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는…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합니다.


<말씀묵상>


보물이란 단어를 들으니 “보물섬”이란 만화영화가 생각납니다. 보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그리고 근자에도 “보물선”이라는 어뚱한 것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좌우지간 수백년 동안 감춰져 있는 보물에 대한 전설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큰 것 하나만 발견하면 팔자를 고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러한 보물에 비유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자 숨겨 두고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보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치를 인정하고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아마도 그가 느끼기에 그 보물에 비추어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 자체를 가지고 논하면 결국 사기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남의 밭에서 보물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그 보물의 소유권을 그 밭 주인이 먼저 주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모르는 척 그 밭을 산다는 것도 양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그 보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하느님을 발견한 사람은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기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의 진리를 생활함으로써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써보기 전에는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컴퓨터를 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타자기를 쓰고 있었는데 도무지 컴퓨터를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 컴퓨터의 가치를 모르고 타자기를 사용했을까?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번에는 “값진 진주”에 비유하십니다.


“또한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과 비슷합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물러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습니다.”




여기서 “진주”라는 단어는 고귀한 가치만이 아니라 흠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 나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값진 진주를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물을 발견하고는 모든 것을 처분하여 그것을 샀습니다. 그의 행동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진주 하나에 모든 것을 바꿔 버리다니…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진주는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목자잃은 양들이, 고통속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던 니고데모도 바로 예수님께서 값진 진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런데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도,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도 그 가치를 모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의 가치보다는 다른 것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한다면 가지고 있는 것 마저 팔아서 그것을 선택합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매 순간 느껴지는 유혹안에서 예수님인가 아니면 저것인가… 이 싸움에서 언제나 예수님은 가치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들이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조금만 비운다면 보이겠지요. 조금만 비운다면…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