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자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 악을 꾸민 유다 국민의 지도자와 대사제와 원로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성자를 죽음에 넘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아들의 순명과 수난과 지도자들의 불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 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 갔다.”
“확”은 현재 팔레스티나의 밭에서는 볼 수 없으나, 옛날의 것으로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대개는 포도송이를 짓이기는 평평한 돌에 구멍을 낸 것이며 그 곳에서 포도즙이 나오고, 그 밑에 그릇을 놓아 흘러 나오는 포도즙을 받게 되어 있다.
“망대”는 언덕위에 석조로 만든 집으로 지붕은 밀짚으로 덮었고 기기에 밭지기가 살고 있었다.
지주는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고 소작인에게 밭을 맡겼다. 소작의 계약은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다. 소작인은 수확의 3분의 1, 혹은 반, 혹은 4분의 1을 지주에게 바친다. 지불은 거둔 농작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말씀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이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도조(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 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 죽였다.
소작인들이 종에 대한 태도는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지주의 종을 이처럼 잔인하게 다룰 소작인은 없습니다(예전에 공산당들이 그랬던가요?). 그런데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이라면 복수의 수단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주인이 복수를 안하셨는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작인들(우리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예언자들)도 참 불쌍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하는 그들의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신자들끼리 모임을 하는데 누가 안나오고, 해도 칭찬해 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그래도 돌로 쳐 죽이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종(예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내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 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 내어 죽였다.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종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주인은 아들까지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 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포도밭 주인이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실”힘을 가지신 하느님 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이 악한 소작인들이 이스라엘의 포도밭을 짓밟은 로마인이라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심판한 것입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을까요? “바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데…”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남이 조금만 잘못해도 잡아 먹으려 으르렁 거리고, 자신의 허물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 보십시오. 거기에 바로 그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거울 속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소작료를 잘 내고 있습니까?
2. 가끔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상대방들은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들, 부족한 실수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이나, 배우자나, 부모나 직장 동료들에게…“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라는 말 얼마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