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어 음식을 나누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를 드리며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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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주님!
장마가 계속되어 오락가락 하는 비로 마음이 산란한 요즈음입니다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변하는 변덕스런 저의 마음같아……
더욱 저의 마음이 우울했던 것은….
몇 달 전부터 당분 간 교회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며 미사를 참례하지
남편 때문에 주일이면 달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이들에게처럼 얼르고 달래고 하느라 심신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면서도 올곧은 성격의 남편이 성당에 가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남편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다보니 그저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남편의 방황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저녁
동창모임을 갔다 온 남편이 권면을 하여 세례를 받게 한 친구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함께 집에 와서 고해성사를 보고 성당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친구 분은 우리본당이 아닌 타본당구역 분이라는 사실이
주일에 친구를 위해 타본당에 가서 함께 미사참례를 하겠다며 설득을 하는 것이엇습니다
그 친구 분의 말씀이 영세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례도 잘 모르고 기도문도 어려워 외우기
함들다는 말씀에 억지로 외우려하지말고 미사참례를 꾸준히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면서 친구 분을 설득하는 모습이 보기좋았습니다
그 친구 분의 말씀이 성당에 함께 다니는 저희부부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말씀이 꼭 저를 두고 하신 말씀같아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겉으로는 건강한 것같지만……..
가슴 속에는 온갖 아픔과 미움 불신 사랑이 없는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신 것같았습니다
주님!
사실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저의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슬프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마음이 변하고 변덕을 부리는 일은 없을텐데…….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서로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입으로는 이해를 한다고 하면서도….
조그만 오해에도 흔들리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당신께 대한 믿음과 모든 이들을 사랑할 마음이 없었음을
느낍니다
미사 때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한 약속은 어디에 갔는지…
당신께 대한 저의 마음이 이렇게 조석으로 변하는데 인간관계가 원만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사랑만하고 살기도 어려운데….
미워하고 오해하고 불신하고 …….
주님!
저 같이 이렇게 믿음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하는 생각마저 드는 오늘입니다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믿음의 소유자 헬레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변덕장이 헬레나
사랑과 믿음이 부족한 헬레나
이루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부족하고 나약한 헬레나를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주시겠지요?
저의 마음 저의 심성 저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당신이니까
당신께 대한 저의 믿음도…
당신께 대한 저의 사랑도….
당신께 약속한 저의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을 잘 지키지 않는 헬레나는 병자이지요?
당신께서 고쳐주셔야되는 헬레나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묵상하며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주님!
장마가 계속되어 오락가락 하는 비로 마음이 산란한 요즈음입니다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변하는 변덕스런 저의 마음같아……
더욱 저의 마음이 우울했던 것은….
몇 달 전부터 당분 간 교회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며 미사를 참례하지
남편 때문에 주일이면 달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이들에게처럼 얼르고 달래고 하느라 심신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면서도 올곧은 성격의 남편이 성당에 가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남편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다보니 그저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남편의 방황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저녁
동창모임을 갔다 온 남편이 권면을 하여 세례를 받게 한 친구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함께 집에 와서 고해성사를 보고 성당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친구 분은 우리본당이 아닌 타본당구역 분이라는 사실이
주일에 친구를 위해 타본당에 가서 함께 미사참례를 하겠다며 설득을 하는 것이엇습니다
그 친구 분의 말씀이 영세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례도 잘 모르고 기도문도 어려워 외우기
함들다는 말씀에 억지로 외우려하지말고 미사참례를 꾸준히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면서 친구 분을 설득하는 모습이 보기좋았습니다
그 친구 분의 말씀이 성당에 함께 다니는 저희부부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말씀이 꼭 저를 두고 하신 말씀같아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겉으로는 건강한 것같지만……..
가슴 속에는 온갖 아픔과 미움 불신 사랑이 없는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신 것같았습니다
주님!
사실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저의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슬프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마음이 변하고 변덕을 부리는 일은 없을텐데…….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서로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입으로는 이해를 한다고 하면서도….
