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될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선교사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 주교님께서 저를 보고 선교사로 저 멀리 떠나라 한다면 저는 주교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 같습니다.


“살려주세요….”


선교사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먼 타향에서 예수님을 전하면서 모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바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그분은 스페인 사람이셨지만 인도 는 물론이요 일본에까지 선교활동을 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먼 타향이 아니라 바로 옆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시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먼저 제자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 구원받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믿음이 지속되지 않으니 단죄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우리 모두는 믿는 사람들 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저 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믿고서 세례를 받았다 함은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세례 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운 삶에로의 초대를 거절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축복을 주십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것입니다. 곧 내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잡거나 죽을 독을 마실지라도 그들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고,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낫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요? 문자 그대로 해석해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 의미를 좀더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귀신, 뱀, 독, 병자…


이런 것들은 모두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구원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위험이나 유혹도 믿는 이에게서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 치유..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언어는 외국인에게 전교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는 삶의 변화에서 오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던 모든 말들을 잊어버리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에서 나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세상 끝까지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치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은 죽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끝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려주고, 영생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치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잘 죽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은총을 저 또한 다른 이들에게 나눠 주고 싶습니다. 제가 그 은총을 가지고 있다면…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며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는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언제나 숙제인 것입니다….


<자기 숙제는 자기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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