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3,24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따먹고 쫄딱 망하다.

 

창세기 강좌 2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어 내신 것과,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내가 바로 세상의 주인임을, 나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배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조화라는 것과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어 내시는데…,




2.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창세기2,5-25)


 1) 아담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창세기2,7)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옹기를 만들 듯이 가장 고훈 흙을 빚어 사람의 몸을 만드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2,7).


아담은 약하고 깨지기 쉽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를 만드신 하느님께 의존하는 존재이다. 아담이라고 하는 인간의 이름은 그가 흙에서 난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1) 그리고 이렇게 빚어 만든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살아 있는 존재, 혹은 생명체가 된다.


사람(히브리말로는 “아담”)은 “땅”(“아다마”)에서 나왔다. 그래서 첫 인간의 이름이 아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숨은 인간의 육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2)




그런데 창세기 저자는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창세기를 쓴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곧 인간은 흙이라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며, 여기에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2) 흙과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시는 하느님(창세기 2,18-25)


 하느님께서는 흙을 빗어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시려고 하신다.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5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창조된 인간을 보시고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기 2,18) 라고 말씀하시며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


 갈빗대로 번역된 히브리어 “첼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하느님께서 어떤 의도로 만드셨는지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인들의 원시 사고, 곧 그들이 남자의 가장 고귀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가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가슴에는 히브리인들이 사고와 감정의 중심으로 생각하던 “마음”(렙)이 있다. 그렇다면 여자는 남자의 가장 고귀한 부분에서 생겨났다는 말이 된다.




여자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창세기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즉 창세기 저자의 의도는 하와가 어디서 생겨났느냐가 아니라 여자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지니게 되지만 여자와는 완전한 의미에서 동등성을 지닌다.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기2,23)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적합한 짝을 만들어 주셨다. 3)그 존재가 바로 동일한 본성을 지닌 여자(하와)요, 여자에게서만 행복을 느끼고 통교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이다.


 창세기 저자는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활 공동체와 서로 간에 통교를 나누는 일치의 공동체를 구분하며 그 차이점을 매우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담은 동물들과 더불어 이 세상에 살지만, 얼굴을 맞대고 통교하며 행복을 느끼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여자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된 아담은 하와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에덴 동산4)에 거처를 마련하신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만드셨으니,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위해주면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➀ 남자와 여자는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존재로 서로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3. 창세기 3,1-6,4절 : 손상된 조화 –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인간


원죄–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그 죄의 결과로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이 원죄를 사함 받게 된다.




 1) 3장 – 인간의 죄와 벌(죄의 발생 – 죄의 결과 – 죄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


        ➀최초의 범죄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기3,2-7)


 죄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짓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는 아담과 하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뱀은 인간을 유혹하여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먼저 뱀은 아담과 하와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간질 시킨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아담과 하와가 잘못 알게 만드는 것이다. 즉 뱀은 인간이 하느님의 마음을 잘못 알게 만들고, 인간은 그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 인간은 이 유혹 앞에서 곧 넘어져 버린다.




 뱀은 인간을 이렇게 유혹하였다. 먼저 하와에게 다가가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하고 물었다. 즉 뱀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시키려고 한다.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유혹은 그것을 붙잡고 나를 파멸의 길로 잡아끈다. 뱀이 그렇게 인간을 끌어 내린다.


하와는 뱀에게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전해준다.




 이제 뱀은 노골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한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왜곡시켜서 하와에게 알려준다. 즉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힘을 주지 않기 위해 그 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하셨고, 그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이 간교5)한 뱀의 유혹에 하와는 넘어간다. 인간은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선악과를 따 먹게 된다. 선과 악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인간이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얼마나 많은 악이 선으로 둔갑을 하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는 서로가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지만 자신들이 알몸임을 알게 되고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옷을 만든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부끄러운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부부가 서로에게 알몸을 보였다 하여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즉 부끄러운 것과 부끄럽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구분하려 하기에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알몸”과 “부끄러워함”이라는 낱말은 성서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나약성, 무보호, 패배 등을 나타낸다(아모2,16;미가1,8;시편6,11). 남자와 여자는 상호간의 나약성을 악용하는 일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을 주셨고, 인간은 하느님께 불순종과 교만을 드렸다.