조그만 오해에도 흔들리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당신께 대한 믿음과 모든 이들을 사랑할 마음이 없었음을
느낍니다
미사 때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한 약속은 어디에 갔는지…
당신께 대한 저의 마음이 이렇게 조석으로 변하는데 인간관계가 원만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사랑만하고 살기도 어려운데….
미워하고 오해하고 불신하고 …….
주님!
저 같이 이렇게 믿음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하는 생각마저 드는 오늘입니다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믿음의 소유자 헬레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변덕장이 헬레나
사랑과 믿음이 부족한 헬레나
이루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부족하고 나약한 헬레나를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주시겠지요?
저의 마음 저의 심성 저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당신이니까
당신께 대한 저의 믿음도…
당신께 대한 저의 사랑도….
당신께 약속한 저의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을 잘 지키지 않는 헬레나는 병자이지요?
당신께서 고쳐주셔야되는 헬레나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묵상하며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일까요?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나는 의인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던지는 돌에 많은 이들이 죄인으로 찍혀서 가슴 아파 할 것입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의인과 죄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아닙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로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단죄하던 세리를 부르십니다.
9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세리는 징세 청부인, 곧 세금 징수관을 말합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어느 구역의 세금을 사 들입니다. 곧 우선 얼마의 금액을 국고에 내고(이를테면 그 구역의 세금 징수 권한을 사는 것입니다), 세금을 거두어들입니다. 국고에 낸 금액보다 많은 세금을 거둔다면 물론 그들의 소득이 됩니다. 이 징세 청부인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면 지방의 대표자, 곧 세관장을 파견합니다. 자케오는 세관장으로 그 밑에 세금 징수세리, 통행세 징수세리, 시장세 징수세리 등 여러 분야의 세리들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리들은 아주 욕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였고, 가난한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에 뱀처럼 지겨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로마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세리란 죄인과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태오는 단순한 세리로 아마 가파르나움 시장의 하급 세리로 읍내로 들여오는 화물의 세금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마태오는 마르코와 루카가 말하는 “레위”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마르코와 루가는 마태오라고 쓰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예로니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사가들은 마태오에 대한 존경과 세심한 배려 때문에 마태오의 별명인 ‘레위’라고만 쓴 것 같다. 그러나 마태오 자신은 자기 일을 ‘세리 마태오’라고 뚜렷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어떠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즉 마태오도 요한이 사랑하는 제자라는 말로서 자기의 이름을 감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낮추어 자기 이름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나 조건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도 아무런 조건 없이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 들이듯이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쇠붙이가 자석에게 끌려가듯이 마태오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피조물의 주인께서는 자신이 바라시는 대로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으신 것입니다.
마태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마태오는 사도이며 동시에 복음사가입니다. 마태오란 히브리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또한 ‘위대한’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의 Magnus와 ‘하느님’이란 그리스어의 Theos의 합성어로 본다면 ‘하느님을 위한 위대한 자’가 될 것이며, 또는 ‘손’이란 라틴어의 manus와 그리스어의 Theos의 합성어로 본다면 ‘하느님의 손’이란 뜻이 됩니다. 이름은 레위일 것입니다. 출생은 갈릴레아 지방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그는 세리였습니다. 주의할 일은 마르코와 루가가 단순히 마태오라고 하여 토마스 앞에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마태오 자신은 세리라는 직책을 밝히고 토마스 다음에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기에 다른 사도들은 마태오를 세리라고 하지 않고 레위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마태오는 자신을 세리라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것이고, 자신을 토마스 사도 다음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마태오는 년간 유다와 에디오피아에서 전교활동을 했고, 이집트의 에깃부스왕의 왕자를 기적으로 치유하였습니다. 이로써 왕가 전체가 신자가 되고 왕의 딸 에피케네이아도 동정녀로 지내기로 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르따고라는 왕이 왕위에 올랐고 에피케네이아와 결혼을 하려고 하였지만 거절당하자 공주도 죽이고 마태오도 죽임(90년)을 당했습니다. 유해는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 모셔져 있습니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마태오는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모십니다. 