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빛과 소금이니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

 

너희는 빛과 소금이니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


– 2월 23일(목)-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해 준 만큼 나 또한 받을 것이고,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기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손이 나가질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가 나의 하느님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겨우 물 한 잔이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티나에서는, 특히 쨍쨍 내려 쪼이는 햇빛을 받으며 오랫동안 걸음을 걸은 후에는 그 물 한잔이 그렇게 고마운 선물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물을 통해서 그는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그것이 중요하게 쓰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이 나 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 물은 그렇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사막을 건너온 사람에게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물 한 잔 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잘 해 보려고 하다가 마음 상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때 상대방에게 필요한 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작은 양보와 너그러움, 그리고 다가감일 것입니다. 용서를 청함과 화해의 악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비신자와의 관계는 좋으면서도 신자와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비신자와는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신앙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신자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또한 물 한 잔 주기를 꺼리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순진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그냥 믿어줍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선배들이 하는 말들을 그냥 받아들여 줍니다. 왜냐하면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은 사람을 바른 길에서 방황하게 하고,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고,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이 아직 튼튼하지도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잘못 이끈다면 이 얼마나 큰 잘못이겠습니까?


물에 던져 죽이는 사형방법이 이스라엘에는 없었지만, 로마인은 이런 형벌을 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사형 방법과 함께 팔레스티나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물에 빠져 죽을 경우, 시체를 묻을 수가 없어서 몹시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자 맷돌을 달고 물속에 들어가면 죽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 때문에 냉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마음 상해서 등을 돌린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에서 멀어졌기에 화를 당할 것이고, 나는 그를 신앙에서 멀어지게 했기에 화를 당할 것이고…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죄를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굳은 결심을 해야 하고,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이성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본능이 욕망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이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손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내 손으로 상대방의 물건을 훔친다거나, 상대방의 몸에 상처를 준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기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죄 짓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쾌락으로 지옥을 얻기보다는 부분적인 불구의 몸으로라도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발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말씀도 있지만, 내 발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하고, 밟지 말아야 할 것을 밟게 하고, 차지 말아야 할 것을 차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를 가지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예의바른 사람일지라도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하게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라리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좋고, 다른 이들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하여 상대방을 죄짓게 해서는 안 됩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에 관심을 기울여 죄를 짓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안 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어 상대방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내가 좀 참고 인내하여 보여주지 않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눈을 빼 던져 버리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48 지옥1)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예수님! 무섭습니다. 그럼 손 없는 사람, 발 없는 사람, 눈 없는 사람 천지가 아닐까요? 저도 제 손과 발, 눈 하나도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입이 빠진 것 같습니다. 사실 가장 큰 죄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남을 속이고, 유혹하여 얼마나 많은 죄를 짓게 합니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디를 향할 것인가? 그곳이 영원한 생명, 즉 하느님 나라인가? 아니면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 지옥인가?


 구더기와 불은 악인들이 받을 벌의 상징입니다.  이 구더기와 불은 하느님의 판결에 따라 사람을 시체로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구더기가 내 몸을 갉아 먹는 것보다, 불이 내 몸을 태우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49 모두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구더기가 내 몸을 갉아 먹는 것보다, 불이 내 몸을 태우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하면서 밤을 지새웁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는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희생으로 바칠 모든 예물에 소금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제자들도 정화의 불을 통하여 곧 하느님이 보내는 괴로움으로 불소금에 절여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속에 있는 것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모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오롯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친구들안에서 우리는 나를 내어주고, 받아들여주고, 그가 예수님께로 갈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부주의한 말 한마디 던졌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적이 되려고 다가온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일을 하면서 마음 상하는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냉담 하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들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혹시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2. 나 때문에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 때문에 공동체가 활기를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만 가정이나 공동체가 서로 기쁨을 나누며 활기찬 생활을 할까요? 서로가 만나고 싶고, 서로가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될까요?








3.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필요한 이들에게 물 한 잔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내가 내어주어야 할 물 한 잔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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