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능력과 생명을 부여받은 자라고 계시하신다.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의 분노는 예수님께서 장차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실 것을 예시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의 힘으로 저희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선물을 받고 비오니, 저희를 구원하려고 마련하신 이 성사가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19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암 홀먼 헌트가 그린 ‘등불을 든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한밤중 정원에서 예수님께서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 속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손잡이를 그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 문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는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고 싶어 하시지만 인간의 마음은 안에서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는, 손잡이 없는 문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오늘 들은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당신을 맞아들여 함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려 찾아오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잔잔한 빛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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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능력과 생명을 부여받은 자라고 계시하신다.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의 분노는 예수님께서 장차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실 것을 예시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의 힘으로 저희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선물을 받고 비오니, 저희를 구원하려고 마련하신 이 성사가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19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암 홀먼 헌트가 그린 ‘등불을 든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한밤중 정원에서 예수님께서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 속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손잡이를 그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 문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는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고 싶어 하시지만 인간의 마음은 안에서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는, 손잡이 없는 문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오늘 들은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당신을 맞아들여 함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려 찾아오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잔잔한 빛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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