        ➁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핑계를 대는 인간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이제 그들은 하느님을 피하게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리에 숨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시자 아담은 이렇게 답한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기3,11)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사랑이 있고, 대화가 있는 가정은 아이들이 부끄러움 없이 부모와 함께 목욕을 한다. 하지만 자신만을 알고, 뭔가 숨기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담이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닌 것을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기3,11-13)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라고 물으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즉시 벌을 내리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와 대화를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청하는 아담과 하와를 기대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 않는다. 아담은 그 책임을 먼저 하느님께 돌리고, 그 다음 하와에게 돌린다. 즉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라고 말함으로써 먼저 그 책임이 하느님께 있음을 돌리고, 그리고 자신은 죄가 없고 여자가 주기에 먹었을 뿐이라고 말한다(이런 남자랑 사는 여자들!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와도 핑계를 댄다. 하느님께서는 하와에게도 기회를 주신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하고 물으시자 하와는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하고 말씀드린다. 즉 이 말 안에도 자신의 책임은 별로 없고, 뱀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뱀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니 결국 하느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좀 더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쯤 낙원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느님께서 이렇게 재판을 수해하는 판관처럼 개입하셔서, 죄인들을 심문하시고 책임 소재를 밝히시는  모습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유혹한 세력의 힘에 자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을 내맡겨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부모가 아이들이 싸웠을 경우,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이유가 아이들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며, 그것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하느님의 이런 모습은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에게 탓을 돌리고, 자신은 빠져 버리는 모습 안에서,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내 모습 안에서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음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상대방을 사랑하기 전에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➂ 죄와 벌


 하느님께서는 신뢰와 믿음이 깨져 버린 에덴동산에서 처음으로 판결을 내리신다. 먼저 뱀에게 판결을 내리신다.


       14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기3,14-15)




그리고 하와에게는 이렇게 판결을 내리신다.


       16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창세기3,16)


아담에게는 이렇게 판결을 내리신다.


       17“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기3,17-19)




평온하던 낙원은 심판장으로 바뀌고, 평화롭던 관계는 원수의 관계, 고통의 관계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죄의 결과인 것이다. 죄를 짓게 되면 그 순간부터 평화는 깨지고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➃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하와


그런데 아담은 자신의 아내를 탓하거나 내치지 않는다. 비록 잘못을 저질러 이렇게 되었다 하나 그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하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라는 뜻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 비록 낙원에서 추방하나, 당신의 사랑스런, 당신의 모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죽지 않았다. 인간은 나뭇잎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보호하시려고 인간과 같은 생명체인 짐승들을 이용하신다. 그렇게 가죽 옷을 입혀서 내 보내시는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했다 해도, 부모는 부모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 보내시고,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신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 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창세기3,22)


번쩍이는 불칼은 고대 근동인들이 신의 무기로 생각했던 번개를 가리킨다. 이 번개 칼이 땅을 두 갈래로 내려치는 모습을 칼이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 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지만 인간이 절대적인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생명 나무 열매도 접근을 막으시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인간에게는 없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에서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태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이유는 “필요 없는 생명체는 없다”는 것과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가톨릭은 수정된 순간부터 한명의 인격으로 존중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배아로 시작하여 이런 모습으로 오늘까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시고 죽이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➀ 아담과 하와의 변명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혹시 가정에서나, 교회 안에서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가 아담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➁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끝까지 자비를 베푸십니다. 내가 하느님 이였다면 나는 아담과 하와를 어떻게 했을까요?








  ➂ 선악과와 생명나무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선과 악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생명은 어떤 것입니까?






 3) 마침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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