어머니한테는 해도 모든걸 다 이해
하시고 오히려 잘못된것을 지적해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전에는 어머니를 참많이 이해못했고, 불만도 많았습니다.
어머니를 지금도 100%헤아릴수는 없지만 그나마 신앙인으로서 변화해가는
저의 후원자이십니다.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시는 그런분이십니다.
오늘아침에 복음말씀을 읽으려고 어머니를 그나마 조금은 이해하게되고
불만도, 예전에 가졌던 마음이 아니라고 그래서 엄마가 좋다고 했나봅니다.
이제서야 몇 %를 헤아리고 있다고했나봅니다.
이런어머니를 올바로 공경하지못하고 제멋대로인 저를 용서하소서.
너무나 부족한 저를 그래도 감싸안아주심에 제가 용기를 갖나봅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계시기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내적인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적인 것이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것을 무시한 채 외적인 것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불고 있는 명품에 대한 소유욕은 결국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만이 자신의 수준이 올라간 다고 생각을 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 서라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짝퉁”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보여 지는 것보다는 보여지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것만을 존중하는 유대교 신심을 날카롭게 비판하십니다. 참다운 정결이란 무엇일까요? 마음과 정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기회는 이때다!”하면서 시비를 걸려고 합니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적어도 물 한 움큼으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유다인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관습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커다란 범죄, 위반이었습니다. 랍비 아키바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식사 전에 주는 한 줌의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모세까지 올라 갈 수 없고, 구약의 모세오경에도 없는 것이었지만 후에 율법의 해석으로서 또 실생활에 대한 율법의 응용으로서 율법학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리고 그들 학파에게 전해진 규칙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 15절에는 율법상의 깨끗함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손을 씻는 일에 대한 규정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며, 그들의 사생활을 규제하는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이 규정을 사제 아닌 일반 신자의 의무라고 규정한 것은 힛레루와 샹마이라는 두 유명한 랍비의 영향인 듯 합니다.
하지만 만지는 음식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모든 식사에 앞서서 손을 씻어 깨끗이 한다는 규정은 모든 유다인이 인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 대부분은 이 규정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규정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레위기가 말하는 성덕에 대한 이상을 일반인들에게 씌우려고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사제들에게만 명령된 행위를 모든 유다인에게 지키게 하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크게 반발하고 대립하였습니다.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더 엄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죄인이나 이방인의 상인과 접촉하게 됩니다. 따라서 몹시 크게 더러워질 위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큰 그릇에다 팔을 팔꿈치까지 담궈야 했는데, 팔레스틴과 같이 물이 귀한 지방에서는 이런 씻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씻음을 실천하기 위해 가령 4마일(6.4키로)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쓰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특별한 규정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나무 또는 쇠붙이 잔, 접시에 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질그릇은 부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들이 보기에 율법을 모르는 사람만이 행하는 행동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무지렁뱅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스승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의 교만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부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스승과 선생은 다릅니다. 선생은 작게 생각하면 배운 것을 전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하면 어렵습니다. 유명한 장군들은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입으로만 살아갔습니다.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신앙생활과 취미생활은 다릅니다. 신심행위와 놀이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 피정이나 연수나 수련회에 가서 놀이만을 하고 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이 모이면 신앙적인 것을 행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모여서 신앙적인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모임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이 구역모임, 반모임을 하는데 남 흉이나 보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자기 자랑만 한다면 모임을 갖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헛된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 교리를 알지 못하면 가톨릭 교리가 아닌 것을 가르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규정, 즉 정결례와 같은 규정들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잊어버리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림을 잊어버리고, 형식에만 얽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무딘 마음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고집하는 전통 중에서 부모공경을 무시하는 전통을 꼬집으십니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어느 공소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젠 본당으로 미사 나갈려구요. 공소예절은 안하겠습니다.” 예전에 자동차가 없던 시절,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공소에서 주일 참례하려고 본당으로 가려면 많은 시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모여서 공소예절을 하게 하고, 신부님께서 한달에 한번 정도 방문하셔서 공소 미사를 봉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예절을 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계명을 통해서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계명을 통해서 사람들을 억압하시고, 괴롭히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랑의 계명을 가르치면서 두려움과 벌을 강조하고, 지키지 않아도 될 것들을 지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끔 신자들이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았는데 그것이 죄가 되냐고 물어보십니다. 성무일도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기도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은 열심히 바치겠다고 맹세를 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신자들에게 하라고 가르치고, 신자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죄를 고백하니…, 물론 아침, 저녁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성무일도를 바치면 좋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결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지킬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더 잘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꼭 해야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우리 저기 올라가서 기념촬영해요!”
“난 차를 지키고 있으마!”
“누가 차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같이 올라가요. 조금만 걸어가면 되요”
“다리가 아파서 그러니 너희들이나 다녀오렴.”
그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그렇게 나이가 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조금만 걸으시면 같이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효도 하려고 아버지 모시고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보니 자신이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내 틀에 맞추는 것은 효도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틀에 들어가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요?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코르반의 서원은 누구에게도 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모에게 적대감정을 품은 자식, 혹은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에 빠진 자식들은 어버이가 자기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양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봉헌물(코르반)로서 바치고 다시는 그것에 손댈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완고한 마음, 냉혈, 불손한 마음이 하느님께 대한 신심의 가면을 쓸 수 있었습니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재산을 “코르반”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버이에게 이 재산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어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자연법을 거스르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서원을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만 알고 머리만 똑똑하게 키운 사람들은 그렇게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두 부모의 가르침(?) 덕택이겠지만 말입니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코르반 서원을 했다 해서 자기 재산 혹은 소득에서 무엇인가를 성전에 내놓을 의무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코르반은 표면으로 나타난 서원이어서 “거부의 서원”이며, 이 서원을 세운 사람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를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을 보면 당대에 이 서원이 많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복음 말씀 중에 와 닿는 구절은 어디이며, 왜 그 부분이 와 닿습니까?