마태오는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불러서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의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죄인으로 판명 받았던 그들이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께 항상 당하기만 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시비 걸 용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율법을 지키는 이들이 죄인들이나 부정한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죄인들은 유다인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재판할 때 증인으로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도박, 고리대금, 도둑질, 깡패, 그 밖에 일반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않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세리나 죄인들과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안 된다는 금령은 없었으나, 율법학자들은 그런 교제를 위험한 일이라 하여 금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이 금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사도10,28-29;11,2-3;갈라2,12)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제자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직접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의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분은 병자이며 죄인인 세리를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건강한 의인(?)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한방 먹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라 하여 멀리하는 그들이 어떻게 의인이라고 불리 울 수 있으며 어떻게 그들의 목자라고 불리 울 수 있겠습니까?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완고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하느님께서는 호세아(6,6)의 입을 통하여 당신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단 위의 제물을 바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에 사랑과 자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을 존경하는 예배의 중심입니다. 만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불행한 죄인을 불쌍히 여겼다면, 율법을 세밀히 지키는 것 이상으로 하느님께서 즐겁게 받아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람을 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보다도 더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죄인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자비입니다. 나는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의사이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까이 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리, 죄인, 창녀는 착한 사람임을 자칭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도 더욱 더 하느님 나라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의인입니까?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죄인입니까?
2.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지만 힘든 사람과 함께라면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말씀에 어쩌면 그렇게 당신은 저의 마음을 잘 아실까? 하는 생각에…..
제가 믿을 분은 역쉬 당신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주님!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요
특히 마음이 병든 사람은 의사 중에 의사인 당신이 필요합니다
요즈음…..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나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인격과 도덕은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이 …….
사랑으로 만난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노력하고 참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성격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만 끙끙…..
저의 그런 모습이 남들에게는 바보스럽게 보이는가 봅니다
저를 보고 그럽니다
바보 같다고 하고…..
어린아이 같다고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른다고 …..
자신의 의사도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멀쩡하게 생겼는데 그런다고….
주님!
잘못 된 것을 보고도 참고 묵인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이지요?
참는 자에 복이 온다는 속담을 믿으며 마음에 응어리가 진 것도
참고 있으니 저의 그런 모습이 바보 같은 가봅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대항할 능력도 자신도 없는데….
참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픕니다
속으로 미워하고 끙끙거리니 몸이 아프네요
남을 미워하면 자신은 몇 배 더 마음이 아프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모두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저의 마음이 착하지 못하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병이 깊으니 육신까지 아픕니다
저에게는 육신의 병을 고쳐주실 의사가 필요하기보다
마음의 병을 고쳐주실 당신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낍니다
당신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당신의 위로가 그립습니다
헬레나야 참는 자에 복이 오나니 꾹 참고 견디거라 하고
말씀해주셧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아멘
♬ Eres Tu / Mocedades
자매님의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시길 기도합니다^^ [07/06-14:20]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의인입니까?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죄인입니까?
마음의 흔적을 남기고자 “함께 생각해 봅시다”를 클릭하고 주어진 나눔의 글을 가만히 읽고 묵상하자니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말씀이 조금 어렵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인이라 하고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자……..그것은 죄인이라고 하시니.
저의 상황은 예수님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의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스스로 석연치 않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니….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세상적인 일에 감당하기 힘들다 싶게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적인 일을 나 몰라라 하고 영원한 생명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세상것에만 마음 두자니 주님께 소홀해 지려하고 주님께 모든걸 맞기고 매달려 있자니 세상일이
엉망이 되어가고 딱 중립을 지키며 두리뭉실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요?
주님이신 당신께 묻고 싶어집니다…자꾸만…
2.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지만 힘든 사람과 함께라면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둘 다 아닌 그저 혼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싫고 내가 관심 가지고 다가가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