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사순 제2주일(3/4)


    오늘의 전례
    사순 시기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며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외아드님에게 십자가의 고통을 겪게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바로 사랑의 구체적이며 궁극적인 표현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기까지 우리가 걸어야 할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사랑을 향한 고통이기에 참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이며, 따라서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부활의 영광을 미리 체험하지만, 그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인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빛나는 구름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도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8ㄴ-3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저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감사송
    <주님의 거룩한 변모>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 영광을 보여 주셨나이다. 또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를 바라지 않으시면서도 당신의 외아드님을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제물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지극한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 준 믿음에서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영광스러운 신비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진심으로 감사하오니, 저희가 이 세상에서도 천상 신비를 미리 맛보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오르시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부활 이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구름 속에서 예수님이 바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해 주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신분을 확인해 주십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이유는 제자들을 두렵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부활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얼마 뒤에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서 스승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들도 걸어야 할 운명에 놓일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약한 제자들은 그러한 십자가의 길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중도에 포기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때 당신께서 미리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이 기억할 수 있게 배려하심으로써, 제자들이 믿음과 희망으로 자신들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실로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신지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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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일(3/4)


      오늘의 전례
      사순 시기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며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외아드님에게 십자가의 고통을 겪게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바로 사랑의 구체적이며 궁극적인 표현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기까지 우리가 걸어야 할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사랑을 향한 고통이기에 참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이며, 따라서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부활의 영광을 미리 체험하지만, 그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인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빛나는 구름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도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8ㄴ-3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저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감사송
      <주님의 거룩한 변모>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 영광을 보여 주셨나이다. 또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를 바라지 않으시면서도 당신의 외아드님을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제물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지극한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 준 믿음에서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영광스러운 신비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진심으로 감사하오니, 저희가 이 세상에서도 천상 신비를 미리 맛보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오르시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부활 이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구름 속에서 예수님이 바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해 주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신분을 확인해 주십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이유는 제자들을 두렵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부활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얼마 뒤에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서 스승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들도 걸어야 할 운명에 놓일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약한 제자들은 그러한 십자가의 길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중도에 포기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때 당신께서 미리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이 기억할 수 있게 배려하심으로써, 제자들이 믿음과 희망으로 자신들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실로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신지 잘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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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ser#0 님의 말: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십여 전 꾸르실료교육을 받고 있을 때 아침미사를 하는데
    마침 그날이 “주님의 변모축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동안 하느님의 자녀로써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신앙인으로써 봉사의 정신이 무엇인지 등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쇠뇌교육(?)을 받아서인지 모르지만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어느 때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날복음말씀 중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신말씀을 읽어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말씀 하나하나 모두가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때 ….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새롭게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겠다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감동과 저의 다짐이
    변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저 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었습니다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적어도 꾸르실료 교육을 받기 전보다는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십 여년이 지난 지금…

    꾸르실료교육을 받으러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격려는커녕 관심도 갖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 맹세했던 그때의 저의 약속과 다짐을 실천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하느님께 한 약속과 다짐을 실천하지
    못 했다는 생각에 하느님을 우롱한 것 같아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십여 년 전 꾸르실료를 받을 때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한번
    맹세를 해 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하느님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굳게 믿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십여 년 전 꾸르실료교육을 받을 때 기뻤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순수했던 그 때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묵상하며

    사람의 마음이 생각이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 오늘입니다

     사실 오늘복음묵상은 제가  작년인가 변모축일때묵상한 글입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십여년 전 꾸르실료를 받을 때 기억이 났었는데

    그때나 지금 저의 생각이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이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담아 지난 묵상글이지만  올려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변해야 하는데…..

    저 자신의 마음이 생각이 올 사순시기에는 변했으면 아니!

    꼭 꼭 꼭!

    변해야한다고 변하리라고…..

    믿습니다!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아멘

     

  3. user#0 님의 말: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십여 전 꾸르실료교육을 받고 있을 때 아침미사를 하는데
    마침 그날이 “주님의 변모축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동안 하느님의 자녀로써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신앙인으로써 봉사의 정신이 무엇인지 등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쇠뇌교육(?)을 받아서인지 모르지만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어느 때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날복음말씀 중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신말씀을 읽어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말씀 하나하나 모두가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때 ….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새롭게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겠다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감동과 저의 다짐이
    변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저 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었습니다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적어도 꾸르실료 교육을 받기 전보다는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십 여년이 지난 지금…

    꾸르실료교육을 받으러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격려는커녕 관심도 갖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 맹세했던 그때의 저의 약속과 다짐을 실천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하느님께 한 약속과 다짐을 실천하지
    못 했다는 생각에 하느님을 우롱한 것 같아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십여 년 전 꾸르실료를 받을 때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한번
    맹세를 해 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하느님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굳게 믿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십여 년 전 꾸르실료교육을 받을 때 기뻤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순수했던 그 때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묵상하며

    사람의 마음이 생각이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 오늘입니다

     사실 오늘복음묵상은 제가  작년인가 변모축일때묵상한 글입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십여년 전 꾸르실료를 받을 때 기억이 났었는데

    그때나 지금 저의 생각이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이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담아 지난 묵상글이지만  올려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변해야 하는데…..

    저 자신의 마음이 생각이 올 사순시기에는 변했으면 아니!

    꼭 꼭 꼭!

    변해야한다고 변하리라고…..

    믿습니다!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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