2.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여도 마음은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3.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께 잘하는 것일까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내적인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적인 것이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것을 무시한 채 외적인 것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불고 있는 명품에 대한 소유욕은 결국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만이 자신의 수준이 올라간 다고 생각을 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 서라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짝퉁”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보여 지는 것보다는 보여지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것만을 존중하는 유대교 신심을 날카롭게 비판하십니다. 참다운 정결이란 무엇일까요? 마음과 정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기회는 이때다!”하면서 시비를 걸려고 합니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적어도 물 한 움큼으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유다인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관습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커다란 범죄, 위반이었습니다. 랍비 아키바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식사 전에 주는 한 줌의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모세까지 올라 갈 수 없고, 구약의 모세오경에도 없는 것이었지만 후에 율법의 해석으로서 또 실생활에 대한 율법의 응용으로서 율법학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리고 그들 학파에게 전해진 규칙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 15절에는 율법상의 깨끗함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손을 씻는 일에 대한 규정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며, 그들의 사생활을 규제하는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이 규정을 사제 아닌 일반 신자의 의무라고 규정한 것은 힛레루와 샹마이라는 두 유명한 랍비의 영향인 듯 합니다.
하지만 만지는 음식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모든 식사에 앞서서 손을 씻어 깨끗이 한다는 규정은 모든 유다인이 인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 대부분은 이 규정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규정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레위기가 말하는 성덕에 대한 이상을 일반인들에게 씌우려고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사제들에게만 명령된 행위를 모든 유다인에게 지키게 하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크게 반발하고 대립하였습니다.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더 엄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죄인이나 이방인의 상인과 접촉하게 됩니다. 따라서 몹시 크게 더러워질 위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큰 그릇에다 팔을 팔꿈치까지 담궈야 했는데, 팔레스틴과 같이 물이 귀한 지방에서는 이런 씻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씻음을 실천하기 위해 가령 4마일(6.4키로)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쓰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특별한 규정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나무 또는 쇠붙이 잔, 접시에 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질그릇은 부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들이 보기에 율법을 모르는 사람만이 행하는 행동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무지렁뱅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스승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의 교만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부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스승과 선생은 다릅니다. 선생은 작게 생각하면 배운 것을 전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하면 어렵습니다. 유명한 장군들은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입으로만 살아갔습니다.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신앙생활과 취미생활은 다릅니다. 신심행위와 놀이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 피정이나 연수나 수련회에 가서 놀이만을 하고 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이 모이면 신앙적인 것을 행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모여서 신앙적인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모임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이 구역모임, 반모임을 하는데 남 흉이나 보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자기 자랑만 한다면 모임을 갖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헛된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 교리를 알지 못하면 가톨릭 교리가 아닌 것을 가르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규정, 즉 정결례와 같은 규정들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잊어버리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림을 잊어버리고, 형식에만 얽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무딘 마음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고집하는 전통 중에서 부모공경을 무시하는 전통을 꼬집으십니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어느 공소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젠 본당으로 미사 나갈려구요. 공소예절은 안하겠습니다.” 예전에 자동차가 없던 시절,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공소에서 주일 참례하려고 본당으로 가려면 많은 시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모여서 공소예절을 하게 하고, 신부님께서 한달에 한번 정도 방문하셔서 공소 미사를 봉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예절을 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계명을 통해서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계명을 통해서 사람들을 억압하시고, 괴롭히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랑의 계명을 가르치면서 두려움과 벌을 강조하고, 지키지 않아도 될 것들을 지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끔 신자들이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았는데 그것이 죄가 되냐고 물어보십니다. 성무일도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기도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은 열심히 바치겠다고 맹세를 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신자들에게 하라고 가르치고, 신자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죄를 고백하니…, 물론 아침, 저녁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성무일도를 바치면 좋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결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지킬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더 잘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꼭 해야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우리 저기 올라가서 기념촬영해요!”
“난 차를 지키고 있으마!”
“누가 차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같이 올라가요. 조금만 걸어가면 되요”
“다리가 아파서 그러니 너희들이나 다녀오렴.”
그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그렇게 나이가 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조금만 걸으시면 같이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효도 하려고 아버지 모시고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보니 자신이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내 틀에 맞추는 것은 효도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틀에 들어가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요?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코르반의 서원은 누구에게도 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모에게 적대감정을 품은 자식, 혹은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에 빠진 자식들은 어버이가 자기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양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봉헌물(코르반)로서 바치고 다시는 그것에 손댈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완고한 마음, 냉혈, 불손한 마음이 하느님께 대한 신심의 가면을 쓸 수 있었습니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재산을 “코르반”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버이에게 이 재산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어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자연법을 거스르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서원을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만 알고 머리만 똑똑하게 키운 사람들은 그렇게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두 부모의 가르침(?) 덕택이겠지만 말입니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코르반 서원을 했다 해서 자기 재산 혹은 소득에서 무엇인가를 성전에 내놓을 의무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코르반은 표면으로 나타난 서원이어서 “거부의 서원”이며, 이 서원을 세운 사람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를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을 보면 당대에 이 서원이 많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복음 말씀 중에 와 닿는 구절은 어디이며, 왜 그 부분이 와 닿습니까?
2.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여도 마음은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3.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께 잘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