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오늘 성모님은 굉장히 서글프신 날이 아닐까 합니다. 동정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낳으신 성모님! 그 아들을 노심초사 키웠는데…그리고 천사는 여인 중에 복된 여인이라고 했는데 오늘 아들의 입을 통해서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끝까지 듣지 않았다면 무지 서운하셨겠지만 어머니는 그 의미를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사촌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예수님을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고,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해 계셨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촌 형제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보기에 고향, 친척, 직업을 저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고, 뭔가에 씌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 보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 오셨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에 그런 오해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많이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위협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아들을 찾아 나서기가 어려우니 사촌들을 데리고(보디가드)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자신에게 밖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씀이 나옵니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아직까지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성모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성서학자는 없습니다. 이 형제가 성 요셉이 전에 결혼했던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사촌들입니다. 만일 성모님께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예수님의 형제가 한번도 “마리아의 자식”이라고 불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전혀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다른 형제가 있었다면 12살 때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을 때,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동행할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어렸다면 어떻게 마리아가 순례의 길을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구약성경에서도 사촌을 가리키기 위해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과 아람 말에서는 사촌을 지칭하는 적당한 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라는 말이 한층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은 의혹을 받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확실히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상세한 기록에 의해서도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네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마태13,55).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규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야고보와 요셉은 알패오와 그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고, 시몬과 유다는 구로파스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의 자매(요한 19,25)이고, 구로파스는 성 요셉의 형제(에제집뽀)이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의 사촌은 외가로 보나 친가로 보나 예수님의 사촌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알패오(마태10,3)를 아버지로 하고 요셉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리아(마태7,56)를 어머니로 하는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사가 요한에 의하면,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자매지간으로,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요한19,25)의 아내입니다.




예루살렘의 제2대 주교였던 시몬에 관하여 에제집뽀는, 그가 그리스도의 숙부 구로파스의 아들, 예수님의 사촌이었다고 합니다(에우제비오 교회사). 또 에우제비오는 에제집뽀로부터 구로파스가 성 요셉의 친형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알패오가 구로파스 또는 글레오파와 동일인물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셉, 시몬과 유다는 모두 한 아버지를 둔 형제가 됩니다.




그리고 복음사가 요한은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는 성모님의 언니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상당히 오랜 전통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양친인 요아킴과 안나와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마리아(성모님)만을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음사가 요한이 말하는 <자매>라는 말도 사촌자매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사촌 형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패오, 구로파스의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사촌자매였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들


① 쁘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 요셉의 형제인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가 첫 번째 결혼에서 시몬과 유다를 낳고, 재혼하여 알패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과부가 되었던 마리아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의자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재혼으로 인하여 야고보와 요셉이라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재혼설은 확실성이 없습니다.




②휴비는, 이렇게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입니다. 이 마리아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구로파스의 아내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알패오와 구로파스는 동일인물이며, 이름 한 가지는 아람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말, 같은 이름이지만 읽는 법이 달랐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알패오(구로파스)의 아내입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어머니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특별히 강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자렛에서와 마찬가지로 카파르나움에서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여기서 사촌, 혹은 일반적으로 친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가리켜 “바로 이 사람들이…내 형제들이다”고 하셨는데. 이 말의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해서도 형제라고 표현한 방법이 적당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을 부인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혈연이나 지연 등으로 하느님께로 가는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친척들이 예수님을 간섭하거나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걱정해 드려야 할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다하는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연스러운 인척관계처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영적으로 끊을 수 없는 연결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① 이 말씀은 우선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고 하셨고,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②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소년 시절에 성전에 남이 있고, 부모님이 찾아 왔을 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하신 말씀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무엇보다 앞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친척들이 찾아온 것을 기회로 당신에게는 육신의 친척 외에 보다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영적으로 맺어진 친척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영으로 맺어진 친척이란 사도들과 함께 지금 자기 곁에 앉아 주의를 기울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입니다.




③ 이 말씀은 나자렛에서 하신 말씀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5-27)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예수님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④ 또한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사촌 형제들이 오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이것을 기회로 당신 백성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과연 예수님의 가족인가? 내가 예수님의 형제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는 사람! 그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삶 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거스리지 않는 삶입니다.


②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듣고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요, 용서하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요,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③ 바로 성모님과 같이 살아가는 삶 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모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찾아가셨을까요?




2. 예수님의 형제 자매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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