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부자청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한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부자청년은 가진 것을 버리지 못했지만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당 다닌다고 차례나 제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버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사도들의 시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형제라고 불립니다.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떠나 믿는 신앙의 형제들 품으로 왔을 때 그는 신앙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을 무수히 얻게 됩니다. 또 사랑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에게 풍요한 은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사도11,29-30;갈라2,10;2고린8,1-9,15). 그래서 이들은 세례를 받고 집과 밭도 얻었으며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축복 속에는 박해도 감수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 재미있는 표현을 쓰십니다.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실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좀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신앙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